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전통주 덕후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 인터뷰

[환경일보] 서효림 기자 = 막걸리는 ‘아무렇게나 함부로’ 또는 ‘조잡하다’는 의미인 ‘마구’의 준말 ‘막’과 ‘거르다’는 뜻의 ‘걸리’가 합쳐진 말로 ‘아무렇게나 걸러낸 술’을 뜻한다. 비록 뜻은 그렇지만 막걸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민속주로 백성이 가장 즐겨 마시는 술이라 해 향주라 불리기도 했다. 열풍은 사그러 들었지만 이 땅에서 나는 술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최근에는 막걸리 학교가 열리도 했다.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품질 좋은 우리 술을 발견하던 청년은 어느새 200여종의 전통주를 보유한 전통주 전문점의 대표가 됐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스스로를 ‘전통주 덕후’라 칭하며 전통주 유행의 열풍에서 외면당한 영세 양조장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술이 좋아 만든 ‘백곰막걸리’

평일 저녁 찾아간 백곰막걸리 2호점은 (중구 남산동)는 전통주 전문점으로 200여종의 전통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막걸리를 비교 시음할 수 있고 지역별 제철 재료를 이용한 안주메뉴를 선보여 전통주와 한식의 어우러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1호점에 이어 2호점을 열기 까지의 시간을 이 대표는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던 날’이라고 했다.

백곰 막걸리에는 무려 200여 종의 전통주가 있다. 국내 전통주 주점 중 최다량을 보유한 곳이다. 여기에 나무랄 데 없는 한식 메뉴까지 선보이니, 애주가는 물론이고 색다른 것을 찾아다니는 젊은 층에게 ‘핫플레이스’로 자리잡게 됐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쉬운 것 없던 창업부터 핫플레이스까지

한 대기업에서 축산·수산 MD(상품기획자)로 일했던 그는 몇 해 전 회사를 그만두고 우리 술의 세계에 빠졌다. 원체 술꾼이었던 데다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만난 다양한 전통주의 존재가 그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열악한 현실에서도 자기 색깔을 지키고 있는 영세한 양조장에 도움을 줄 방법이 뭘까 생각했다. 사단법인 막걸리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서울 한복판에 우리 술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첫발’을 떼기로 했다

이승훈 대표는 백곰 막걸리를 열게 된 이유에 대해 “원래 우리술 모음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높은 품질의 우리술 상당수를 발견했는데, 이 많은 술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백곰 막걸리를 열게 된 것이다.

함부로 만든 ‘막걸리’에

애틋하게 수작(酬酌)을 부리다

시행착오 끝에 명동 2호점까지 열어

술에만 신경쓰다 보니 음식 맛을 놓쳐 “유명하지만 맛 없는 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가게를 운영하다보니 술도 술이지만 음식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과 방문한 손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한식, 양식, 주점 등 다양한 경력이 있는 직원을 채용하며 음식 메뉴에도 힘을 쏟자 혹독하던 평판이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명동에 위치한 만큼, 강북 지역의 고객과 외국 관광객이 접근하기 쉽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막걸리는 대부분 유리병 포장인 프리미엄급 술로 가격대가 저렴한 것은 아니다. 알코올 도수 10도 내외가 가장 많고 19도 짜리 막걸리도 있다. 주점은 과거 막걸리 전문 주점과 달리 카페 형으로 꾸며 젊은 층 고객이 더 많다. 가격에 대한 저항이 적은 외국인에게 우리 술을 소개한다는 자부심도 있다.

성공의 열쇠는 ‘고품질 술’과 ‘사람’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를 일체 쓰지 않는 술들만 취급하고 있으며 전통 누룩, 우리 햅쌀을 사용한 술들 위주로 술 리스트를 꾸몄다. PR5번가 이지민 대표는 “전국에 수백 개 양조장이 있지만 워낙 영세하다 보니 제대로 제품을 알릴 수단이 없었는데 백곰막걸리 같은 전통 술 주점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홍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술의 품질 만큼 신경 쓰는 것은 ‘사람’이다. 이 대표는 전통주 지식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교육에서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백곰 막걸리의 직원들은 일반 고객에게 낯선 전통주를 쉽게 설명해주고, 전통주와 어울리는 음식도 알아서 추천하기도 한다. 그는 “한 명 한 명의 직원을 소중히 여기기에 팀워크가 생기고, 이 힘이 백곰 막걸리와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막걸리 열풍이 최고조에 이른 건 2008~ 2009년이었다. 막걸리가 건강한 술로 인식되면서 막걸리 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한때 와인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대체재로까지 이야기됐지만, 거품은 소리 소문 없이 걷혔다. 여전히 자기 색깔을 유지하며 선전하고 있는 곳은 ‘세발자전거’ ‘월향’ ‘얼쑤’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전통주 열풍이 불었는지도 잘 모르는 것이 국내의 전통주 양조장의 현실이다.

이승훈 대표는 영세한 전통주 양조자 분들은 막걸리의 유행조차 몰랐다며 “일부의 생산자만 수혜를 누리고 대다수는 명성이나 수익에 있어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주 업계의 성장이 저의 과거이자 현재, 미래의 목표”라 밝히며 영세한 전통주 생산자를 돕고 맛있는 전통주 위주로 가게를 채워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멀지 않은 미래에 전통주 이야기를 담는 매거진을 발행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