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조명래 원장 인터뷰

사회가 지속가능할 때 비로소 환경·경제가 뒤따라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환경평가기구 위상 세울 것

[환경일보] 1992년 설립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국책연구기관이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과 달리 인문사회 측면에서 정책수립을 위한 연구를 하기 때문에 소속된 이들의 자부심도 남다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환경부는 국토부 2중대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했고 4대강 사업을 비판한 전문가들은 유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KEI 역시 연구에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권이 바뀌었고 KEI에도 신임 원장이 취임했다. 이제 KEI는 바뀔 수 있을까?

조명래 신임 원장은 대학교수이면서 동시에 오랜 기간 지자체 운영에도 참여했고 환경정의 등 시민단체에서도 일했다. 도시계획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활동가였던 조명래 원장이 우리나라 환경정책에 점수를 준다면 얼마나 줄까? <편집자 주>

KEI 조명래 원장 <사진=김경태 기자>

우리나라 환경정책은 B학점

조 원장은 “우리나라 환경부 환경정책은 나쁘지 않다. 점수를 준다면 B학점 정도는 주고 싶다”며 “우리나라 환경 문제는 환경부의 환경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비환경 분야의 정책들, 예를 들면 개발중심의 정책들이 환경을 후퇴하게 만든 것”이라고 진단했다.

환경부가 제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든 외부적인 요인이 더 컸다고 본 걸까?

그는 “지난 정부까지 이른바 환경부를 국토부 2중대로 부를 정도로 환경정책을 제대로 수립하기 힘든 여건이었다. 내용과 형식은 좋았지만 실행 측면에서 한계가 많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 환경정책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가 ‘환경정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환경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조 원장은 “미국 사회에서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환경적 측면에서 불평등이 발생했고 이것이 미국의 환경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며 “클린턴 정부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환경정의”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우리나라 환경정책이 지금까지의 대기, 토양, 수질 등 환경매체 중심에서 사람을 포함한 생물, 즉 수용체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고 환경부 4대 비전의 하나로 환경정의가 자리 잡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환경정책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조명래 원장은 대학교수이면서 동시에 서울시 지속가능발전위원장 등 지자체 운영에도 오랜 기간 참여했고 환경정의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이 필요하다

조 원장은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는 최종 고객인 정부가 만족해야 한다는 게 통상적인 생각이고,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는 계속 바뀐다”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인 만큼 정부가 바뀌더라도 지속되는 정책,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 원장은 “지금 KEI에 필요한 것은 국민과 함께 하는 선도국책연구다. 1970~1980년대 KDI가, 이후에는 국토연구원이 주도했고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환경이 주도해야 한다. 과거에 개발이 우선됐다면 앞으로는 환경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개발에 앞서 환경적 가치를 우선하는 것. 환경이 다른 가치를 포괄하는 것. 우리 사회는 수십년간 지속가능발전을 이야기했지만 현실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지속가능발전은 무엇일까?

조 원장은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지속가능발전에 대해 상당히 많이 이야기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사회가 되지 못했다. 왜 그럴까? 여전히 개발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라며 “환경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환경인들조차 제대로 내면화 하고 실천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 사례로 조명래 원장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꽤 유명한 채식주의자다.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오랜 기간 육식을 하지 않았다. ‘환경=채식’이라는 등식이 수립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환경인들조차 환경과 남을 위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조 원장은 “환경단체에 있으면서 뒤풀이자리가 항상 불편했다. 대부분 고깃집에 갔는데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회식자리 내내 마늘만 먹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환경을 한다는 사람들조차 생명을 위한 배려, 남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가부장적인 남편이 밖에서는 양성평등을 외치고, 민주화를 외치면서 직원들에게 꼰대질을 일삼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조 원장이 제시한 해법은 ‘사회적 지속가능성’이다.

조 원장은 “우리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사회적인 삶 자체가 지속가능할 때 환경, 경제가 뒤를 따를 것”이라며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경제와 환경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반드시 필요하고 나는 그것을 사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조명래 원장은 지난해 11월13일 KEI 11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사진제공=KEI>

환경평가 독립성, 법률로 보장해야

KEI 두 축 가운데 하나는 바로 환경영향평가다. 대규모 개발사업의 경우 KEI가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하게 되는데, 민간사업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느슨한 평가를 한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4대강 사업에서는 ‘개발의 면죄부’를 제공했다는 오명을 떠안았다.

