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개발로 소수민족 터전 파괴, 주민 건강피해 심각

[환경일보] 러시아 최대 탄광인 쿠즈바스 지역 석탄 채굴 확대가 지역 토착민인 쇼르인의 삶과 주변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의 석탄 최대 수입국이 한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숲보호단체 페른(Fern)과 탈석탄단체 코울액션네트워크(Coal Action Network)는 3일, 새 보고서 ‘시베리아에 천천히 찾아오는 죽음’을 공동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쿠즈바스 석탄을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한국(14.9%)이었고, 이어 일본(10.5%) 영국(8.5%) 터키(8.1%) 순이었다.

세계적인 석탄 생산량 감소에도 불구, 지난해 러시아 석탄 생산량은 전년 대비 3% 증가했으며, 특히 쿠즈바스에서 6.2% 늘었다.

쿠즈바스는 러시아 석탄 생산의 약 59%를 담당하고 있다. 세계 3번째로 많은 석탄을 수출하는 러시아의 수출량의 76% 이상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

2016년 쿠즈바스 및 러시아 석탄 수출량과 주요 수입국 <자료제공=숲보호단체 페른(Fern)·탈석탄단체 코울액션네트워크(Coal Action Network)>

심각한 인권침해와 환경파괴

문제는 쿠즈바스 지역의 석탄 채굴이 삼림을 파괴하고 공기와 물, 토양을 오염시키며 광산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 피해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쿠즈바스 광산은 다시 메우는(backfilling) 작업을 진행하지 않으며, 70~80%가 노천채광 방식으로 이뤄져, 심각한 토지파괴 및 오염을 유발한다. 더구나 인구가 많은 지역과 가까이 있어 지역주민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다.

실제 케메로보주(州)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이 주의 가장 큰 탐강(Tom River) 전역이 광산 및 공장 등에서 유입된 페놀과 암모니아성 질소, 철, 망간 등으로 심하게 오염됐다.

지역주민들은 평균수명은 러시아 평균인 70.5세에 비해 3~4세 짧다. 또 지난 10년간 암 발병율은 11%나 늘었고, 결핵과 심혈관 질환 등도 증가하는 추세다.

보고서는 투르크계 토착 원주민인 쇼르인 증언을 통해 이 같은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쇼르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과 마을이 광업으로 황폐해졌고, 고유한 문화와 삶의 방식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숲과 강, 흙 등을 믿으며 채집과 수렵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자연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식수조차 악취 때문에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지난 7년 동안 이 지역 쇼르인 인구는 절반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무분별한 석탄 채취로 지역환경이 망가졌고 주민들의 건강 역시 크게 악화됐다. <사진제공=숲보호단체 페른(Fern)·탈석탄단체 코울액션네트워크(Coal Action Network)>

인권운동가에 대한 살해 협박까지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석탄 채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심한 보복을 당하고 있다. 6년 동안 쿠즈바스 광산에 반대한 활동가 야나 타나가체바(Yana Tannagacheva)는 최근 같은 활동가인 남편과 함께 자녀들을 데리고 러시아를 탈출했다.

타나가체바는 “지속되는 살해 협박에도 권리 투쟁을 멈추지 않자 당국은 접근 방식을 바꿔 아이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협박과 감시를 당하는 동안 자녀들은 등하교 길이나 음악 레슨을 갈 때 미행을 당했으며, 도피 후에도 경찰은 이들 가족을 찾기 위해 친정 부모님까지 찾아왔다고 전했다. 현재 타나가체바는 유럽연합으로 망명을 시도하고 있다.

타나가체바의 고발로 지난해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지역 내 쇼르인의 대우에 관한 일련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당사국은 쇼르인 대표 및 기관과의 긴밀한 협의 하에 쇼르인의 권리를 완전히 회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사항이 포함됐다.

CERD는 2012년 석탄 채굴을 위해 폐허가 된 쇼르족 마을인 카자스(Kazas)를 예로 들며 마을 주민들을 위한 충분한 재정착 계획이 없던 점을 지적했다. 당시 주민들 가운데 집을 파는 것을 거부했다가, 방화로 모두 집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지난 7년 동안 이 지역 쇼르인 인구는 절반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사진제공=숲보호단체 페른(Fern)·탈석탄단체 코울액션네트워크(Coal Action Network)>

'불편한 진실' 직시해야 

보고서 저자인 페른의 활동가 다리아 앤드리바(Daria Andreeva)는 “쿠즈바스에서 목격한 것은 ‘인재(人災)’이며, 녹색 경제를 빨리 실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간접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공동저자이면서 코울액션네트워크활동가인 앤 해리스(Anne Harris)는 “쿠즈바스부터 전기를 소비하는 우리 가정과 기업에 이르기까지 검은 석탄 자국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는 헐떡이는 쇼르인들, 죽어가는 강, 쫓겨난 야생동물, 그리고 쇼르족 근거지부터 텔레우트족의 근거지를 연결하는 광대한 철도와 해상길의 오염된 땅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각국 정부와 기업은 석탄이 무해한 방식으로 공급된다고 믿고 싶겠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한국을 비롯한 국가들이 석탄 사용을 줄여 기후를 보호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쿠즈바스 등 광산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며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페른의 활동가 하나 모왓(Hannah Mowat)은 “석탄 채취를 위한 벌목은 수십억 인류와 생물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기후에는 두 배로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리기후협약의 내용을 성실히 달성하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화석 연료를 단계적으로 중단할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석탄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환경운동연합 이지언 에너지국장은 “한국의 석탄 수입 증가는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위기의 악화를 의미한다. 더구나 우리가 수입하는 석탄이 환경과 인권을 심각히 침해하며 생산됐다는 ‘불편한 진실’이 이번 보고서를 통해 드러났다”며 “한국은 하루 빨리 석탄 중독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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