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프탈레이트‧비스페놀A 농도, 성인 2~3배 높아
어린이용품 구분 없는 농구공에서 기준치 60배 검출

[환경일보] 지난해 말 국립환경과학원의 제3기 국민환경보건 기초조사 결과 대표적인 환경호르몬 물질이자 아이들의 성장에 유해하다고 알려진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A 등이 연령대가 낮을수록 농도가 높게 나타났으며, 영유아가 성인보다 2~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액체괴물, 핑커페인트, 클레이 등 어린이 용품에서 유해물질(붕소, 가습기살균제물질, 프탈레이트, 포름알데히드 등)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는가 하면 번복된 리콜조치에도 다수의 제품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아이들이 사용하는 농구공에서 기준치의 9배에 달하는 납과 기준치의 60배를 초과하는 DEHP가 검출됐다는 지적과 함께 어린이 용품 유해물질 관리가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과거에도 베이비파우더 제품에서 발암물질인 석면이 검출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었으며, 유해 물질에 대한 관리 기준과 법령의 미비, 관리책임 소홀, 글로벌 동향 파악에 뒤쳐진 것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른바 액체괴물의 환경위해성 논란에 대해 산업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KC인증을 받은 제품은 이상이 없다. 다만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나, 인증을 받은 이후 성분을 멋대로 바꾼 비정상적인 제품은 위해성 우려가 있기 때문에 리콜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생후 1년간 독성물질에 매우 민감

어린이 제품 안전을 보강하기 위해 필요한 법-제도적 장치가 무엇인지를 논의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과 환경운동연합이 공동주최로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액체괴물에 노출된 우리 아이, 어린이 용품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 국립환경과학원 환경보건연구과 유지영 연구관은 “어린이는 신체적으로 신진대사 능력, 독성물질 해독능력이 발달되지 못해 환경오염에 취약하다”며 “성인과 비교해 단위 체중당 더 많이 먹고, 마시고, 호흡하기 때문에 환경오염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공기를 2.3배 더 많이 흡수하며, 물은 4.8배, 음식은 6.1배 흡수한다.

유 연구관은 “성장 발달이 왕성한 시기에는 오염물질 노출 시 치명적인 손상이 우려되며, 특히 태아기 및 출생 후 1년간은 세포, 기관이 발달하는 단계로 독성물질에 민감하다”며 “손을 입에 넣는다던가, 바닥 주변의 오염에 취약한 특성도 영향을 미친다”라고 밝혔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국립환경과학원의 ‘제3기 국민환경보건 기초조사’ 결과 어린이들의 성장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진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A 등이 연령대가 낮을수록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 특히 영유아는 성인보다 2~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내분비계장애물질로 알려진 비스페놀-A는 ▷영유아 2.41㎍/ℓ ▷초등학생 1.70㎍/ℓ ▷중고생 1.39㎍/ℓ ▷성인 1.18㎍/ℓ로 어릴수록 농도가 높았다.

플라스틱 가소제 성분인 프탈레이트(DEHP)의 소변 중 농도 역시 ▷영유아 60.7㎍/L ▷초등학생 48.7㎍/L ▷중고생 23.4㎍/L, 성인은 23.7㎍/L로 연령대가 낮을수록 높은 농도를 보였다.

환경유해물질 분석결과 - 요중 비스페놀A <자료출처=국립환경과학원>

프탈레이트 규제 강화 필요

프탈레이트는 비스페놀A와 함께 대표적인 환경호르몬 물질로 아이들의 성장에 유해하다고 알려진 물질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프탈레이트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어린이 제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소아과학회는 어린이들이 프탈레이트가 함유된 장난감이나 다른 물건들을 입에 넣거나, 빨거나, 씹을 때 화학물질이 체내에 흡수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미국과 캐나다는 국내에서 관리하는 프탈레이트 가소제 6종뿐만 아니라 4종(DIBP, DPENP, DHEXP, DCHP)을 추가해 규제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재질별・성상별로 관리기준을 차등화해서 관리하고 있다. 일반 완제품의 경우 가소제에 4종의 프탈레이트가 0.1% 이상 포함된 경우 시장 출시가 금지된다.

