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피플 기고
[신승철의 떡갈나무 혁명④]
기후변화시대, 자본은 미래전망을 상실했다!
지구인이 아닌 외계인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단기투기성 자본
신승철 작가

[환경일보] “학교에 갈 이유가 없어요, 이미 이 사회는 우리 세대를 고려하지 않아요.”

유럽의 청소년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청소년 행동에 나서면서 하는 얘기들이다. 스웨덴의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로부터 시작된 기후변화에 대한 청소년 행동은 이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청소년들의 행동으로 전파되고 있는 중이다. 기후변화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상황 즉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동식물들이 떼죽음에 이르고 있으며, 폭염과 폭우와 허리케인, 가뭄 등의 재난이 급습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현 세대와 문명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고 전환사회는 요원하다. 기성세대들은 그저 그 알량한 성장이나 부동산 가격, 주식투기, 개발사업 등에 몰두하면서, 지구와 생명과 미래세대가 어찌 됐건 자신만 잘 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분명 기후변화 시대에 세대 간 차별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성장주의의 단물을 먹었던 세대와 저성장과 기후변화의 상황에 마주친 미래 세대는 명암을 달리한다. 미래세대는 성공의 여지가 아닌 생존의 여부조차도 불투명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고, 기회의 소멸, 소득불평등, 세대 간 양극화의 상황에 놓여 있다. 심지어 미래세대는 기후변화 시대가 더 심화되면 제대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여부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기후정의의 과제는 세대 간 불평등 문제의 해결책을 담아내야 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자본의 비윤리적인 행태는 세간의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다. 미래의 구매력을 이자로 차압하여 이를 미래투자의 여지로 사용한다는, 자본의 가장 본래의 의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미래에 대한 투자전망을 상실한 자본은 찰나의 현재만을 탐닉하며, “이 세대만 잘 살고 그 다음은 없다”는 식의 단기투기성 자본으로 전락해 있는 상황이다. 기업이 최소한 지켜야 할 가치들, 이를 테면 혁신이나 자기경영, 기업윤리 등은 단기투기성 자본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이유는 바로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과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 기후변화 시대의 개막은 미래 전망이 확실한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성장주의 시절을 경유해온 자본으로서는, 더 이상 이익을 취할 곳이 없고 장기적인 투자전망을 갖고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은 결국 현재의 순간적인 이득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이나 골목상권 진출, 공유경제를 가장한 플랫폼 사업 등을 통해서 최대한 이윤이 될 만한 곳이면 그것이 비윤리적이든, 미래세대에게 어떤 파급효과를 주든 상관하지 않을 기세로 파렴치한 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 이렇듯 최대이득을 추구하면 지구와 생명과 자연이 망가질 수밖에 없고 대량 멸종으로 향하게 됨을 알고도, 자본은 이미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라도 되는 양 행동한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그의 책 『어셈블리Assembly』(2018)에서 자본의 미래전망 상실과 관련하여 공동체,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 등의 집합적 리더십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미래투자와 혁신, 자기경영의 전망을 상실한 자본에 대해서 집합적 리더십을 통해 견인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부위가 바로 공동체와 제3섹터 영역이기 때문이다. 즉, 자본으로 하여금 기업의 이득과 더불어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함께 도모하도록 만들고, 단기이익으로 통한 찰나의 탐닉이 아니라 미래세대에 대한 사회적 책임투자를 하도록 만들고, 혁신과 자기경영, 기업윤리와 같은 기업 본연의 가치와 윤리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부위가 바로 공동체기업과 제3섹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리더십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근대적인 개념이기는 하지만, 전망을 상실하고 방황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자본에게는 공동체와 제3섹터의 의식적인 개입조차도 요청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처럼 기후변화 시대는 기업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즉, 우주로 뻗어나갈 기세로 무한성장의 가능성과, 무정형의 미래를 향한 자본주의적 진보의 시간관과, 무한개척의 생명과 자연의 외부가 있다는 생각이 성장주의를 이끌었던 환상이었다. 그러나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1972)라는 보고서 제출 이후에, 지구의 한계, 자연의 한계, 생명의 한계로 인해 미래는 무한한 영역이 아니라 유한한 영역임을 인류는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비근한 예로 자원의 한계로 인해 일회용품과 같은 플라스틱을 쓰다 보면 현재의 순간은 편리할지는 모르지만, 미래세대에게는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한한 미래, 즉 미래세대가 직면할 시간을 고려한 현재 세대의 삶의 양식이 중요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미래세대라는 아직 태어나지 않는 다음세대까지도 고려한 가치와 윤리를 가져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것을 지속가능경영, 윤리경영, 사회책임투자 등 무엇으로 불러도 상관없겠다. 결국 돈 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고, 지구와 미래세대와 동식물과 자연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았던 개발주의, 성장주의, 토건주의 시대의 기업풍토는 극복되어야 할 과거의 잔재이다. 왜냐하면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라, 유한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후변화 시대에 직면한 세대 차별의 영향에서인지 청소년들은 자신이 권리가 전혀 없는 난민과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본능적으로 통찰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권리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실상 생존의 권리조차 기약할 수 없는 것이 기후변화 시대임을 직감한다. 그레타 툰베리는 유튜브 동영상에서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후변화에 모든 사람이 책임이 있다는 것은 즉각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면죄부와 같은 것이다. 국가와 기업 등 책임져야 할 사람이 분명히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혁신의 전망은 이제 시작단계에 와 있다. 단기투기성 자본의 행태로부터 벗어나, 기후변화의 상황에 직면할 미래세대를 고려한 투자를 해야 한다. 유한하고 취약하고 연약하고 고달프고 어려운 자연과 생명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투자해야 한다. 이는 강건한 혁신과 지속가능성을 약속하는 투자이기도 하다. 그랬을 때라야 우리는 비로소 미래전망을 설립하고 창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미래는 유한하지만, 이를 전제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또 미래이기도 하다.

편집부  press@hkbs.co.kr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포토뉴스
[포토] 국립하늘숲추모원 개원 10주년 기념식
[포토] ‘대한민국 탄소포럼 2019’ - 저탄소 스마트시티 국제포럼
[포토] 영주댐 현황점검 및 처리방안 모색
[포토] 한국물기술인증원 운영활성화를 위한 토론회
[포토] 대한민국 탄소포럼 2019 – ‘저탄소전략기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