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산업용 전기요금 탓에 국민건강 희생해 경쟁력 확보
전기요금 인상 없는 미세먼지 해결은 탁상공론에 불과

[환경일보]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특별법이 제정되고 전 UN 사무총장을 모셔다 국가기후환경회의라는 기구까지 만들었다. 환경 분야는 물론이고 건설과 산업, 농업, 해양 등 갖가지 분야에서 미세먼지 해결법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미세먼지 배출의 90%를 차지하는 에너지 분야,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전기요금 문제에 대해서는 다들 입을 다물고 있다.

담배 소비를 줄이기 위해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80% 올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전기요금을 인상한다는 것은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보면서 전기요금인상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산업부 장관은 ‘요금인상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잃게 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은 무리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녹색성장위원회 김정욱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값싼 비용으로 미세먼지를 마시느냐, 요금 더 내고 미세먼지를 줄이느냐, 그것이 문제”라며 전기요금 인상론을 들고 나왔다.

주변에서도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서는 침묵이 답’이라며 만류했지만, 전기요금 인상 없이는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녹색성장위원회 김정욱 위원장은 “값싼 비용으로 미세먼지를 마시느냐, 요금 더 내고 미세먼지를 줄이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물었다.

미세먼지 56%는 산업, 23%는 수송

우리나라 총 미세먼지(PM10) 배출량의 15.2%는 발전소에서, 41.4%는 사업장에서 나온다. 발생원인은 대부분 석탄이고, 23.3%는 수송에서 발생하는데, 이 역시 대부분 경유차에서 발생한다.

또한 미세먼지의 75.2%는 2차 생성먼지로 알려졌는데 발전소에서 21.2%, 사업장에서 48.7%, 수송에서 25.7%를 배출하고 있다. ‘화석연료=미세먼지’라는 공식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화석연료 사용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면 청정연료로 전환하거나,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2019년 한국은 두 가지 모두 계획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석탄발전소 7기와 원자력 발전소 5기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값싼 전기요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화석연료 사용 역시 포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화석연료가 미세먼지를 만든다.

값싼 전기요금이 과소비 불러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요금은 109.1달러/㎿h로, 멕시코와 캐나다에 이어 OECD 국가 중 3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18% 가량 비싸고, 일본은 2배가 넘는다. 독일은 한국에 비해 무려 215% 높았다.

전기요금이 이처럼 낮다보니 에너지 과소비 현상이 뒤따른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7년 우리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OECD 국가 평균보다 40% 가량 많았다. 전력생산요금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전기요금은 요지부동이다.

그렇다고 고전적인 방법, 즉 대국민 에너지 절약 캠페인으로 이를 해결한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기만책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주택용과 일반용(상업용) 전기 소비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으며 전체 소비 가운데 13% 가량에 불과하다. 반면 산업용 전기 소비 증가율이 두드러져 전체 전력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에 달한다.

전력통계속보에 따르면 최악의 폭염으로 전기사용량이 급증했던 지난해 가정용 전기사용량은 역대 최다를 기록했지만 비율로는 13.9%에 그쳤다. 반면 산업용의 비중은 전년대비 0.6% 줄었음에도 여전히 절반이 넘는 55.7%를 기록했다.

5월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주최로 미세먼지 근원적 대책-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모색, 2019년 제1차 한국민간지속가능발전포럼이 열렸다. <사진=김경태 기자>

산업용 전기요금, 일본 절반 수준

산업용 전기 사용이 많은 것은 전기요금이 싸기 때문이다. 심지어 충남 당진 현대제철소 사용 전기가 부산 전체의 주택용 전기보다 56%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고집하면,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산업용 전기의 소비가 늘고, 이는 다시 더 많은 전기를 값싸게 생산하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늘려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김정욱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김정욱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산업용 전기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싸기 때문에 기업들이 전기 사용을 줄여야 할 동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OECD에서 가장 싼 편이이서 독일과 일본의 절반도 되지 않고, 전기요금이 생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이 생산원가의 1.8%에 불과하다는 의미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10% 오른다고 가정해도 생산원가는 0.18%만 오른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산업계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르면 경쟁력을 상실한다. 대안이 제시되지 않으면 국내 투자를 꺼릴 수 밖에 없다”고 협박을 서슴치 않는다.

김 위원장은 “국제경쟁력은 싼 전기요금으로 국민의 건강을 희생하고 키워줄 것이 아니라 당당히 기술로 이겨나가도록 해야 한다”며 “미세먼지 대책들은 모두 전기요금과 연계되는데, 전기요금 말이 나오는 순간 모든 대책들은 저항에 부딪힌다”고 꼬집었다.

환경개선에는 비용이 필요하다

23일 열린 한국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미세먼지 근원적 대책-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모색’ 포럼에 참석한 국가기후환경회의 반기문 위원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국가기후환경회의 반기문 위원장

반기문 위원장은 “OECD에 가입한 36개 국가의 1만개가 넘는 도시 가운데 그린피스가 선정한 대기오염 100대 도시 가운데 44곳이 한국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지만 오히려 국민들은 별다른 경각심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반 위원장은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났더니 ‘담대한 정책’을 주문했고, 여야 정당들도 마찬가지였다”며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과격하다고 할 만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 위원장이 생각하는 과격한 조치에는 전기요금 인상도 포함된 것일까? 

이에 대해 국가기후환경회의 안병옥 운영위원장(전 환경부 차관)은 “단기적으로는 올 하반기에 닥칠 고농도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겠지만, 내년에는 전기요금 인상, 차량2부제 등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며 “생각보다 과격한 조치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환경은 시민의식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예방이라면 몰라도 이미 망가진 환경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용이 필요하며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을 과거로 되돌리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비용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은 비용을 치를 준비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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