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지구와사람 등 ‘가축 살처분 실태와 쟁점 진단 세미나’ 개최
각계 전문가 모여 토론 펼쳐··· 가축 생명권 존중 뜻 모아

지난 9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가축 살처분 실태와 쟁점 진단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강재원 기자>
이번 세미나는 정의당 이정미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표창원‧김현권‧송갑석 국회의원, 화우공익재단, 포럼 지구와사람, 재단법인 동천, 사단법인 선이 주최했다. <사진=강재원 기자>

[국회=환경일보] 강재원 기자 = 지상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생매장 당해 곧 생을 마감하리란 사실을 본능으로 아는 돼지 수천마리가 쏟아내는 기함이었다. 그것은 발악이었고, 절규였으며, 인간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었다.

“나는,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가?”

2010년 겨울 대한민국에 구제역이 몰아쳤다. 소‧돼지‧염소 등 가축 340만 마리가 땅 속에 묻혔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경기도 이천시 생매장 현장에 잠입해 그들의 스러지는 마지막 모습을 세상에 알렸다.

시간은 흘렀지만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본지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이하 AI)로 살처분 된 가축은 7000만 마리가 넘는다.

닭‧오리 등 AI로 살처분 된 두수가 약7000만 마리, 소‧돼지‧사슴 등 구제역으로 살처분 된 두수가 약22만 마리다.

가축 살처분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생명을, 묻다-가축 살처분 실태와 쟁점 진단’ 세미나가 지난 9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정의당 이정미 국회의원 <사진=강재원 기자>

정의당 이정미 국회의원은 인사말에서 “AI, 구제역, 살충제 계란파동은 많은 국민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며 “근본 원인은 공장식 동물농장 사육방식과 비위생적인 관리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무분별하게 가축이 살처분 되고, 살처분으로 인해 2차 환경오염문제가 발생하고, 살처분 과정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며 “가축 살처분에 대한 정확한 원인 분석과 근본적인 제도개선 방안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국회의원 <사진=강재원 기자>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국회의원은 “농장동물의 경우, 사육 환경과 도축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공론화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또한 “생명이 있는 동물은 효용 가치가 사라지는 즉시 내다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물 수백만 마리를 한꺼번에 처분하는 행위가 최선의 선택인지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며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 의식 변해야 농장동물복지 가능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 <사진=강재원 기자>

이어서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장이 ‘살처분 현실로 본 생명존중과 동물복지’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우 학장은 “사람과 동물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자 타자와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며 “인간과 동물의 공통 기반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아울러 “농장동물에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동물복지와 이어지는 생명윤리의 기반”이라 밝히면서 동물복지에 대한 정의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동물이 건강하도록 돌보는 것 ▷동물이 고통과 학대를 당하지 않는 것 ▷동물에게 적절한 주거환경, 영양, 질병예방과 치료, 인도적인 취급을 제공하는 것 ▷안전한 환경에서 본래 습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을 동물복지라 말할 수 있다.

우 학장은 “EU는 2012년 산란계 베터리 케이지식 계사 건축을 금지했고, 2013년부터는 돼지 임신 중기와 말기에 폐쇄식 스톨사육을 금지하고 있다. 독일은 산란계 사육에 대한 동물보호법에 사육형태별 마리당 면적‧횃대‧급수기‧깔집면적‧조명상태 등을 규정하고 있다”고 해외 사례를 설명했다.

한편, 2012년부터 실시중인 ‘동물복지축산인증’제도에 대해 우 학장은 “현재까지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 사업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비용이 추가되고 조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이라며 “농장동물 복지분야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우 학장은 “농장동물복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 의식변화다. 일반 소비자의 생명존중과 동물복지에 대한 의식이 높을 때라야만 제도와 법 마련이 가능하다”며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내기 위한 노력이 살처분 사태로 상징되는 농장동물복지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구제역 치사율 1~5%, 왜 살처분해야 하나

문선희 사진작가 <사진=강재원 기자>

문선희 사진작가는 직접 가축 매몰지를 돌아본 경험을 소개했다.

