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 환경전문가들이 보는 한국의 환경위기시계는 ‘9시19분’을 가리켰다. 이 시계는 12시에 가까울수록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데 9시를 넘겼다는 것은 위험하고 아주 불안한 상태를 의미한다. 미래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노르웨이 경영대학원 요르겐 랜더스(Jorgen Randers) 기후전략 교수 역시 한국의 환경 미래를 마냥 장밋빛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당장 변하지 않으면 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불안한 미래가 현실로 닥칠 것이라는 것. 본지는 랜더스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직면한 현안을 살펴보고 해결책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참담한 민낯…생태용량 8배 초과, 탄소발자국 급증
사라진 시민의식에 경종, 정책방향 이끌어야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가 ‘지구 생태용량 과용의 날(Earth Overshoot Day)’인 지난 8월8일 발간한 ‘한국 생태발자국 보고서 2016’에 따르면 한국은 생태적 적자에 빠져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가가 자국 생태계가 흡수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이 국가는 생태 적자에 빠진 상태라는 것이다.

 

▲노르웨이 경영대학원 요르겐 랜더스(Jorgen Randers)

기후전략 교수   <사진=박미경 기자>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가 지난 9월5일부터 9일까지 주최한 글로벌녹색성장주간(GGGW)을 맞아 한국을 찾은 노르웨이 경영대학원 요르겐 랜더스(Jorgen Randers) 기후전략 교수는 “한국은 1960년 후반부터 생태 자원 및 서비스 수요가 생태용량을 초과해 현재까지 적자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랜더스 교수는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대해 연구하는 글로벌 비영리 연구기관인 로마클럽 핵심 멤버이자, 미래학 연구의 기본서로 꼽히는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를 공동 집필했고, 기후 문제와 시나리오 분석, 시스템 공학 분야에서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세계적 석학이다.


에너지 수입에 의존…잠재적 위협요인 작용  
한국은 급속한 성장을 통해 현재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수요도 늘면서 무한한 듯 보였던 자원은 줄어들고 있다. 더군다나 기후변화라는 위협요인이 가해지면서 생태 자산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해졌다.


랜더스 교수는 “여기서 생태용량(생태수용력)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생태계가 공급하는 자연자원과 생태 서비스를 추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태용량은 생태자원 남용으로 저하될 수 있으며 인구가 증가하면 1인당 생태용량이 감소하게 된다.


그는 “이와 반대로 생태발자국은 인간이 소비하는 자원의 양을 그 자원의 생산에 필요한 땅 면적으로 환산해 표시한 것”이라며 “한국은 국토 면적이 작고, 자원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생태용량은 멈춰 있는 상태고, 산업이 발전하고 소비가 늘면서 생태발자국은 함께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처럼 살면 3.3개의 지구 필요
WWF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상 인류 모두가 오늘날의 한국인처럼 살아간다면 3.3개의 지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 2개, 일본 2.9개에 비해 높은 수치다. 한국에서 증가하고 있는 1인당 생태발자국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탄소다. 전체 생태발자국 중에서 73%로, 이는 세계 각국의 탄소발자국 평균 비율인 60%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한국은 1961년에는 국내 생태계의 공급량 내에서 생태 자원 및 서비스를 소비했다. 그러나 이후 수요는 자국 생태계가 공급할 수 있는 생태용량을 초과해 현재까지 생태 적자 상황에 처해있다. <자료제공=WWF>


생태용량이 자연자원과 서비스의 양을 추산한 것이라면,
생태발자국은 이에 대한 인류의 수요를 추산한 것


한국은 생태용량 수요가 국토 생태계 재생 능력의 8배를 초과한다. 무려 70~80% 이상을 초과해 쓰고 있는데 이 구조가 가능한 것은 에너지, 자원 등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랜더스 교수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5%에 달하는 한국은 결국 이산화탄소를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은 현재 무역을 통해 생태적 적자를 메우고 있다. 만약 수입 비용이 상승한다면 한국 경제에 큰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가 경제성장의 가장 큰 장애요소로 꼽히자 안정적인 자원 확보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한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서도 생태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

 

▲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가 지난 8월8일 발간한

 ‘한국 생태발자국 보고서 2016’

그는 “한국은 석탄 등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구성에서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전기차로 교통시스템을 빠르게 전환하고 절연 자재를 이용한 건축 등으로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경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정부
한편 전 세계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도 2100년에는 지구 온도가 2.5℃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랜더스 교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아무리 강조해도 이 제안을 정책결정권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노르웨이에서 생태 적자의 심각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지식층들도 이를 해결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라며 “노르웨이에서 환경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정치 당을 만들었는데 가솔린 가격 등 세금을 올려 환경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자 그들을 지지한 사람들은 오직 3%였다. 나머지 97%는 안 좋은 미래를 택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때로는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정책을 실행하는 데 있어 추진력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등과 같은 시급한 현안에 대해서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권위주의적인 정부이고 정부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생태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권고했던 부분들이 잘 반영돼 실행으로 옮겨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한국도 노르웨이나 다른 국가들처럼 현명한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궁극적으로 온도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속가능한 미래 향한 한국의 선택 의문
재생에너지 전환은 초기에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정책결정권자들이 망설이게 된다. 랜더스 교수는 “지금 당장 비용을 감수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 부딪쳐 한국과 같은 나라가 계속 생태적 적자를 극복하는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앞으로는 올 여름보다 더 심한 폭염과 이상기온을 비롯해 예상치 못한 기후재난에 시달릴 것은 명백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 대담 중인 본지 김익수 편집대표(왼)와 랜더스 교수

이에 따라 정책결정권자들의 판단만을 믿고 기다릴 수 없다. 결국 시민사회가 움직여서 정부 정책방향을 끌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경제위주의 발전과 민주주의 이후 시민정신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있다. 많은 전문가, 언론, 시민단체(NGO)가 이 문제를 제대로 알려서 바텀업(Bottom-up) 방식을 통해 정부 정책으로 끌어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랜더스 교수는 “1970년대부터 환경분야에서 일을 해왔는데 지금까지 계속 실패해 왔던 요인이 무엇인지 돌아봤더니 결국 ‘사람’이었다”며 “궁극적으로 사람이 문제고 시민의식을 발휘한다면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그는 지속적인 보도를 통한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는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논쟁을 하는 데 시간을 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집중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미래세대가 파괴된 환경에 익숙하게 될까 봐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대담=김익수 편집대표/사진·정리=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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