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량 증가했지만 폐기물 발생량 줄이는 데는 실패
연간 100억원 넘게 재활용 아닌 엉뚱한 곳으로 새나가

[국회=환경일보] 지난 4월 수도권 등 일부 아파트 단지의 폐비닐 수거 중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재활용 쓰레기를 누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유사 사태 재발을 위해 범정부 합동으로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순환단계별 종합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재활용 체계는 달라지지 않았고, EPR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포장재 재활용제도, 즉 EPR제도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EPR(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는 제품이나 포장재 폐기물에 대해 생산자가 일정량의 재활용 의무를 지도록 하고, 이를 위해 재활용분담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생산자가 낸 분담금은 폐기물 선별과 재활용을 지원하는 용도로 쓰인다.

EPR 제도로 인한 재활용의 경제적 가치 <자료제공=환경공단>

2002년 예치금 제도를 운영할 당시 재활용량은 58만3000톤에 불과했으나, 2003년부터 EPR 제도를 시행하면서 2016년 재활용량은 131만4000톤으로 125% 증가했다.

지속적인 품목 확대와 신규 의무생산자 발굴로 재활용사업자 1개소당 의무생산자 업체 역시 2003년 6.6개소에서 2016년 11.2개로 69.7% 증가했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EPR 제도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본부 박응열 본부장은 “EPR 시행 14년간 약 2000만톤을 재활용함으로써 매립·소각 비용 절감과 재활용품 생산으로 약 10조원의 경제적 이익과 1만5000명의 고용효과를 얻었다”며 “재활용 이행 목표를 매년 100% 초과 달성해 안정적인 제도 운영 기반이 정착됐다”고 밝혔다.

폐비닐 대란으로 촉발된 재활용쓰레기 문제는 정부의 미봉책으로 수면 아래 잠자고 있을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진=김경태 기자>

재활용 분담금, 어디에 쓰나?

반면 한계점도 드러났다. 제도가 시행된지 10년을 넘기면서 소비패턴의 변화로 재활용이 어려운 복합재질 사용이 증가했다. 다양한 색상의 페트 재질 사용으로 재활용 비용 증가와 함께 재활용 제품의 품질 저하라는 결과를 낳았다.

아울러 에어캡(일명 뽁뽁이), 세탁소 의류 비닐, 1회용 비닐장갑 등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포장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EPR 대상에서 제외되는 품목들이 늘었다.

게다가 재활용 분담금이 출고량의 60~80% 수준에 불과해, 전체 재활용 비용을 부담하기에 부족했고 이에 따라 재활용 지원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소비자 패턴이 변하면서 기존의 EPR 제도는 한계를 드러냈다.  <자료제공=한국환경공단>

정부는 폐비닐 수거 대란을 계기로 무색 페트병 생산과 함께 일회용컵 사용 줄이기에 나섰지만, 강제성이 없어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

재활용 업계의 열악한 사정도 여전하다. 2016년 재활용업체 종업원 숫자를 조사한 결과 종업원이 전혀 없는 업체가 무려 3129개에 달했고 그 외에도 대부분 소규모 영세업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포장재를 배출하는 업체에서 걷은 분담금과 재활용업체에 지원하는 비용의 차이가 갈수록 벌어졌다.

이용득 의원에 따르면 ▷2014년 분담금 469억원, 지원금 423억원으로 차액이 46억원에 불과했지만 ▷2015년 차액 85억원 ▷2016년 차액 87억원에 이어 ▷2017년에는 660억원을 걷어 534억원만 지원해 차액이 126억원으로 벌어졌다. 

재활용을 위해 쓰여야 할 100억원이 넘는 돈이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간 것인데, 여기에는 재활용 분담금을 걷고 업체에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협회 운영비 등도 한몫하고 있다.

