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환경영화제, 환경과 인간의 사랑을 꿈꾸다

“길들인다는 게 뭐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어떻게 하는 건데?”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 해.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런 거야. 너무도 평범하게 서로가 익숙해지는 것. 그것은 사랑이야.”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가 화려한 막을 올렸다. <사진제공=서울환경영화제>

[서울극장=환경일보] 이채빈 기자 =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는 ‘길들인다’는 말이 나온다. 사막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이다.

환경문제도 그렇다. 쓰레기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우리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참을성을 갖고 날마다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

무심코 사용한 일회용 컵 하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어떤 재해가 발생하는지, 육식과 축산의 진실은 무엇인지 들여다보면 그 변화가 조금 빠를지도 모르겠다.

배우 권율이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식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이채빈 기자>

열여섯 해, 서울환경영화제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묵묵히 알려왔다. 영화를 통해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과 실천을 논의했다.

주최 측은 현수막도 최소화하고 일부 제작된 것들은 나중에 모두 수거해 업사이클링(다른 용도로 재활용) 제품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제작된 현수막은 올해 카드지갑과 텀블러 가방으로 재탄생해 판매된다. 

이는 첫 단추에 불과하지만, 일단 첫 단추를 끼우면 우리 삶은 어느새 변해있을 것이다.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이 너무나 평범하고 익숙해질 것이다. 사막여우의 말처럼 이 모든 과정은 사랑이다.

서울환경영화제 추천작 5편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열리는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는 총 24개국 59편의 상영작이 준비됐다. 이 가운데 기후변화를 비롯해 자연과 자원, 쓰레기, 먹거리를 주제로 영화를 꼽아봤다.

아름다운 것들 ❘ 25일 오후 5시, 27일 오후 12시

영화 ‘아름다운 것들’ 스틸컷 <사진제공=서울환경영화제>

과잉생산과 소비문화가 낳은 궁극적 형태는 기후변화다. 영화 ‘아름다운 것들’(감독 조르조 페레로, 페데리코 비아신)은 인간의 강박적 소비에 일침을 날린다. 어느 조용하고 한적한 공장부지에서 우리가 쌓아놓은 많은 물건의 생산과정을 따라간다. 그곳에는 철저히 고립된 상황에서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일련의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의식중에 우리의 과소비적 생활양식을 가능케 하는 상품 생산·운송·상업화·폐기의 긴 사슬을 끌어 올린다. 특히 조르조 페레로 감독은 토리노 출신 작곡가로 영화와 연극, 설치미술 작품의 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이 작품에도 듣는 즐거움을 더해 색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아쿠아렐라 ❘ 25일 오후 5시30분

영화 ‘아쿠아렐라’ 스틸컷 <사진제공=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 ‘아쿠아렐라’(감독 빅토르 코사코프스키)는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그 어떤 영화보다 기후변화의 결과를 호소력 있게 보여준다. 실제 움직임의 4배 느린 속도로 촬영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지구상 가장 소중한 자원 중 하나인 물이다. 물의 변덕스러운 의지와 함께 무력한 인류를 본능적으로 따라간다. 이 여정은 세계에서 가장 깊고 오래된 호수인 바이칼호의 충격적인 장면에서 시작해 허리케인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마이애미를 거쳐,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인 베네수엘라의 앙헬 폭포에서 장엄한 항해를 마친다. 이처럼 현기증 나는 영상에서 우리는 물의 힘과 얼음의 향연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90분간 잠겨있으면 때로는 장대하고, 아름다우며, 두려운 물의 다양한 모습에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진흙 ❘ 26일 오후 5시, 29일 오후 2시

영화 ‘진흙’ 스틸컷 <사진제공=서울환경영화제>

부패한 권력과 기업의 카르텔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다. 인도네시아의 한 마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무리하게 땅을 깊이 파 내려가다가 진흙 화산이 불출해 마을 전체가 하루아침에 진흙더미 속으로 사라진다. 대다수 과학자는 가스 채굴회사인 라핀도가 지하의 진흙 화산을 건드렸고, 이로 인해 깊숙한 곳에 있던 뜨거운 진흙이 분출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민들은 부패한 거대 기업에 맞서 투쟁하고 있지만, 과연 이 투쟁은 일말의 희망이 있는 것인가. 영화 ‘진흙’(감독 신시아 웨이드, 사샤 프리들랜더)을 통해 초현실주의적인 인도네시아의 현실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

블루 ❘ 26일 오후 2시

영화 ‘블루’ 스틸컷 <사진제공=서울환경영화제>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2억 톤이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한다. 이렇게 생산된 플라스틱의 10%는 바다에 버려져 해양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50년이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더 많은 플라스틱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로 지난 40년간 바다 생명의 절반이 사라졌다. 이제 바다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寶庫)가 아니다. 영화 ‘블루’(감독 카리나 홀든) 속 환경활동가들은 플라스틱 사슬의 맨 끝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생명의 서식지인 바다를 보호하고, 해양오염과 싸우며 핵심종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한다. 그들의 열정과 생생한 현장이 상영관을 뒤덮는다.

콩돼지의 맛 ❘ 26일 오전 10시, 28일 오후 2시30분

영화 ‘콩돼지의 맛’ 스틸컷 <사진제공=서울환경영화제>

공장제 축산이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 심지어 환경단체조차도 이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여기엔 엄청난 규모의 스폰과 로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기업의 식품 생산업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영화 ‘콩돼지의 맛’(감독 엔리코 파렌티, 스테파노 리베르티)은 중국에서 브라질, 미국을 거쳐 모잠비크에 이르는 돼지고기 생산 체계를 파헤친다. 또 이와 관련된 대두 단일재배 생산망을 따라간다. 이로써 중국과 서구국 회사에 얼마나 거대한 권력과 자본이 집중됐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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