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적 사고’ 기인한 당위론 휘둘릴수록 통일 멀어져
도덕주의적 판단과 별개로 현실적 통일경로 모색돼야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라는 것이 있다. 미래예측에 예측하는 자의 희망사항이 반영돼 있는 것을 말한다. 사회과학의 경우 관찰자가 그 사회에 속해 있으므로 객관적인 제3자적인 예측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관찰자의 이해관계, 사상, 성향이 알게 모르게 관찰자의 예측에 개재되는 것이다.

 

▲이수현 변호사

남북문제에 대해 민족구성원 모두는 이해관계인이므로 희망적 사고라는 오류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다. 미국의 싱크탱크(thinktank)가 한국의 학자보다는 이러한 오류로부터 벗어나 객관적인 분석을 하기에 유리한 것이다. 통일이 민족 지상의 과제가 됨에 따라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이런 오류에 빠지기 쉽다. 통일이라는 당위와 통일을 위한 과정이라는 현실적인 경로가 혼합·교차되는 것이다. 남북한이 격렬한 전쟁을 치뤘고 체제경쟁을 한 관계로 도덕주의적 판단과 통일을 위한 과정이라는 현실적인 경로가 뒤섞이는 문제도 있다.

 

햇볕정책은 북한과 경제교류를 해도 그 과실이 북한의 핵개발로 이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에 기초했다. 북의 핵개발은 동북아의 지정학적 국제관계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남북교류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그 개발이 시작됐고 북한이 체제적 차원에서 추진한 것으로서 남북교류 여부와 무관하게 개연성이 클 수밖에 없었다. 햇볕정책은 객관적인 분석 대신 희망적 사고에 기초했고 핵개발이 가시화되자 속수무책으로 정당성과 설득력을 잃었다.

 

보수정권이 취한 대북봉쇄와 제재는 북한이 핵·미사일을 개발해 주변국의 안보를 위협하므로, 도덕적으로 나쁜 정권이라서 교류·대화를 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이러한 도덕주의적 판단과 별개로 도대체 통일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이뤄지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은 나치독일을 격퇴하기 위해 소련의 공산주의자들과 연합했고 중일 전쟁 당시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은 국공합작을 통해 일제와 싸웠다. 70년대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이라는 어이없는 참극을 조장하던 중국공산당과 손을 잡았다. 이러한 적과의 연합은 도덕주의적 판단만을 앞세울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국제관계에서 국익 또는 국가적 목표를 위해서 도덕주의적 판단 대신 현실주의적 판단을 한 것이다.

 

대북봉쇄기간 동안만큼 남북교류는 미뤄지고 그 공백은 주변 다른 국가들의 대북교류가 채우게 된다. 북한당국과 협상·교류를 하자는 것은 북한당국이 도덕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통일로 가는 경로를 하루라도 단축하기 위해서다.

 

북한붕괴론은 전형적인 희망적 사고다. 객관적으로 붕괴될 것 같다는 것이 아니라 저런 정권은 붕괴돼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정권이나 체제 붕괴는 낡은 건물과 같이 그냥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려는 세력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대북봉쇄가 북한을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예측가능하나 그로 인해 대안의 정치세력이 형성되는지 여부는 전혀 별개다. 역사상 그 어디에서도 배고픔에 지친 자들이 혁명을 시도하거나 성공한 경우는 없다. 대북정책이 현실을 무시한 당위론에 휘둘릴수록 통일로 가는 길은 그만큼 멀어지거나 어려워진다.

 

진보정권 10년, 보수정권 10년 동안 희망적 사고, 당위론, 도덕주의적 판단에 사로잡혔던 과오에서 벗어나 현실주의적 정책으로 통일로 가는 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통일은 옳기 때문에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로 가는 프로세스가 제대로 놓였을 때 도래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보수정권인 기독교민주당이 진보정권인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여 동독과의 교류를 더욱 확대한 것은 기민당 정권이 동독공산당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이들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음에도 기민당 정권은 공산당 정권과 흔쾌히 교류, 협력해 동독체제를 밑에서부터 허무는 통일기반을 조성했다. 단 한 번도 통일이라는 구호를 외치지 않고도 단 한번 닥친 통일의 기회를 거머쥐어 독일을 통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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