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기계공학부 한화택 교수

한화택 국민대 기계공학부 교수
대한설비공학회 전임회장

[환경일보] 설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 공기, 가스, 전기 등을 공급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배관설비나 위생설비는 관로를 통해 맑은 물을 공급하고 더러운 오배수를 배출시킨다. 공조설비나 환기설비는 덕트를 통해 깨끗한 공기를 공급하고 오염된 배기가스를 빼낸다. 가스설비는 가스관을 통해 가스를 공급하고, 전기설비는 전선을 통해서 전력을 공급한다.

이들 설비의 핵심은 소통이다. 물이나 공기 또는 가스나 전기를 막힘없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주어진 관로를 벗어나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물이 새는 것을 누수, 공기가 새는 것을 누기, 전기가 새는 것을 누전이라 하는데, 이로 인해 자원 손실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해 종종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물이 새면 건축물이 구조적으로 취약해지고, 배기가스가 새면 유독가스가 실내로 들어올 수 있다. 전기가 새면 감전, 가스가 새면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냉장고, 보일러 등 가전제품이나 수도꼭지, 변기 등 실내 설비기구들은 점점 필요 이상의 첨단 기능을 탑재하고 고급화된 디자인을 뽐내고 있지만, 이들을 뒤에서 움직이는 배관, 덕트, 전선 등과 같은 설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잊힌 채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주방 레인지후드 표면은 매일 반들반들하게 닦지만, 기름때가 켜켜이 쌓여 있는 후드 안쪽은 몇 년이 지나도록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값비싼 보일러가 어딘가 구석에서 고장 없이 돌아가면 그만이지, 연결돼 있는 싸구려 배기 주름관이나 가스배관에는 관심도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 먼지가 쌓이고 녹슬고 헐거워지면서 관심 밖에 있는 것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설비에 돈 쓰는 것을 너무 아까워하지 말고 가끔씩 관심을 가져달라는 얘기다.

지난주 강릉펜션에서 발생한 배기가스 사고는 배기관 연결 틈새를 통해 유독가스가 누설되는 바람에 생긴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는 우리가 모르는 상태에서 후미진 곳에서 늘상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며, 언제 어디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다.

88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화장실은 뒷간이었다. 냄새가 나고 더럽기 때문에 건물 안으로 둘 수 없고 뒤에 숨겨야 하는 뒷간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화장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화장실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독특하고 기발한 화장실로 화장실 선진국이 됐다.

뒤에 숨겨져 있던 각종 설비에 대해서도 이제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건물 설계 때부터 설비 안전을 점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설치 공간과 접근로를 확보하고, 이후 정기적인 점검을 통해 체계적인 성능 및 안전 관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용자가 후미진 곳에 관심을 가질 때, 설비는 보다 안전하고 아름다운 설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글 / 한화택 국민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대한설비공학회 전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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