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랑과 열정으로 40년간 수많은 인재 키워

대한민국의 큰 별이 졌다. 고 노융희 선생은 1927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했고, 해방 후 서울로 옮겨 서울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국토연구원의 초대원장, 지방자치학회와 한국환경정책학회 초대회장을 맡아 지방자치, 국토 및 지역계획, 환경정책분야에서 초석의 역할을 다했다.

세계 환경보호에 앞장서 ‘20세기 환경인상’을 수상했고, 스웨덴 국왕 훈장도 받았다. 87년엔 국민훈장 동백장을, 91년엔 유엔환경계획 ‘글로벌 500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명예는 그가 키워낸 사람들이라 하겠다. 노융희 선생의 나라 사랑과 환경에 대한 열정은 지난 40여년간 키워 낸 수많은 인재들에게도 전해져 각계각층에서 결실을 맺어왔다.

또한, 1993년 6월18일 한국환경정책학회를 창립하고, 학회지를 창간하면서 대한민국 환경정책 전문가 2세대로의 전환을 이뤄냈다.

환경정책은 환경오염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 상태를 개선하려는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 수단을 결정하는 정부 방침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회문제 해결에는 인적, 물적 자원이 소요되므로 정부는 많은 환경문제 중 무엇을 우선 해결할 것인지, 즉 어떤 사회 문제를 정책의제(agenda)로 선택할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나라 환경정책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 직후인 1963년에 공해방지법 제정을 시작으로 전개돼 왔다. 그러나 1969년에 와서야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마련될 만큼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법률이었다.

1967년 2월 보건사회부 보건국 환경위생과 공해방지계가 설치돼 환경관련 행정업무를 총괄했으며, 1978년 7월에야 국립환경연구소가 발족돼 환경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가 미약하나마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환경정책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녔을 뿐이었다. 노융희 선생은 생전에 회고하기를 당시 환경문제가 주로 공해문제를 주축으로 다뤄졌으며,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미미했다고 지적했다.

1973년 한 공식 회의에서는 환경과 관련된 데이터 제출은 정부가 싫어한다는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단다.

노융희 선생은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역작용으로서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정책의 보다 적극적인 추진과 강력하고도 합리적인 통제를 강조해왔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환경정책은 종래의 소극적이고 사후규제적인 형식을 탈피해 적극적이고 사전예방적인 환경보전대책으로 그 틀이 바뀌었다.

이제 그는 가고 없지만, 그를 존경하고 그 열정을 따르는 많은 후학들이 대한민국과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뛰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고 노융희 선생은 위대한 환경인이었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