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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속가능하려면 ‘젠더박스’를 깨라

▲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민무숙 원장


 

실질적 평등 못 이룬 한국, 남성의 동참이 해결책
양성평등 의식 확산, 성인지적 관점 정책에 녹여내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환경일보] 박미경 기자 = ‘남자답게’ 혹은 ‘여자니까’ 라는 말의 무게가 때로는 버거울 때가 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을 이겨낼 용기가 필요하고, 사회에 나온 여자들은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데 보이지 않는 한계와 맞서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남자가 무슨, 여자가 왜’라는 색안경을 벗고 나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된다. 본지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민무숙 원장을 만나 최근 이슈가 됐던 양성평등 문제,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지난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여성혐오냐, 아니냐를 두고 일파만파 논란이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녀에 대한 문제가 온라인상까지 번지면서 비난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는 급격히 변하고 있고 그 혼돈 속에서 사고의 전환이 함께 이뤄지지 못한 결과다. 인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성에 상관없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교육과 진흥을 해결책으로 내놨다. 2003년 설립 이후 공무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과 국민 대상의 폭력예방 등 전문강사 양성교육을 하고 있다. 

 

더불어 사회전반의 양성평등 의식 및 문화 확산을 위해 온·오프라인 교육, 모바일 콘텐츠 배포, 양성평등 미디어상, 양성평등 디자인공모전 등의 진흥사업과 여성역량 강화를 위해서 여성인재 아카데미, 여성인재풀 확충, 여성관리자 네트워크 구축지원, 청년 여성 멘토링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제7대 민무숙 원장은 올해 초 부임했으며 대통령비서실 여성가족비서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회의장 산하 ‘여성·아동미래비전자문위원단’ 위원, 행정자치부 지방자치단체 합동평가위원 위원, 서울특별시 성평등위원회 위원 등을 거친 손꼽히는 여성정책 전문가다.

 

Goal 5. GENDER EQUALITY

SDGs 가운데 5번째 목표는 성평등 달성 및

여성·여아의 역량 강화를 말하고 있다.

양성평등 글로벌 허브기관이 목표
민무숙 원장은 “우리나라처럼 양성평등 정책을 목표로 삼아 국가예산을 들여 교육을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최종적으로는 다른 국가에 양성평등 정책을 알리고 교육 노하우를 전수하는 글로벌 허브기관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민 원장은 야심찬 목표와 부합하는 세부적인 그림으로 ▷교육 품질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 ▷외부와의 협업 활성화 ▷남성 참여 확대를 꼽았다.

 

특히 그는 “여성과 관련된 문제는 남성이 함께 인지하지 않으면 문제해결이 어렵다. 남성이 여성폭력, 가정폭력 등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동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 큰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유럽에서는 ‘He for She(히포시)’ 캠페인이 확대되고 있다. 성평등을 위해 남성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캠페인이다. 일과 가정 양립문제도 여성문제로만 치부하기보다 사회문제로 바라본다면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She’를 위한 ‘He’의 동행
양성평등 정책은 결국 사회정책이다. 정치, 경제, 환경, 안전, 복지 등 모든 영역에 이 문제가 녹아 있다. 결국은 전 영역에서 젠더 메인스트리밍(Gender mainstreaming, 성 주류화)이 녹아들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민무숙 원장은 “정책을 수립하고 기여하는 공무원(국가직 및 지방직공무원, 군인, 경찰, 교사 등)들이 젠더문제를 제대로 포착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관점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성인지 교육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성별영향분석평가법’을 통해 어떤 정책을 추진하기 앞서 특정 성에 불리하거나 의도하지 않았지만 차별적 영향이 있는 부분을 시행 전 검토·분석해 교정하기 위해서도 성인지적 관점은 중요하다. 쉬운 예로 화장실이 성별영향분석이 반영된 결과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화장실에서 시간을 많이 소요하는 것을 고려해 변기 수 확대, 비상벨 설치 등이 이에 해당한다.

 

더불어 성평등 관점에 기반을 둔 4대 폭력예방(성희롱·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 교육이 법적으로 의무화되면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는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전문 강사를 육성해 전파하고 있다.

 

민 원장은 “교육의 가시적인 성과로 사람들의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한 민감성이 굉장히 높아졌다”며 “그동안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원인을 두는 통념이 지배했지만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잘못된 인식을 깨닫고 바로잡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온 국민을 분노케 했던 ‘신안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을 꼽으며 민 원장은 “그전에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숨겼다. 그러나 신안 여교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이 조사가 되도록 행동을 취했다”고 덧붙였다.

