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일자 표시 10자리로 바꾸려면 5억~10억 비용 필요
생산·도매 단계에만 집중 검사, 소비 전 유통검사는 허술

[환경일보] 지난해 살충제 계란 파동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마련한 안전대책이 계란의 안정성을 강화하기는커녕 양계 농민들의 과도한 부담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김현권 의원은 “내년에 시행될 예정인 식약처의 계란 산란일자 표시와 선별포장업 허가시설 유통 의무화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식약처는 내년 4월부터 계란 선별포장업 허가 시설을 통한 계란 유통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은 계란유통시설은 현재 11곳에 불과하다.

식약처가 내년 2월부터 시행할 예정인 산란일자 표시방법 안내 <자료제공=김현권의원실>

실제로 경북 영천시에서 산란닭 5만수를 기르고 있는 농가의 경우 반경 30㎞ 안에 허가시설을 찾지 못해 계란상인들에게 유통을 맡겨야 한다. 이 경우 상인들이 물류비를 내세워 계란 값을 후려칠까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선 농가들이 5억~10억원에 달하는 돈을 들여 자체 계란선별포장시설을 갖추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양계농민들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하루 100만개 이상 처리하는 광역형 계란유통센터가 건립돼 자리 잡을 때까지 제도 시행을 늦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선심 쓰듯 6개월 미룬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농민 대다수가 계란을 세로로 세운 상태에서 6자리를 잉크젯으로 인쇄하는 선별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내년 2월부터 표시 자릿수가 10자리로 늘어나면 계란을 눕혀서 가로로 인쇄하는 시스템으로 교체해야 한다.

기존 6자리 표시 형태(왼쪽 사진, 윗부분 세로 인쇄)와 새로운 10자리 표시 형태(옆부분 가로 인쇄) <자료제공=김현권의원실>

아직도 계란을 먼저 주고 돈을 나중에 정산 받는 관행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양계농민들은 산란일자를 표시할 경우 냉장보관을 해도 유통 상인들이 출하가 며칠 밀렸다는 점을 트집 잡아서 계란 값 할인을 요구할 수 있다고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다.

일선 농민들은 “계란 안전의 생명은 생산이 아니라 유통과정의 온도인데 식약처가 이런 부분은 도외시 하고 애꿎은 양계농민들만 때려잡는 억지 정책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다른 식품의 온도 기준은 다른 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데 유독 계란의 유통온도 기준만 매우 느슨하다는 지적이다. <자료출처=정명섭 중앙대 교수, 주요 외국의 식품 보존 및 유통 온도 현황 및 설정 근거 조사, 식약처, 2017>

김 의원은 “식약처는 계란유통온도와 계란 물·공기·솔 세척을 동시에 인정하며 상온유통과 냉장유통을 동시에 허용하는 이상한 계란유통 기준을 방치하면서 산란일지 표시와 계란선별포장업 허가를 내세워 불필요한 비용을 농가에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는 생산·도매 단계에서 연간 12만건의 농산물에 대한 잔류물질 검사를 하면서도 정작 외국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소비 전 유통단계의 안전성 검사는 허술한 실정”이라며 “식약처는 농축산물 안전성 관리에 대한 부담을 불필요하게 농민들에게 떠넘기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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