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전염병, 공장식 밀집사육의 한계
동물복지 고려하면 리스크 줄일 수 있어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교육문화관=환경일보] 김은교 기자 = 구제역·조류독감 등의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예방적 살처분’ 관련, 문제점 지적과 개선 요구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포럼 지구와 사람은 지난 7일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예방적 살처분과 동물법’ 강좌를 열어 현재의 동물 살처분 정책이 초래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와 피해 사례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대 이후부터 구제역과 조류독감 등이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2016년 말부터 2017년 봄까지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해 닭·오리 등 가금류 수천만 마리가 살처분 됐으며 같은 기간 함께 발생한 구제역의 여파로 많은 수의 소와 돼지도 살처분 됐다. 당시 발생한 피해보상액, 방역비를 포함한 직·간접적인 경제적 피해는 수조 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축전염병의 상시화라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예방적 살처분 집행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은 동물이 예방 차원에서 함께 살처분 대상이 돼 그 수와 규모는 더욱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포럼 지구와 사람'의 2018 첫번째 지구법 강좌 '예방적 살처분과 동물법'에서 발표를 맡은 함태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김은교 기자>

또다른 피해 양산, ‘예방적 살처분’

현재 예방적 살처분 정책의 확대는 여러 가지 문제점과 부작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가축 매몰로 인한 2차 환경오염 피해에서부터, 살처분 참여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 그리고 병에 걸리지 않은 동물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타당성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살처분 된 동물 사체의 사후 처리 및 관리 미흡으로 인해 매몰지 침출수가 유출되고 있으며 지하수 오염, 부근 토양오염 등의 환경보건상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해당 문제는 인근 지역 주민들의 신체와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주게 되는데, 문제 해결을 위한 오염 지하수·토양 정화에는 막대한 노력·시간·비용이 들어간다.

살처분에 참여한 농민이나 공무원들이 정신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가축매몰에 따른 충격 조사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는 축산업 관계자와 공무원들이 다수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살처분 작업에 참여한 뒤 정신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살처분과 도축은 동물의 생명을 박탈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것을 행하는 목적과 그 결과물인 동물 사체의 사회적 가치(폐기물-상품)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또한 그중에서도 살처분은 살아 있는 동물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결정 과정이 매우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 법적 규율 또한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동물 살처분은 현재 환경오염, 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동물 생명권 박탈 등의 2차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인간법vs동물법, 리스크 완충지점은

이날 강좌의 발표를 맡은 함태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축전염병 피해를 막기 위해 이뤄지는 예방적 살처분은 잠재적 위험 가능성과 위험이 불확실할지라도 그로 인한 손해가 중대하고 회복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 일찍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즉 ‘사전배려의 원칙’이 적용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위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리스크법’으로써 예방적 살처분이 시행되고 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함 교수는 이와 같은 점에서 인간의 법인 ‘리스크 법’과 동물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동물법이 상충된다고 얘기한다. 동물법적 입장에서는 살처분의 대상이 되는 동물에게도 고유한 이익이 존재하므로, 질병 관리 정책 선택에 있어서도 최대한 동물의 이익이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함 교수는 “동물법적 측면에서 고려된 정책수단이 경우에 따라서는 리스크를 약화시키거나 잔존리스크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기존의 공장식 축산을 동물복지 축산 정책으로 전환할 경우, 가축전염병의 발병 비율을 현저히 감소시켜 현재와 같은 대량 살처분의 문제들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 복지, 당위적 존엄 문제

그동안 위해 방지를 위한 동물 관리는 기본적으로 동물의 이익보다 축산업과 공중보건의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함 교수는 오늘날 가축전염병이 상시화 되고, 그 결과 살처분 동물 수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공장식 밀집사육’에 따른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가축전염병 리스크를 축소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동물복지’인 것이다.

동물의 존엄과 가치는 가치개념이다. 존재의 문제가 아닌 당위의 문제로서 사회구성원의 가치판단에 기초한다. 또한 동물의 존엄과 가치는 동물복지를 통해 실현된다.

이와 관련해 함 교수는 “동물의 존엄과 가치 논의를 통해 전통 법학 내 동물의 지위를 고양시켜야 한다”고 말하며, “질병의 전파 또는 확산의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일정 기간 살처분을 유예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라는 취지의 규정 방안을 검토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입법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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