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연구소 김백민 책임연구원

극지연구소 김백민 책임연구원

경제학에서 ‘공유지의 비극’이란 개념이 있다. 마을에서 소를 공동으로 방목하는 방목장은 주인이 따로 없어 주민들이 경쟁적으로 더 많은 소를 끌고 나와 풀을 먹이게 되고, 그 결과 방목장은 황폐화돼 모든 주민들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본다는 것을 경고하는 개념이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공유지의 비극’ 구조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핵심은 결국 소를 100마리를 끌고나온 주민과 1마리를 끌고나온 주민이 받는 피해가 동일하다는 데 있다. 지구온난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온실기체의 대부분은 선진국의 활발한 산업활동에서부터 대부분 나온다. 그러나, 그로 인한 온난화의 폐해는 전 인류가 짊어진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 피해는 온실기체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나라인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이 가장 크게 본다. 투발루를 보라.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의 직격탄을 받아 이미 국토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겨 버리고 있다. 참으로 인류의 이기심이 만든 비극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급격한 기후변화, 대빙하기의 도래 의미
하지만 북반구 선진국들에 아주 나쁜 소식이 있다. 그것은, 이대로 가면 언제든 지금 우리가 보고 느끼고 있는 지구온난화와는 다른 형태의 급격한 기후변화가 발생할 수 있고, 그로 인한 피해는 저위도 지역보다는 산업화로 인해 이익을 취해 온 중위도 지역, 특히 대도시가 있는 해안지역에 집중될 것이 지구 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눈에는 분명해 보이기 떄문이다. 다른 형태의 급격한 기후변화는 복잡하게 설명할 것 없이 바로 대빙하기의 도래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지구는 대빙하기 기준으로 4회 이상의 혹독한 빙하기를 겪었다. 빙하기 때의 온도를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전 지구 평균온도가 현재보다 5℃가량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 지구 평균온도가 5℃가량 떨어지면, 문명이 발달된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경우 최소 10℃ 이상은 온도가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그 이유는 따뜻한 바닷물이 존재하는 적도 지역의 경우 상대적으로 온도 하락 폭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빙하기 사례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급격한 기후변화 시나리오가 진행이 되면,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적도 섬나라들이 수혜자가 되고, 산업혁명의 주범들인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선진국들이 직격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가속화, 북극온도의 급상승 촉진
그렇다면 급격한 기후변화는 언제 어떻게 발생하는 것이며, 지금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급격한 기후변화는 바로 남·북극을 잇는 해류가 수송하는 열순환 벨트가 작동이 중지되는 현상으로 인해 촉발된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 될수록 북극의 온도는 전 지구 평균온도에 비해 더욱 빠르게 상승하게 된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얼음 반사 피드백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햇빛을 반사하는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북극해는 줄어든 해빙 사이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오히려 흡수하게 돼 얼음을 더 녹이게 되고 이는 다시 에너지 흡수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급격히 뜨거워지게 된다. 두 번째 이유는 결국 열이 기본적으로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온실기체 증가로 골고루 더워지더라도 결국 열은 극지방으로 이동해 극지방의 온도가 더욱 뜨거워지게 돼 있다. 특히 얼음 두께가 상대적으로 얇은 북극지역에서 이 현상은 남극에서보다 빨리 나타나게 된다.

북극이 온도가 뜨거워지고 얼음이 녹게 되면 북극해가 급격히 성층화되면서 해류의 상하이동이 차단되게 된다. 즉 열순환 벨트가 고장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구에 동맥경화가 일어나게 되고, 이로 인해 열순환이 일어나지 않아 급격한 빙하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시그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고온현상은 2000년대 이후 더욱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고, 북극 얼음 면적도 빠르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까지의 과학으로는 언제 정확히 급격한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찾아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뚜렷한 지구온난화 경향 속에서도 200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중위도 지역에 혹독한 한파와 폭설을 동반한 겨울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이상 한파가 북극의 급격한 고온현상 때문에 생기고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발견해 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이미 매년 한파와 폭설로 인한 항공기 결항 등으로 50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고 있다.

극단적 기후변화의 현실화, 극지역 연구의 근복적 이유
필자는 지구온난화, 급격한 북극의 고온 현상, 이상기후 현상의 출몰, 그리고 극단적 기후변화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중에 최근 전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혁명 이후 2℃ 이상 상승하지 못하게 하자는 전 지구적 약속을 담은 파리기후협약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이 미국이 기후변화에 관한한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기조에 반해 미국 국무장관 틸러슨이 올해 5월 알래스카에서 북극 보호협정을 체결해 미국이 북극 환경보호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면서 북극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것은 난센스이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양립할 수 없는 명제인 것이다.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경고해 왔지만, 미국의 예에서처럼 인류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덫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국 우선주의와 극우 부활이 여러 국가들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여지는 지금, 글로벌 이슈인 지구온난화 문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IPCC가 제시하는 100년 뒤 지구가 몇 도 더 뜨거워질 것인가라는 그림만으로는 공유지의 비극으로 치닫는 프레임을 깨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류가 정말 현명하다면, 이 해답을 결국은 찾아낼 것이다. 그 해답은 급격한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어떻게 찾아올 건지 과학자들이 좀 더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극지역을 더 철저히 들여다봐야 할 근본적인 이유이다.

<글 / 극지연구소 김백민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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