‘가축전염병예방법’ 제24조는 ‘가축 사체 또는 물건을 매몰한 토지는 3년 이내에는 발굴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 작가는 3년이 지난 2014년 봄, 구제역으로 조성된 매몰지를 톺아보기 시작했다.

문 작가는 “발굴금지 기간이 해제된 매몰지 전국 4799곳 가운데 100여 곳을 찾아갔다. 엉뚱하게 구석기 유적지에 오리들을 파묻어버린” 곳도 있었고, “가스와 침출수 배출관을 설치하지 않은 매몰지도 적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침출수 배출관들은 터지거나 막혀있었고 여전히 지독한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법정 발굴 금지 기간이 종료된 매몰지 사이로 돼지 백골이 보인다. <사진제공=문선희 사진작가>

문제는 악취에서 끝나지 않았다. 문 작가에 따르면 한국환경공단은 2011년 2월 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4년부터 2010년 5월까지 발생한 구제역‧AI 매몰지 가운데 약 35%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환경부가 2011년 12월 매몰지 4799곳 중 300곳에 환경영향조사를 실시한 결과, 71곳(23%)이 침출유출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3151곳은 지하수 관측정이 설치되지 않아 침출수유출여부 자체를 판단할 수 없었다.

문 작가는 “구제역을 ‘가축전염병예방법 제1종 가축전염병’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제역은 소‧돼지‧양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우제류 동물에 감염되는 질병이다. 입과 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기고, 고온 현상을 보인다. 전염성은 높지만 치사율은 1~5%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가축 살처분이 훼손한 경제가치

김영환 동물법비교연구회 연구원 <사진=강재원 기자>

김영환 동물법비교연구회 연구원은 지난 5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제시하며 “2000년 이후 가축 전염병으로 지출된 금액은 AI(2003~2018) 1조375억원, 구제역(2000~2018) 3조3366억원으로 총 4조3741억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산란계 농장을 동물복지농장으로 전환했을 때, 발생하는 소득변화를 연구한 결과를 인용해 소개했다.

이 연구는 마리당 최소면적이 0.05m2 가 0.14m2로 달라지는 것을 가정했다. 이렇게 되면 전체 사육 마리수는 2.8배 감소한다. 또한 현재 운영 중인 충청북도 23개 동물복지농장에 지난 3년간 AI 감염이 없었던 점을 감안해, 동물복지농장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가정했다.

김 연구원은 “위 연구에 따르면 산란계 농장 연 평균 소득은 73억원 감소한다. 그러나 가축살처분으로 인한 손실 2987억원이 발생하지 않아 동물복지농장은 연 평균 2000억원 이상 이익을 얻는다”며 “여기에 환경오염을 피할 수 있게 되면서 발생하는 이익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축살처분이 훼손한 경제가치는 도덕대상 가운데 일부만을 다룰 뿐”이라며 “많은 생명체의 죽음, 가축 살처분에 참여한 사람들이 입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가축 살처분 업무를 처리한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자살한 축협 직원은 이 훼손된 경제가치에는 반영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예방적 살처분, 구체적 법조문 필요해

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축 살처분 법제 분석 및 입법적 개선방안’을 발제했다.

우선 함 교수는 살처분을 “질병관리나 생태계관리 등 일정한 목적달성을 위해 동물의 생명을 박탈해 소각‧매립 등으로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함 교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제20조와 관련해 “살처분 대상은 생명을 지닌 살아있는 동물이다. 특히 예방적 살처분은 가축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다”며 “지금처럼 같은 조항에서 일반적 살처분과 예방적 살처분을 획일적으로 집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므로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뿐 아니라 가축 살처분 결정과 집행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도 심각하다. 법적으로 살처분명령 주체는 시장‧군수‧구청장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중앙정부와 시‧도에서 조치명령이 내려온다.

시장‧군수‧구청장은 재량으로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조정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결정에 따르는 책임을 온전히 본인이 져야하기 때문이다.

