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횡령한 협회장, 솜방망이 처벌로 업계 컴백
수은 나오는데 오염방지시설 면제, 화성시 특혜 의혹

[환경일보] 지난 2014년 수백억원을 횡령한 구 한국조명재활용협회(이하 협회)가 해체된 이후 가까스로 봉합되는 듯 했던 조명재활용 시장이 다시금 난장판으로 변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최근 조명재활용공제조합(이하 공제조합)이 재활용업체들의 실적 부풀리기를 방조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면서 업계가 반짝 긴장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한국조명재활용사업 공제조합이 징계부과금을 내지 않으려고 폐형광등 재활용 처리 수량을 허위로 부풀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제조합은 “환경부 규정에 따랐을 뿐이며, 한국환경공단의 실적 인증에 따라 가지급된 돈 가운데 실적에 미치지 못한 금액은 채무변제 확약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재활용 실적을 검증하는 한국환경공단 역시 “지자체와 업체 사이에서 폐형광등 수량이 부풀려지더라도 환경공단에서 재활용실적을 검증하기 때문에 처리비가 초과 지급된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매년 재활용업체는 지자체로부터 수거한 폐형광등 숫자를 근거로 공제조합에서 처리비를 선지급 받는다.

그리고 다음 연도에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 재활용 실적을 검증해 선지급 된 처리비용에 실적이 미달되면 이를 돌려받는다. 이는 조명뿐 아니라 모든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품목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경찰은 재활용업체가 지자체에서 폐형광등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수량이 부풀려졌다고 보고 있다.

2015년 이후 정상화 되는 듯 했던 조명재활용 시장이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다.

가족끼리 협회 장악, 수백억 빼돌려

지난 2014년 5월 환경부는 이례적으로 구 한국조명재활용협회 김모 회장과 임직원에 대한 해임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협회가 회장 해임을 거부하면서 경찰 수사로 이어졌고 협회장인 김씨와 명목상 회사 대표 아내 조모씨 그리고 아들, 동생, 처조카 등이 협회와 회사를 장악하고 재활용에 써야 할 수백억원을 빼돌려 유용한 사실이 경찰에 의해 밝혀졌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아내 조씨 명의의 폐형광등 재활용 A업체 직원들의 월급을 부풀려 지급한 뒤 개인통장으로 돌려받거나, 허위 거래전표를 작성해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에 자금을 융통하는 등의 수법으로 7년간 회사 돈 수백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횡령한 돈으로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대출이자를 상환하는 데 사용했다.

특히 김씨는 협회가 독점해온 조명 재활용 시장을 지키기 위해 경쟁업체 죽이기에 나서는 등 온갖 지저분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신생업체의 수은 처리가 미숙하다’라는 등의 허위 사실을 협회장 명의로 수차례 공문으로 발송해 지자체 조사를 촉구하거나 언론과 환경단체에 자료를 배포했다.

실제로 경쟁 회사를 비난하는 기사와 성명들이 나돌면서 경쟁기업은 결국 부도 처리돼 김씨의 회사로 흡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수백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협회는 해체됐고 이를 대신해 2015년 현재의 조명재활용공제조합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공제조합은 조명생산업체들을 대신해 재활용 비용을 나눠주는 일만 할 뿐, 실제로 재활용을 할 수 있는 공장은 과거 조명재활용협회장의 부인이 명목상 대표로 있었던 A업체 1곳뿐이었다.

공제조합과 A업체는 1년 넘게 협상을 벌였지만 계약에 실패했고 결국 2015년 1년간이나 폐조명을 재활용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결과 EPR 제도에 따라 정해진 양을 재활용하지 못한 조명생산업체들은 2016년 89억원의 부과금을 물게 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2016년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폐형광등이 재활용되지 못하면서 지자체마다 적체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환경부에 해결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2016년 국정감사 대비 환경부 자료에는 '개정된 폐형광등 재활용기준, 재활용업체의 인‧허가 지연에 따른 폐형광등 적체 심화 및 2015년 재활용부과금 부과로 인한 업계 부담'에 대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어 관리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환경부는 2016~2017년 2년간에 걸쳐 2015년 실적을 채울 것을 공제조합에 지시했다. 재활용을 면제해주는 것이 아니라 2015년에 처리하지 못한 물량을 2016~2017년 2년에 걸쳐 처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폐형광등 적체 해결방안을 요구했던 국회가, 올해 열린 국감에서는 “왜 유예해줬냐”고 따지는 일이 벌어졌다.

