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유출사건 항소심, 1심 뒤집고 기업 '손' 들어줘
기업 규모에 비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필요

[환경일보] 홈플러스 개인정보 유출사건과 관련 안산소비자단체협의회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항소심 법원이 1심 판결을 뒤집고 소비자에게 불리할 수 있는 판결을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강정화 회장)가 홈플러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중심으로 소비자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제도의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에서는 “개인정보 활용 이전에 국가 차원의 보호장치 마련과 함께 피해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보라미 변호사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소비자 손해배상제도의 문제점’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개인정보 보호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돼 개인정보통제권에 대한 불평등이 발생하면서 민주주의 사회에 크나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권의 UN인권이사회의 의결내용, 개인정보에 대한 손해배상과 관련된 판례들을 설명했다.

홈플러스 사건은 600만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인데 정작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는 3000명에도 미치지 못해 실제 피해자들이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배상받지 못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홈플러스 사건처럼 소송이 소비자들에게 어렵게 진행된다면 이러한 사건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개인정보열람권 행사, 직권조사 등의 입법필요와 입증책임의 전환, 기업규모에 비례한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개인정보 활용 이전에 국가 차원의 보호장치 마련과 함께 피해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제공=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손해배상책임과 입증책임’을 발표한 권대우 교수는 홈플러스 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것이 경제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기업 본인들의 이익창출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정보의 활용이 필수적인 만큼 빅데이터 등으로 소비자가 혜택을 누리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므로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입증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입증해야 하는가도 중요하다”며 “개인정보유출과 같은 위험한 영역에서는 독일의 ‘표현증명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피해자들도 손해배상 액수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근거를 통해 설명할 수 있도록 관련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개인정보 제공을 일방적인 동의가 아닌 계약으로 보아 개인정보 처리자에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부여해 이를 위반한 경우 계약상 책임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모든 입증자료는 가해자에게 있어

토론자로 나선 강신하 변호사는 홈플러스 사건을 토대로 집단소송법에서 입증이 어려다는 점을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모든 입증자료를 가해자가 가진 상황에서 피해자인 원고가 피해사실 자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와 달리 독일은 당사자가 책임 있는 사유로 상대방에게 입증책임이 있는 사항에 대한 증거조사를 불가능하게 만든 경우, 더 이상 상대방에게 입증책임이 있음을 주장할 수 없는 ‘입증방해의 효과로서 입증책임 전환’까지 인정하고 있다.

강 변호사는 “홈플러스 사건처럼 가해자가 증거자료를 모두 가지고 있어 손쉽게 입증할 수 있음에도 증거를 인멸하는 등 입증을 방해한다면 피해자의 법적 구제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므로 독일 입법례와 같이 입증책임 전환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이 수집한 개인정보를 유출해도, 이를 입증할 책임이 개인에게 있고, 아울러 관련 정보를 기업이 제출하지 않아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면, 개인정보가 지켜질 수 있을까?

자료 제출 거부해도 불이익 없어

성춘일 변호사는 다수의 피해자가 동일한 가해자를 상대로 제기하는 집단소송의 경우 ▷대부분이 대기업 또는 국가기관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 ▷피고가 인과관계 등을 입증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점 ▷법원의 문서제출 명령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이를 거부하거나 없다고 주장해도 불이익이 크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홈플러스 개인정보 유출사건과 비슷한 사건으로 대형유통업체인 ‘타깃’ 매장에서 약 1억1000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피해자들에게 총 1000만 달러(약 112억원)를 배상하겠다는 소송 전 합의안을 제출한 사례를 설명하며 “우리의 집단소송제에도 징벌적 손해배상, 포괄적 증거개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 손해배상 1심에서 ‘손해의 발생과 인과관계의 존재 요건에 대해서 소비자들이 홈플러스의 행위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에 따라 인정될 수 있고, 홈플러스도 이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시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홍대식 교수는 “개인정보 유출만으로도 비재산적 손해인 정신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종래 비재산적 손해의 존재를 부정한 대법원의 판례에 비해 전향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손해액 산정과 관련 300만원 이하의 청구의 경우 증명의 수준을 완화하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상 ‘법정손해배상제도’에 관해 설명하며 “앞으로 법원은 현재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의 액수가 적정한지, 적정하지 않다면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어떤 법리적, 법정책적 보완이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료제출명령제 도입 등 개선

2018년 8월24일 입법예고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은 손해배상소송 시 자료제출명령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홍 교수는 “이 제도는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을 통해서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의 요건인 손해, 손해액 증명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는데 존재하는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또한 홍 교수는 “이러한 입법적 노력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제도와 유사한 증거법적 문제를 갖고 있는 소비자 개인정보 침해 손해배상제도의 개선방안에도 유용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입법조사처 안전행정팀 최정민 입법조사관은 20대 국회의 개인정보 유출관련 입법안을 설명했다.

그는 “진선미 의원은 정보 주체의 권리강화를 위해 동의개념을 명확히 하고, 개인정보의 정정과 삭제 청구권을 개선하며, 프로파일링과 자동화된 의사결정에 관한 사항을 신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현재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 분산된 개인정보 보호관련 업무를 일원화하는 입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 활용 이전에 보호가 먼저 

빅데이터 등으로 개인정보의 활용이 곧 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지게 된 현대사회에서 개인정보는 그만큼 더욱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기업의 활발한 개인정보의 활용은 먼저 국가 차원의 개인정보 보호책 마련과 함께 개인정보 피해 사례가 생겼을 경우 빠르고 적절한 피해구제가 보장된 이후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홈플러스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기업이 개인정보를 악의적으로 수집하고 판매한 것은 인정되지만, 판매된 정보에 자신의 정보가 포함된 사실에 대해 소비자 개개인이 입증하지 못하는 한 그 소비자를 피해자로 볼 수는 없다고 법원 판결은 이러한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개인정보 유출과 같이 기업과 소비자간 증거의 불균형으로 소비자가 이를 입증하기 어려운 특수한 영역에서는 특히나 입증책임의 완화가 필수적이며, 앞으로의 분쟁에 대비해 미국의 증거개시제도, 독일의 표현증명제도 등의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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