2017년 2월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AI가 발생했을 때, 동물복지축산농장인 참사랑농장은 산란계 살처분 명령을 받았다. ‘예방적 살처분’이란 명목이었다. 참사랑농장 산란계는 살처분 명령 전에 AI 음성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익산시는 살처분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본지 5월15일 자 '익산시 명분없는 살처분 명령으로 애꿎은 농장 피해' 참조)

함 교수는 “예방적 살처분의 대상이 됐던 가축은 가축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은 건강한 상태에 있으므로, 살처분 명령을 취소할 수 있게 해줘야한다”며 “예방적 살처분 명령의 집행방법, 절차, 집행유예, 취소 등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세부적인 규정을 둬야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지난 3월 국회에 제출됐던 대통령 헌법개정안 제38조 제3항은 정부의 동물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함 교수는 “입법 측면에서는 헌법개정안이 명시하고 있는 동물보호정책 의무를 체계적으로 실현할 ‘기본법’ 제정을 고려할 수 있다”며 “가칭 ‘동물정책기본법’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동물정책기본법’에 ▷동물정책 방향과 이념 설정 ▷동물정책 기본원칙 명확화 ▷국가‧지자체‧국민 등의 책무 정리 ▷동물보호, 축산, 방역 분야 행정 연계 ▷부처 간 동물관련 업무 연계 등의 내용을 담을 것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함 교수는 “예방적 살처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근본 방안은 아예 살처분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라며 “상시방역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살처분된 가축, 소멸화방식 도입해야

권순원 경기도 이천시 환경보호과장 <사진=강재원 기자>

발제가 끝나고 이어진 토론에서 권순원 경기도 이천시 환경보호과장은 ‘가축매몰과 매몰지 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권 과장은 “2010년 구제역 때 38만 마리를 직접 매몰했다. 매몰과 사후관리를 7년 이상 경험했다. 공무원들은 더 많은 가축을 살리기 위해 바이러스를 묻는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가축전염병은 사전 예방으로 살처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살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야한다. 이후 환경적으로도 안전한 사후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살처분된 가축은 매몰되거나 FRP통(원형저장조)에 저장된다. 이 과정에서 매몰부지와 FRP통을 확보하고, 매몰지를 관리하는 데 문제가 따른다. 특히 매몰지는 침출수 발생으로 인한 지하수‧하천오염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감사원도 2016년 6월, 가축 사체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 과장은 “살처분 가축을 소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권 과장은 “매몰지는 3년간 사후관리를 하는데, 초기에는 침출수 발생량이 많아 특별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관리기간이 끝난 매몰지는 본래 용도대로 활용되고 있으나 그대로 두는 것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FRP통에 저장된 것은 토지활용을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빠른 시일 내애 소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축 살처분은 토양‧지하수 오염, 살처분 참여자에 대한 정신적‧육체적 피해, 농촌 지역에 가하는 사회‧경제적 피해 등 광범위한 손실을 끼치고 있다. <사진=강재원 기자>

구제역‧AI, 동물복지만이 해답

한편,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동물보호활동가로서 경험했던 사례를 토대로, 구제역과 AI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2010년 인천시 강화군에서 구제역이 발생했고, 1만2000마리가 살처분 됐다. 그 현장을 잠복해 들어가 낮부터 지켜봤다. 해가 지자 인력들이 돼지농장에서 돼지를 몰고 나와포크레인을 이용해 땅 속으로 밀어 넣었다. 돼지들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비명을 질렀다”고 지난 일을 돌이켰다.

그는 이어서 “비명을 지리는 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가만히 엎드려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지켜봤던 동물학대 현장 중에 가장 끔찍한 광경이었다. 지옥 그 자체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 3~4달을 환청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동물복지만이 해답이라고 역설했다. 구제역 같은 경우 2011년 이후 O형 백신을 주사해왔다. 그러나 최근 A형 구제역이 돌기 시작했고, 농식품부에 강한 항의를 해 O형‧A형 혼합백신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대표는 “살처분은 실패한 정책이다. 동물복지를 향상시키고, 개체마다 면역력을 길러줘야 한다. 닭들은 대낮에도 컴컴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종 먼지‧오물들과 뒤엉켜 살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저병원성 AI가 들어와도 고병원성으로 쉽게 전이된다. 학술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동물 스스로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금실 '포럼 지구와사람' 대표는 “이제는 생명존중을 바탕으로 법제도를 바꿔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사진=강재원 기자>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