 

여성 고위직 진출 ‘견고한 장벽’ 여전
2015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격차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격차지수(GGI) 0.651점(145개국 중 115위)으로 4가지 부문 가운데 ‘교육·보건’에서는 남녀 차이가 거의 없었으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여성 고위직 비율 ▷여성 의사결정분야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는 양성평등의식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자료제공=양성평등교육진흥원>

민 원장은 “우리나라는 형식적(법·제도적) 평등은 보장됐지만 실질적 평등이 다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며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는 여성은 현저히 적고, 우리나라 여성들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는 OECD 국가 평균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일본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형태는 M자 곡선을 그린다. 여성 전 생애주기에 있어 20대는 상대적으로 경제활동 참여가 높지만 30대가 되면 임신·출산·육아로 인해 떨어졌다가 다시 40대에 접어들면서 생계전선에 뛰어들면서 참여율이 다시 상승한다. 그러나 경력단절이 근속연수에 영향을 미치면서 임금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재취업해도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시 경제활동에서 퇴장한다. 이에 반해 유럽은 사회적으로 제도가 받쳐주기 때문에 여성 참여율이 임신·출산·육아 후에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민무숙 원장은 “정치적 영향, 대표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성 고위직 비율과 사내 이사진 여성 비율도 낮다”고 우려했다. 2015년 11월 현재 핀란드 장관의 62.5%가 여성이고 캐나다·프랑스·리히텐슈타인은 여성 장관이 50%로 남녀동수를 이룬다. 전 세계 평균 여성 장관 비율이 17.7%인데 비해서도 한국은 5.9%에 불과하다.

 

그는 “여성의 참여가 많아진다는 것은 구성원이 다양해진다는 것이고 그 조직은 건강해질 수 있다”며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있으면 위협요인이 있어도 감지할 수 없지만 조직이 다양하다면 위험을 간파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남녀 모두 동등한 혜택을 주기 위한 것”
민 원장은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평등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인식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제는 남성은 일을 하고,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책임졌던 성별분업의 사회는 깨졌다. 그러나 사회가 여성을 불러냈지만 사회적 제도나 시스템 마련은 미흡한 실정이다.  

 

▲ 현재 ‘여성할당제’가 정치 영역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지역구는 비례대표와는 달리 의무
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에 그쳐 강제력이 없다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민 원장은 “여성이 그동안 개인적인 영역에 있다가 공적인 영역으로 나오면서 의식이 변화했지만 남성은 변화할 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다”며 “여성은 원래 가져야 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지만 다른 집단에서 봤을 때 요구하는 게 많은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남성의 경우 가지고 있는 파이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러한 갈등이 인터넷 문화로 겹겹이 쌓이면서 혐오적 혹은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며 “양성평등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권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함께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나누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양성평등 정책이 여성에게만 혜택을 주는 제도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민 원장은 “남성도 분명 차별받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외모, 흉터에 대한 부분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민감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화재보상금이 남성이 더 낮게 책정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해 동일하게 지급하게 됐다. 또한 ‘미혼모 지원정책’이 미혼부도 고려해 ‘한부모가정 지원정책’으로 바뀌게 됐다.

 

전통적인 맨박스에서 남성 해방돼야
‘양성평등채용목표제’ 역시 이를 반영한 결과다. 성비 불균형 해소를 위해 남녀 모두의 최소 채용비율을 설정하는 제도(한 직군에 특정 성이 70%가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로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여성합격률이 70%가 넘는 등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1996년부터 실시된 ‘여성채용목표제’가 2003년에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전환됐다.

 

그는 “양성평등 정책은 결국 남녀에게 동등한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옛날로 돌아가지 못 하는 불가역적인 성격에 따라 젠더박스를 깨는 것(인식 전환)이 시급해졌다. 민 원장은 “남자들도 남성다움이라는 ‘맨박스(Man Box)’에 갇혀 굉장히 억압받고 있다”며 “우리 사회는 남성은 연약해서도, 여성스러우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 틀을 깨서 남성에게도 해방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SDGs 이행…‘성평등’은 필수불가결한 요소
향후 15년간 국제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개발목표인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보면 17개 목표 가운데 5번째 목표가 성평등(Gender Equality)이다. 국제사회가 젠더 편견을 깨는 것을 주목했다는 것이다.

 

민 원장은 “전 세계가 함께 시행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의 모든 목표 안에 성평등이 녹아 들어가 있을 정도로 빈곤, 폭력, 환경 등 모든 부분과 연결돼 있다”며 “의식, 제도, 행동이 성평등 기반하에 이뤄져야 그 사회가 지속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시간관리 정책의 중요성을 꼽으며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장 근로시간을 기록하며 일 중심의 사회다 보니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고 건강을 해치는 등의 문제가 발생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지만 양성평등 의식문화 확산사업 예산이 급감하는 등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 원장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중요도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양성평등 문제는 남성이 동참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고, 리더집단들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이 문제가 필수불가결한 요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glm26@hkbs.co.kr

박미경  glm26@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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