유럽연합(EU)에 따르면 살생물제(biocides)란 해로운 유기생명체를 파괴하거나 방지, 무해하도록 사용되는 화학물질 또는 미생물체를 의미한다.

미국 환경보호국(US-EPA)는 인간과 동물의 건강에 유해하거나 자연, 생산물에 피해를 주는 유기체를 통제하기 위한 독성물질로 정의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은 안전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선진국에서는 살생물제의 생산과 판매를 엄격히 규제한다. 대표적인 살생물제로는 항곰팡이제, 제초제, 살충제, 살조류제, 구충제 등 살충제류와 살균제, 항바이러스제, 항진균제 등 항생제류가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사용되는 살생물제들은 매우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데 대부분 고독성의 물질이다. 살생물제는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유기체를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미생물이나 해충류가 그 대상이지만, 사용 전과정에서 인간의 건강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여러 활동 중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미칠 수 있다.

조류(藻類) 오염방지페인트 성분으로 쓰이는 유기주석화합물로 인해 어패류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고동의 암컷에 수컷의 생식기가 생기기도 하며, 기형 물고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과다한 약물 복용으로 체내에 흡수되지 못하고 배출된 항생제 성분 역시 이런 현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독성물질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을 함유한 에어컨 향균필터 등 사고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살생물제가 오히려 또 다른 피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많은 살생물제들이 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특히 향균제품들은 심각한 수준이다.

아무 기준 없이 사용하고 있는 제품들이 얼마나 인체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방향도 못 잡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살생물제는 약사법, 화학물질 평가 및 등록에 관한 법(화평법)등 여러 주요 법과 여러 기관에서 분산 관리하면서 관리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

심지어 살생물제품 홍보에 ‘친환경적’ 단어 사용을 방관하는 등 허점도 보이고 있다. 화평법상 살생물제는 소독제, 방충제, 방부제 등 3개 품목에 불과해 법적 규제대상이 아닌 새 유형의 제품이 출시되면 관리를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화평법에 살생물제 관리를 위한 내용을 보완토록 개정해 법의 틀을 강화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매우 타당하다.

선진국의 경우 화학물질을 사용한 살생물제에 대한 규제가 매우 까다롭게 적용되고 있고 산업계나 국민 모두 이를 당연시 한다. 반면 우리는 안전성 운운하면 산업계 발목을 잡는 과도한 규제라고 비난하면서 화학물질 사용을 허가하라고 강압해왔다.

국민들 역시 정부의 허락을 믿고 따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동안 국민을 대상으로 살생물제의 위해여부를 시험한 꼴이 됐다. 더 이상은 안된다. 우리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살생물제 안전관리체계를 철저히 점검하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