가천대학교 민달기 교수는 “제조업체가 분담금을 부담하고 국민은 하는 일이 없다? 그 반대다. 재활용분담금 역시 소비자, 즉 국민이 부담하는 것이고, 제조업체는 하는 일이 없다”며 “심지어 재활용분담금을 관리하는 협회 운영비조차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생산자들이 재활용분담금을 제품 가격에 추가시키면서, 실제로 재활용을 위해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2003년부터 EPR 제도기 시행됐지만 폐기물 발생량은 여전하다. 제도 자체만 보면 경제적 효과를 달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폐기물 발생을 억제한다는 본래의 목표는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  <자료출처=민달기 교수>

주먹구구식 폐기물분담금 부과

재활용이 어려운 품목에 부과하는 폐기물부담금 관리 역시 주먹구구식이다. 수출품, 견본품, 생분해성수지품목, VA&EPR 품목은 매출액과 관련 없이 모두 면제다. 

또한 매출액 10억원 미만도 전액 면제, 중소기업은 매출액 30억원 이하는 100% 면제, 100억원 이하는 70% 면제, 200억원 미만은 50% 면제이며 300억원이 넘어야 100% 부과된다.

가천대학교 민달기 교수

민 교수는 “대기업이 배출하는 폐기물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중소기업이 배출하는 폐기물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것인가”라며 “EPR이나 폐기물부담금 제도만 보면 성과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폐기물을 감소시키는데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민 교수는 “폐기물부담금, 자발적 협약, EPR 등 종류를 나눠 비효율적으로 운영하느니, 차라리 과거처럼 원료세를 받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빈병을 20개 이상 가게에 가져가면 빈병보증금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거부할 수 있다고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돼지 목에 걸릴 수 있다는 이유로 사료에 이쑤시개를 넣으면 안 된다며 환경부가 단속까지 나섰다”라고 꼬집었다.

실적 위주 운영이 불법 부추겨

한국자원순환단체연대회의 박필환 전문위원

이어진 토론에서도 비판은 계속됐다. 한국자원순환단체연대회의 박필환 전문위원은 “법으로 정해진 의무량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의 카운팅 체계가 바뀌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활용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박 전문위원은 “우유팩 재활용 공장에서는 두유팩 재활용이 안 된다. 그럼에도 우유팩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두유팩까지 받고 있다”고 밝혔다. 

재활용 할 수 없는 두유팩이지만 재활용 업체에서 받아들였으므로 실적으로 계산되는 불합리한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재활용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제품까지 무리하게 EPR 제도에 집어넣고 실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으로 운영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유가성이 없는 폐비닐 때문에 큰 혼란을 빚었는데, 만약 종이나 고철과 같은 유가성 있는 품목의 가격이 폭락하면 더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며 “그럼에도 품질관리, 경쟁력 제고 노력은 부족하다. 정부가 정한 재활용 방법, 회원사들끼리의 거래 등을 벗어나면 불법으로 낙인 찍혀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관료적 행정편의주의 제도

환경일보 김익수 편집대표

순환경제연구소 이승무 소장은 사회성을 강조했다. 이 소장은 “행정적인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지자체가 전체적으로 공공 재활용을 추진하고 특정 품목들에 대해서는 생산자들이 지자체에 비용을 납부하며, 품목별 특성에 따라 부담을 차등화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라며 “EPR 제도가 많은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EPR 제도는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적인 행정편의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경일보 김익수 편집대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EPR 제도를 현실에 맞게 고쳐서 제도를 위한 제도가 되지 않도록 발전시켜야 한다”며 “관리자에게만 의존하면 시장이 스스로 돌아가지 않는다. 각 주체들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생산자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자원순환국 최민지 과장

이 같은 비판에 대해 환경부 자원순환국 최민지 자원재활용과장은 “생산자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 의무율 부과와 실적 관리가 복잡하다는 점은 정부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라며 “폐기물부담금과 자발적 협약이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고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령 개정 작업 중이다. 실적관리체계의 신뢰성을 높이고 유통지원센터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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