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박미경 기자>


[국회=환경일보] 박미경 기자 = 수년 전부터 문제가 제기됐던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올해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수면위에 올랐다. 기업의 안위·이익창출에 밀려 유해한 화학물질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국민의 공분을 샀고 조속한 해결은 차치하고 관리방안조차 수립되지 못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에서 시작된 화학물질에 대한 국민 염려와 걱정은 커졌지만 소통 방법은 여전히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미 신뢰를 잃었고 이제는 정부뿐만이 아닌 기업, 시민사회 모두가 참여한 리스크 거버넌스 구축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에코맘코리아 하지원 대표

이와 관련해 (사)에코맘코리아(대표 하지원)·연세대학교 환경공해연구소(소장 신동천)와 공동으로 최근 환경호르몬 Free를 위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토론회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이란 위해(Risk)에 대해 위해평가자, 위해관리자, 소비자, 업체, 학계 및 기타 이해관계자 간 정보와 의견을 지속적으로 주고받는 과정을 말한다.


가습기살균제 사태 이후 화학제품을 대하는 국민들의 태도는 극명하게 달라졌다. 화학물질 포비아(화학제품 공포증)라는 신조어 등장뿐만 아니라 아예 화학물질을 거부하는 노케미(No-chemi)족도 등장했다. 화학물질에 민감해진 국민들은 신뢰성 있는 화학물질 정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에코맘코리아 하지원 대표는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해결을 위한 소통은 먹통”이라며 “국민 알권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현실에서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화학물질 관리, 만족도 ‘바닥’
실제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시민인식 조사 결과 시민들의 화학물질에 대한 관심은 높으나 정부의 유해화학물질 관리 수준에 대한 만족도는 5% 내외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서울연구원 최유진 연구위원은 “시민들은 정부의 규제를 통한 엄격한 관리와 적절한 정보 제공을 통한 사전예방을 원한다. 기존의 일방적 정보제공은 인지도 및 이용도도 낮기 때문에 시민들이 원하는 갈증 해소에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연세대학교 환경공해연구소

신동천 소장

한국화학물질관리협회 이지윤 부회장 역시 “정부가 정보를 주지만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더불어 국민 역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읽어내는 사전교육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물질 정보는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국민들은 어떤 성분이 어떻게 들어있는지 여전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소비자와 판매자 간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이유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청 현황(제1~4차 피해접수) 결과, 피해자 접수만 5060명, 그 가운데 사망자는 1058명, 생존자 4002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환경보건센터장은 “가습기살균제 노출군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못해 얼마나 썼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가습기살균제와 폐질환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고자 CT(컴퓨터단층촬영)로 진단을 하는데 CT상 들어나지 않아도 폐기능이 약화되거나 새로운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영상학적 근거가 사라지면 규명조차 어렵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폐손상 뿐만 아닌 일부 장기문제 등 포괄적 개념의 피해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왼)과 새누리당 신보라 의원(오)

명백한 국가재난, 부담은 피해자 몫
홍수종 센터장은 “지금 현재 신고 되는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지만 국가에서는 해결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며 “엄청난 인명피해를 일으킨 국가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현재까지도 통합지원센터(컨트롤타워) 시스템은 부재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개인이 원인 규명을 할 수 밖에 없어 결국 개인 자산을 탕진하고, 사정이 어렵다보니 가해기업과 타협하게 된다. 그러나 기업과 타협한 피해자는 국가에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홍 센터장은 “피해자를 위한 법적 보호장치와 통합지원센터 구축은 빠른 시일 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자·허가자의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지·인식 부족과 사용자의 정보 부족으로 우리는 참혹한 사건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4만5000여종에 이르지만 이 중 유해정보가 확인된 경우는 15%에 불과하다.

 

제품 내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는 불안정하며 화학물질 용도변경 시 위해성 재평가 제도도 마련돼 있지 않다. 화평법이 마련됐지만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 정보와 용도 정보를 사전에 파악할 수 없으며,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자료 요청 시 일정 기간 공개하지 않도록 돼 있다.