2017년 10월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환경부가 부과금을 부과하지 않고, 오히려 상위법령에 반하는 방향으로 부과금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고 질타했다. 고작 1년 만에 태도가 바뀐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폐형광등 적체 해결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해서 부과금을 유예해줬는데, 1년 뒤에는 왜 유예해줬냐고 따지니 우리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고 밝혔다.

오락가락 국회 환노위

한편 공제조합 측은 A업체가 조합 가입에 실패해 앙심을 품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A업체는 재활용설비가 수은 기준(0.005㎎/ℓ)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입에 실패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A업체는 가입을 신청하면서도 관련 서류 제출이나 공장 개방을 거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면서 “해당 설비에 대해 국립환경과학원과 대학교수들이 검토한 결과 조명을 재활용하기에 부적합한 시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환경에 관한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 집단인 국립환경과학원이 시설 미비를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조명재활용공사 화성공장은 대기방지시설과 폐수처리시설이 면제됐다. 화성시가 오염물질 방지시설 설치를 면제해줬기 때문이다.

이에 취재진이 화성시청에 오염방지시설 면제에 대한 근거를 요구했지만 화성시 측은 변변한 해명조차 내놓지 못했다. 규정에도 없는 특혜를 화성시가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A업체는 폐형광등을 방치하면서 수은을 주변으로 방치시킨 사실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음에도, 화성시는 관련 규정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대며 처벌조차 하지 않았다.

조명재활용 시설은 오염물질 방지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폐형광등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유독물질인 수은이 수질과 대기를 통해 배출되기 때문이다.

수은에 중독되면 신장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신경계통에도 심각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임산부가 수은에 중독될 경우 태아에 미치는 영향은 예측하기 어렵다.

폐형광등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수은이 배출된다. 파쇄와 선별 과정에서 수은이 함유된 폐수가 발생하고 가열 과정에서 대기 중으로 수은이 배출된다. 따라서 오염물질 처리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믿기 힘든 '폐수 100% 재이용'

아울러 A업체의 대기오염물질 배출구는 외부가 아닌 공장 내부에 있다. 공장 내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수은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구조다. 이에 환경부는 공장에 대한 현장점검 등 업무협조를 고용노동부에 요청한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수은이 함유된 폐수를 100% 재이용하기 때문에 방지시설이 필요 없다는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며 “재이용을 하더라도 오염물질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거쳐야 하는데, A업체는 약품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A업체가 사용하는 약품성분은 락스와 거의 다를 것이 없다”고 밝혔다.

A업체는 다시 가입을 요청한 상태이며, 공제조합 측은 관련 서류를 검토한 후 가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A업체 관계자는 “우리 공장은 국내에서 가장 좋은 설비를 가지고 있으며, 공제조합의 가입 거부 사유는 핑계일 뿐”이라며 “대기오염물질을 제대로 처리하기 때문에 배출구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 설치한 것이다. 배출구를 외부에 설치한 다른 업체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공제조합 관계자는 “제대로 처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웠던 과거 재활용협회 시절에도 처리비를 100원이나 지급했지만, 현재는 2016년 신설된 수은 기준치 0.005㎎/L를 지키면서도 처리비를 80원으로 낮췄다”고 주장했다.

힘들게 정상화된 조명재활용 시장이 다시금 난장판으로 변할 위기에 처했다. 부실 업체에 재활용 자격을 줘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수백억을 횡령해 자기 배를 채웠던 과거 사례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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