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국회기후변화포럼 운영위원

최준영 국회기후변화포럼 운영위원
환경일보 객원기자

[환경일보]  대도시에 물 공급이 중단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난영화에서나 볼 법한 혼란과 참상이 빚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뻔했다. 머나먼 아프리카, 그곳에서도 가장 남쪽의 케이프타운(Cape Town) 이야기다.

이름만으로도 희망이 샘솟는 것 같은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 위치한 인구 43만명의 케이프타운은 전쟁이나 테러가 아닌 평화 시에 가뭄 때문에 물공급이 중단되는 데이 제로(Day Zero)에 직면했었다.

2018년 2월 기준으로 향후 세 달 내에 큰 비가 오지 않으면 물공급은 2018년 5월에 중단될 예정이었다. 다행히 1인당 50리터씩만 물을 배급하는 엄격한 수요제한으로 일일 물 사용량을 12억 리터에서 5억1000만 리터로 줄임으로서 물 공급 중단 시점을 일단 2019년으로 미룰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위기상황은 지속되고 있고, 물 배급 역시 계속되고 있다.

케이프타운의 물부족 사태는 케이프타운이 그동안 환경친화적 도시정책과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모범적인 도시로 알려진 도시였기 때문에 충격으로 다가온다. 케이프타운은 2000년 이후 인구가 30%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물 절약 정책을 통해 전체 물 사용량은 거의 비슷하게 유지해 온 모범적인 도시였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가장 큰 이유는 오랫동안 가뭄이 지속되면서 주요 댐의 담수율이 26% 수준까지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외부적 요인 이외에 기존 물절약 정책의 성공이 이런 위기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케이프타운은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에 대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누수배관 교체 및 수리, 계량기 부착대상 확대, 수도요금의 조정 등을 시행해 왔으며, 이를 통해 물 수요 억제에 성공해 왔다. 그렇지만 물 수요 억제 정책의 성공은 대체 수원(신규 댐, 지하대수층, 해수담수화 등) 확보를 위한 투자 소홀로 이어졌으며, 이 결과 예상을 뛰어넘는 가뭄이 지속되자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일정 범위 내에서는 절약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지만 그 수준을 넘어설 경우에 대비한 별도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비판인 셈이다.

만약 우리에게 비슷한 문제가 닥친다면 어떻게 될까?

케이프타운은 상수원이 6개로 그나마 여러 개지만 수도권의 경우 오로지 팔당 1곳에 불과하다. 한 곳의 상수원에 2000만명이 목숨을 걸고 있는 이런 상황은 정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1990년대 동강댐 취소 이후 대형댐 건설을 통한 수자원 확보는 불가능해졌고, 4대강 사업 이후에는 강에 손을 대는 것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여론도, 행정당국도 상수원 개발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과감한 수요억제 정책을 전개하고 있지도 못하다. 2016년 1인당 일일 물사용량은 287리터로 10년 전인 2006년 276리터에 비해 약 4% 증가했으며, 증가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환경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물관리의 핵심은 ‘수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케이프타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수량’ 역시 중요한 요소이며,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여건의 변화는 ‘수량’의 중요성이 과거에 비해 커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별도의 수원 확보는 결국 신규 댐 건설과 해수담수화의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지만 과연 물관리일원화가 이뤄질 경우 수자원관리를 전담할 환경부가 이를 추진할 수 있을까? 수자원관리 일원화는 단순히 관할 부처를 환경부로 일원화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환경부는 지금까지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던 수량의 문제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과연 준비가 돼 있을까?

 

<글 / 최준영 국회기후변화포럼 운영위원, 환경일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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