▲왼쪽부터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환경보건센터장, 서울연구원 최유진 연구위원,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임영욱 부소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환경호르몬 대체물질 안전성 논란 가열

국내 EDCs 관리는 환경부, 미래부, 식약처 등 유관부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다이옥신, 비스페놀A, 디에틸스틸베스트롤(DES) 등 주요물질을 제외한 여타 EDCs에 대해서는 별도의 관리나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EDCs는 생물체 내 유입돼 정상적인 내분비계(호르몬) 기능을 방해하는 화학물질로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한다고 해 환경호르몬으로 불린다. 연세대학교 환경공해연구소 임영욱 부소장은 “화학물질 대상 스크리닝 제도(특정한 화학물질이나 생물 개체 등을 다수 중에서 선별)로 식별 물질에 대한 합리적 규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수증 감열지에서 비스페놀A(BPA) 검출 논란이 불거지면서 일부 업체들은 대체제로서 비스페놀S(BPS)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대체물질인 BPS가 BPA보다 더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대체물질이라고 안전성을 속단할 수 없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환경보건학회 김판기 회장은 “상당수 대체물질에서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나타나고 있다. 위해성 관련 자료가 많이 축적되지 않은 BPA 대체물질에 대한 연구 및 평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보 과잉으로 소비자 혼란 야기
전문가들은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리스크 거버넌스 구축을 주문하고 나섰다.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백혜진 회장은 “정부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정보 과잉의 문제와 신뢰성 있는 정보의 탑다운(Top Down, 상의하달) 채널이 부족한 것”이라며 “이제는 다각적인 부분에서 기업, 시민사회가 참여한 바텀업(Bottom Up, 하의상달) 정보를 협업해 활용하는 체계 구축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지 김익수 편집대표는 시민과 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CSR)을 바탕으로 투명한 정보공개로 신뢰를 구축하고 시민들은 사회를 위해 시민정신을 발휘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한 산업계 관계자는 “폴리카보네이트(PC) 원료인 BPA가 유해 논란이 일면서 플라스틱업계는 다 죽었다. 이는 ‘폴리카보네이트’의 문제를 ‘플라스틱’ 자체가 유해하다는 것으로 소비자들이 이해했기 때문”이라며 “폴리카보네이트=플라스틱이 아니지만 소비자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가 혼란을 줬고 잘못된 정보제공으로 기업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호소했다.


▲왼쪽부터 한국화학물질관리협회 이지윤 부회장,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백혜진 회장, 한국환경보건학회 김판기 회장, 환경정의

이경석 유해물질대기팀장, 본지 김익수 편집대표.


기업은 CSR, 시민사회 적극적 참여 요구

환경정의 유해물질대기팀 이경석 팀장은 “환경부가 운영하는 ‘생활환경안전통합정보포털’이 있지만 올해 내내 제대로 가동한 적이 없다”며 정부의 안전 가이드에 대해 질타했다. 외국의 경우는 유해성분, 관련 논문, 관계자 연락처 등 모든 정보가 다 공개되는데 비해 한국은 단순 정보제공 수준에만 머물려 있다는 지적이다. 


연세대학교 환경공해연구소 신동천 소장은 “일반적 평가나 잣대가 아닌 소통을 통해 모두가 공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플랫폼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1월29일 정부합동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을 수립했다. 정부는 소관 법령에 따라 부처별로 나뉜 생활화학제품 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화평법 신고 대상에서 제외된 연간 1톤 미만의 화학물질 가운데 살생물질을 분리해서 특별 관리하기로 했다. 또한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생활화학제품을 내년 상반기까지 일제 조사할 계획이다.


기존 정책에 비해 진일보했으나 일각에서는 성분공개 의무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했고 업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가운데 기존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실패를 답습하지 않는 방안 모색이 요구받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학계, 시민사회, 산업계, 언론, 정부, 지자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했다.


 

glm26@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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