완구 및 육아용품은 더 강력하다. 가소제에 프탈레이트 6종에 대해 0.1% 이상 사용할 수 없도록 했고 이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를 함유한 어린이제품과 장난감의 생산 및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환경유해물질 분석결과 - 요중 프탈레이트 <자료출처=국립환경과학원>

환경부‧산업자원부 관리 이원화

우리나라는 어린이 제품 관리가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로 부처별로 분산돼 있다. 먼저 산업통상자원부는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에 따라 어린이 제품(13세 이하)을 관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입에 넣어 사용하는 용도가 아닌 제품의 경우 3종(DEHP, DBP, BBP) ▷입에 넣어 사용할 용도의 제품은 위의 3종에 DINP, DIDP, DnOP 추가해 6종의 프탈레이트를 관리하고 있다.

법에 따라 입에 넣어 사용하는 용도의 제품에 대해서는 6종의 프탈레이트의 총합이 0.1%를 넘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입에 넣어 사용하는 용도도 아닌 어린이용 제품은 프탈레이트 가소제(6종)의 총합이 0.1%를 초과하더라도 경고 표시만 넣으면 얼마든지 시중에 판매할 수 있다.

또한 환경부는 환경보건법에 따라 플라스틱 재질의 어린이 용품(어린이가 주로 사용하거나 접촉하는 장난감, 문구용품 등)을 관리하고 있는데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DNOP, DINP 2종에 한해서만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신체 흡수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담당 정미란 활동가는 “프탈레이트는 특성상 비닐 또는 플라스틱 제품에 단단히 결합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용출될 수 있다”며 “특히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손가락을 자주 빨고, 입에 넣어서는 안 되는 물건을 입에 넣고 씹기도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어린이 몸속에 노출될 수 있음에도 법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H R&C 환경보건안전연구소 이종현 소장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실제 노출실태 파악 및 위해성 평가를 통해 어린이 제품안전기준이 적용되는 제품의 적용범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입에 넣는 용도의 제품이 아니더라도, 어린이들의 특성상 입에 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가정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부소장은 한발 더 나아가 “어린이가 사용하거나, 제품 내 화학물질에 어린이가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러한 노출시나리오에 대해 위해성평가를 의무화 해야 한다”며 “제품 제조·수입업자가 화학물질 노출 대상에 어린이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중점관리물질과 어린이 위해우려물질에 대해 어린이들의 생체 내 농도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특정물질에 대한 허가제한 조치 및 안전기준 강화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구공에서 납 2936㏙ 검출

스포츠용품에 포함된 환경호르몬 문제도 제기됐다. 현재 학교 체육교구에서 사용되는 줄넘기, 농구공, 축구공, 배드민턴 라켓 등 품목별 스포츠용품 가운데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 적용을 받는 품목은 줄넘기가 유일하다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이 국가기술표준원에 문의한 바에 따르면 줄넘기는 수업시수가 많아 포함됐지만 다른 체육용품은 사용빈도도 낮고 어린이가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됐다.

그러나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이 2018년 초등학교 체육용품 실태조사를 토대로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스포츠용품을 구매해 환경호르몬을 분석한 결과 8개의 농구공 중 2개 제품에서는 각각 납 1536㏙, 2936㏙이, 2개 제품에서는 카드뮴 98㏙과 154㏙ 검출됐다.

PVC 재질의 5개 농구공 중에서는 3개 제품에서 프탈레이트(DEHP)가 2.03%, 3.43%, 6.08% 검출됐으며, 이외에도 구르기 매트에서는 4.24%, 아령(500g)에서는 13.46%의 DEHP가 검출됐다.

PVC 재질의 체육용품 중 프탈레이트 검출 시료 <자료출처=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박수미 국장은 “스포츠용품은 환경호르몬이 인체로 전이되는 최적의 조건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아무런 규제 없이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학습교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국장은 “어린이들에게서 비스페놀A 등의 환경호르몬이 검출되는 것은 가정, 보육시설, 교육시설 등 다양한 공간에서 제품들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인데, 어린이용 제품만 관리해서 발생되는 한계”라고 비판했다.

그는 “어린이들의 유해물질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노출원에 대한 파악과 함께 소비자 제품 전반에 대한 유해물질 관리로 전환돼야 하며 어린이에게 건강영향을 미치는 물질에 대해서는 최소한 사용제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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