그의 저서 ‘녹색토건주의와 환경위기’는 이명박 정부의 환경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쓴 책이었다. 책에서 조 원장은 환경이 개발을 위한 도구가 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조 원장은 “청계천 복원에 대해 당시 이명박 시장은 환경을 복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영향평가를 거쳤기 때문에 환경을 배려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환경은 늘 부차적이었고 개발을 정당화 시키는 ‘도구’가 되고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조 원장은 KEI의 환경영향평가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려 한다. 그는 “환경평가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도록 독립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정권 차원의 과제라고 재검토를 요청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말뿐이 아니라 규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환경평가기구로서 위상을 세우겠다. 이 부분은 정부에게 확답을 받으려고 한다. 정부에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독립성과 함께 사회인문적인 측면에서의 확장도 필요하다는 게 조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4대강 사업의 예를 들자면 수질, 수량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경관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며 “환경영향평가제도 도입 이래 어떻게 운영됐는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해 안팎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평가는 연구원들의 몫

흑산도공항이나 설악산 케이블카 등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조 원장은 말을 아꼈다. 연구원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는 “나보다는 연구자들의 평가가 중요하다. 나도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진행되는 객관적인 절차에 대해서만 보고받을 뿐, 내용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며 “다만 연구원 내에서 (흑산도공항)개발이 문제가 있다는 검토의견을 냈고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원들의 의지나 연구결과를 존중하는 것이 원장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연구원장이 독립성을 보장해주면 하루아침에 연구원이 바뀔 수 있을까? 10여년간 보이지 않는 압박을 받고, 소위 ‘되는 연구’만 해왔던 타성을 순식간에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국책사업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연구만 했던 연구자는 전문성에 대해서도 의심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 조 원장은 “연구원들이 사실 트라우마를 많이 갖고 있다. 다들 학문적 정체성, 자존감을 갖고 있음에도 국책연구기관이라는 특성상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만 할 수는 없었다”며 “객관적으로 연구했어도 밖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연구원들이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조 원장이 제시한 해결방법은 앞서 언급한 독립성 강화와 함께 평가의 단순화다.

그는 “연구자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수없이 많은 평가다. 이제는 급여까지 평가가 좌우한다. 평가로 인해 조직 내부에 위화감이 생기고 불신이 생긴다”며 “그렇다고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당위성 때문에 공은 자기에게 돌아오고 결국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내부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은 너무 과도한 평가”라고 밝혔다.

이어 조 원장은 “1년에 1회 실시하는 기관평가를 3년에 한번으로 줄여달라고 요청할 생각이다. 내부평가는 좀 더 간략하게 하려 한다”며 “유사한 평가가 너무 많다. 평가방법을 단순화하고 결과에 대해 승복할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조직과 달리 공공기관은 매우 많은 내부규칙들이 있고 수많은 평가가 있다. 연구자로서 본연의 임무가 아닌 평가에 얽매이게 되면서 연구가 부실해지면 평가 역시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평가를 잘 받을 수 있는 연구에만 집중하게 되고, 이를 위해 평가자인 정부가 원하는 연구에 매달리게 된다.

세종에 위치한 KEI 원장실에서 인터뷰를 진행 중인 조명래 원장과 김익수 편집대표.

‘환경연구원’ 개명 지지율 높아

환경연구원 개명 논의는 조 원장 취임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지지율이 상당히 높다. 조 원장 역시 이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조 원장은 “지금 KEI는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라는 명칭에 갇혀 있다. 환경정책을 만들고 평가를 한다는 두 가지에 매몰되고 있다”며 “KEI는 인문사회 분야, 다시 말해 환경권, 환경정의, 환경철학, 교육 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앞으로는 주류정책을 녹색화 해야 한다. 이는 환경부만 녹색화 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 교통, 도시개발, 심지어 복지와 문화까지 녹색화 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녹색성장처럼 말만 환경이고 부차적인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주류정책의 녹색화를 위한 연구원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KEI는 시민참여연수, 환경콘서트, 시민단체와 함께 하는 공청회·세미나, 전국환경투어, 원내 100분토론 등 다양한 시도를 계획하고 있다. 정부를 위한, 그들만을 위한 연구에서 탈피해 시민들에게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해서다. 아울러 사이버교육을 공식화시켜 온라인까지 확대하고 전임 원장시절부터 추진한 KEI 부설 환경정책대학원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조 원장은 “거창한 슬로건보다 권위를 내려놓고 연구원들의 고충을 듣고 소통하는 원장이 되겠다”라고 밝혔다.

정권과의 소통이 아닌 연구원, 시민과의 소통이 앞으로 KEI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담=김익수 편집대표, 정리=김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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