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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의 떡갈나무 혁명③]
마을과 공동체 단위도 너무 크다
초극미세전략으로서의 모듈과 컨비비움 이중전략의 필요성
신승철 작가

[환경일보] 사회(社會)는 어떤 일정한 장소, 역사, 거주지를 둘러싸고 공동생활을 하는 인간의 집단을 의미한다. 사회에서 사람들이 함께 모여살기 때문에 협력적이고 연대적인 활동과 일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때 “사회(Society)를 보호해야 한다”는 푸코의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사회주의, 사회적 가치, 사회적 경제 등의 연관어를 보더라도 사회의 중요성이 막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개념상으로는 사회는 미리 전제되어 있지만, 범죄, 폭력, 차별, 증오, 혐오 등의 최근의 현실을 살펴보면 사회 자체가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것이 아님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구성되고 재건되고 생산되어야 할 관계망이지, 선험적으로(a priori) 주어지는 불변항이 아닌 것이다. 이를 테면 뉴욕의 도시사회에서는 치마타(巷)라고 규정될 수 있는 교류와 교통의 거리에서의 행위양식이 있다. 거리를 지나치는 행인들이 서로 생면부지의 사람들일지라도 서로 지나치면서 눈웃음을 짓고 서로에게 다가가 관심을 기울이고 마주친 사람과 대화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치마타는 뉴욕의 주변부 민중과 소수자들이 창안하고 구성한 일종의 사회양식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도시에서의 행위양식은 그야말로 무차별사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무정형, 무관심, 무표정의 거리가 그것이다. 서울 한 복판 거리에서 낯선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건다면, 아마 부지불식간에 방어적인 태도부터 취하게 될 것이다. 낯설고 이질적인 관계망과 친밀하고 유대적인 관계망 사이를 연결할 횡단면이 부재한 상황인 것이다. 그 횡단면은 바로 사회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는 일단 간(間)공동체, 간(間)네트워크 사회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공동체와 공동체의 접촉경계면에서 사회를 구성해 내고,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의 접속경계면에서 사회를 구성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금-여기-가까이에 있는 공동체에서의 삶의 재창조가 가장 직접적으로 사회의 재건과 창안을 위해서 먼저 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성장 시대, 장기불황의 초입에 들어선 요즘, 커뮤니티의 기능정지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활동가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커뮤니티로서의 공동체, 네트워크, 협동조합 등에서 주최한 행사에 사람들이 참여는 하는데, 관객이나 조용한 참여자 일인으로 지켜보다가 사라지고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동체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위기감과 더불어 다시 논의되고 있는 문제의식이 ‘관계의 실질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즉, 커뮤니티도 관계를 현실적이고 역동적이고 친밀하게 만들기에는 너무 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커뮤니티의 적정인원이라 불리는 10~30명의 관계망 속에서 주인공과 관객이 생기고, 무대와 연사와 청중이 설립되고 있다고 진단되고 있다.

또한 너와 나 사이에서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공유자산, 생태적 지혜, 집단지성이 생긴다는 커먼즈(Commons)의 논리구도에서는, 너와 나가 일단 관계를 맺게 되면 ‘inter-subjectivity’ 즉 사이주체성, 서로주체성, 간주관성이 형성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전제조건 역시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맑스주의가 차용했던 헤겔의 변증법의 구도 역시도, 인륜적 공동체가 미리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모순, 대립, 적대가 결국에는 사회의 성숙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회가 파편화되고 미세하게 분리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인륜적 공동체는 미리 주어지지도 않으며, 자연스럽게 발생되지도 않고, 인간의 본성도 아니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모순과 대립은 자칫 사회분열과 붕괴, 절멸로 비화될 뿐이라는 점도 드러난다.

커뮤니티를 내실화하고 관계를 실질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는 시작단계에 있다. 이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이 있는데, 이는 모듈(module)과 컨비비움(convivium)이다. 모듈은 2~5명 단위로 이루어진 작은 기능적인 완결단위로서의 결사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모듈은 가장 긴밀하고 일체화되고 있으면서도, 일과 활동에서 서로에게 강렬한 지지대가 되어주는 작동단위로써 기능한다. 이러한 모듈단위가 모이면 공동체가 된다고 볼 수 있겠지만, 모듈 자체가 갖고 있는 기능적인 면이나 결사체적인 속성 때문에 공동체의 풍부함과 다양함을 담아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모듈전략이 가진 풍부함과 잠재력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의 모듈의 실험은 촛불생협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광명의 YMCA등대생협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YMCA등대생협이 처음 생겼을 무렵에는 물품을 진열하고 판매할 수 있는 매장이 따로 없었고, 대신 이웃을 이룬 4~5가정씩 무리를 지어서 물품을 받는 지정된 집에서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를 하고, 각 가정들이 직면한 아이들의 교육, 육아, 살림, 돌봄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단위를 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각 구획 단위가 작은 모듈로써 작동하면서 구체적인 실행과 미세한 협력, 실질적인 연대의 행동에 나섰다.

해외의 사례로는 쿠바의 유기농혁명과정에서 나타났던 모듈을 들 수 있다. 쿠바의 경우에는 1990년대 미국의 석유금수조치로 인해 전국적으로 물품공급이 끊기고 전 국민이 기아에 시달리는 상황이 도래한다. 당시 쿠바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2~3인조의 모듈을 구성하여 유기농업 현장에 투입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럼으로써 체력이 저하되고 전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모듈구성원들끼리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꽃을 피우고 활력을 가질 수 있는 결사체로서 기능하였다.

이처럼 모듈은 커뮤니티의 느슨한 연결망의 의미를 벗어나 근접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적 배치를 통해 실행단위, 작동단위, 기능단위로서의 면모를 갖춤으로써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모듈과 모듈 사이를 기능연관으로 만들고 작업적인 분리 상태를 조성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에서도 연쇄적으로 붕괴하지 않도록 신축성, 유연성, 회복탄력성을 갖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듈이 갖지 못한 공동체의 풍부한 징후적인 잠재성에 대해서 주목하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이는 소농들의 술자리에서 마을의 대소사가 논의되고 흥과 재미와 활력이 재충전되는 것과 같이 2~5명 단위의 컨비비움 즉 공락(共樂)의 단위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그것이다. 모듈이 지나치게 기능, 효율성, 의미에 치중하는 데 반해, 컨비비움은 다기능성, 자율성, 재미와 흥에 치중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컨비비움은 마치 작은 술자리가 옆으로 증식하여 마을로까지 확산되듯이, 한 컨비비움이 다른 컨비비움을 낳고 낳기를 반복하는 수평적 확산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컨비비움은 한국유기농협회에서 실험적으로 시도되었던 조직화방식이며, 이제 개념 연구의 초입단계에 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듈이 컨비비움으로 전환되고 이행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어떤 모드에서는 “~은 ~이다”라는 의미화양식에 따르는 ‘의미와 기능모델’의 모듈이었다가, 어떤 모드에서는 “~이거나 ~이거나”라는 지도화양식에 따르는 ‘재미와 놀이모델’의 컨비비움으로 전환하고 이행하는 변신에 능한 행동단위를 구상해 볼 수 있다.

저성장 시대에 커뮤니티도 관계를 실질화하기에 너무 크다는 공동체와 협동조합의 진단은 모듈과 컨비비움의 초극미세전략의 모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연구는 아직 시작단계에 있지만, 향후에 공동체의 성숙과 발전, 간(間)공동체로서의 사회의 재건과 창안의 토대연구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아직까지 공동체의 잠재력과 가능성, 전망에 대해서 아주 조금밖에 알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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