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국회기후변화포럼 운영위원

병 주고 약 주는 정책 모순 ‘화물차 유가보조금’
운수사업자, 가격체계, 운송수단 대안 마련해야

 

최준영 국회기후변화포럼 운영위원
환경일보 객원기자

[환경일보] 1990년대 중반 담배회사에 입사했던 선배가 사무실에 “담배로 망친 건강 홍삼으로 되찾자”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꼽을 잡았던 기억이 있다.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병 주고 약 주고’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한여름 더위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 행위나 미세먼지를 걱정하면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로 공기청정기를 열심히 돌리는 행위가 대표적일 것이다. 순간적으로는 최선의 해결책이겠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하는 행위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행위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행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 정책이 이렇다면 곤란할 것이다. 정책 가운데 대표적인 병 주고 약 주고 정책은 ‘화물차 유가보조금’이 아닐까?

2001년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화물차 유가보조금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6년 기준으로 총 2조5077억원이 지급됐다. 화물자동차는 모두 경유를 연료로 하기 때문에 대기 중에 2조5000억원어치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도록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셈이다. 한쪽에서는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오염 절감을 위해 수천억원의 예산을 편성·집행하고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줄이고 LNG발전소 가동을 높이도록 강요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보조금을 지급해 가며 대기 중에 오염물질을 배출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특정 부문이나 대상을 지원하는 데는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이 있다. 가격정책은 편리하지만 자원을 남용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화물차 유가보조금 제도를 시행하게 된 계기는 화물운수업계의 수익률 저하로 인한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대기오염이나 온실가스 배출 같은 문제는 고려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모두가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문제는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로 꼽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2조원 넘는 돈을 대기오염물질 생성에 쏟아붓고 있는 것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보조금 대신 운수사업자 직접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노후된 차량을 계속 운행하더라도 똑같은 보조금을 지급받는 게 아니라 배출가스가 훨씬 적은 신차를 구매할 때 충분한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환경적 외부효과를 반영한 에너지 가격체계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유류뿐만 아니라 전력요금, 급전우선순위 등 모든 오염과 관련한 연소행위에 대해 같은 기준을 적용해 새롭게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전기 및 수소화물차 개발과 관련 인프라 확충에 예산을 투입해 경유차 이외의 운송수단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

어느 하나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담배로 망친 건강을 홍삼으로 되찾자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시스템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함을 기대해 보고 싶어진다.

 

<글 / 최준영 국회기후변화포럼 운영위원, 환경일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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