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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의 떡갈나무 혁명⑤]
생태계는 환경결정론을 따르지 않는다!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의 비밀은 서로 의존하는 생명
신승철 작가

[환경일보] 학술논문을 쓸 때 두 연구자가 서로를 인용해 주면서, 자신의 논리에 객관적인 근거가 없음에도 마치 근거가 있는 것인 양 여기게 만드는 것을 ‘상호 참조의 오류’라고 한다. 연구윤리에서 일종의 검은 뒷거래로 지칭되는 상호 참조의 오류와 달리, 생태계에서의 상호 참조의 과정 즉, 하나의 생명이 다른 생명에게 환경이 되어 주는 바는 시너지를 발휘하는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제까지 환경결정론은 정확히 계측 가능한 외부환경의 입력과 출력에 따라 생명이 반응한다는 설정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생명에게는 환경이 지시하고 명령하는 바를 감광판처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자기생산(autopoiesis) 하는 내부 작동이 있고, 하나의 생명과 다른 생명이 서로 의존하여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래서 생태계에서는 환경결정론과 같이 환경이 결정적인 외부명령자가 아니라, 생명의 자율성의 여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에게도 환경이 되어준 다른 사람이 있다. 부모님, 친구, 형제, 이웃 등이 그런 사람이다. 그러한 지지대는 우리의 강건한 삶의 지반이자, 사실상 입력과 출력에 좌우되는 무차별적인 외부 환경이 아니라 또 하나의 내부 환경인 셈이다.

환경결정론의 시각에서 입력과 출력은 철저히 함수론적인 방향성에 따라 작동한다. 10이 입력되면 다시 10이 되어 출력되는 식이 그것이다. 함수론은 ‘1+10=11’이라는 수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점은 11이 다시 1+10이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역치의 부분이다. 결국 함수론을 뒤집어보면 확률론이 발생되는 것이다. 즉, 환경결정론에 따라 생태계 위기로 향하는 문명의 작동은 철저히 함수론과 집합론에 따르지만, 이를 해결하고 생태계 보존과 생명 보호로 향하려고 한다면 확률론과 재귀론(再歸論)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환경을 파괴하는 방향성은 ‘산술적 수’로 이루어진다면, 환경이 회복탄력성을 갖는 방향성은 ‘경우의 수’로 이루어진다. 즉, 다양한 경우의 수로서의 선택지가 있어야 생태계가 재생되고 순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생태복원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상호 의존하는 연결망과 더불어, 연결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특이점으로서의 다양한 생명과 개체들이 함께 있어야 하는 셈이다.

이제까지 문명은 자본주의라는 함수론과 노동자계급론과 같은 집합론이라는 통속적인 방식을 통해 환경 파괴적인 방향성으로 향해 왔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개방한 미시적인 세계에서의 확률론적인 질서는 통속적인 문명의 논리와 다른 경로를 살짝 보여준다. 그 역사적 기원은 고대로까지 이른다. 이를 테면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비중 있는 대표와 관료를 뽑을 때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를 했던 추첨제민주주의를 했던 사례가 그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진리가 전제되어 있다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추첨제민주주의는 서울시의 각급 협치의 현장이나, 녹색당 대의원 선발 등의 방식으로 오늘날에도 이미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직접민주주의 양상이다.

산술적 수가 아닌 경우의 수로서의 확률론적 질서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요즘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과거 성장주의 시대처럼 우발적으로 외부에서 찾아오는 산술적 수로서의 고객이 없다. 그렇다면 경우의 수로서의 고객, 즉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해결책일 수밖에 없다. 물론 함수론에 따라 만들어진 대의제 민주주의로서의 선거나 GDP와 같은 산술적 수의 척도 역시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추첨제민주주의가 작동하던 고대 그리스에도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는 진리를 미리 전제된 것이 아니라, 논증과 추론의 결과물이라고 여기면서 엘리트주의를 신봉하고 독재를 찬양하고 독재사상에 기반한 현존 아카데미를 설립한 바도 있다. 그러나 함수론적인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면, 경우의 수로서의 선택지가 사라져 문명과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은 크게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다시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으로 돌아가 보자. 따로 떨어진 100그루의 나무보다 서로 연결되어 생태계를 이룬 50그루의 나무가 외부환경에 대한 항상성이 높다는 얘기가 있다. 이는 상호 의존하는 연결망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더불어 50그루 나무 중 하나의 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이 되어 줄 수도 있는 만큼 강건한 생명의 특이점이 될 필요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이것은 문명이 선택할 경우의 수 하나하나가 강건한 특이점으로서의 생명들에게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생명들 하나하나는 그저 산술적인 수로서의 하나가 아니라, 경우의 수로서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된다. 이에 따라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은 다양한 경우의 수가 연결되고 상호 의존할 때 비로소 작동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생태주의 실천은 강건한 사랑, 욕망, 정동, 돌봄의 반복을 통해 특이점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특이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환경이 되어줄 사회생태계의 선택지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러한 노력은 변화의 시작이다. 펠릭스 가타리는 작은 변화가 사회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초래하는 ‘분자혁명’을 주창했다. 우리 자신부터 바꿈으로써, 사회화학적인 반응을 만들어 전체 사회에 심원한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바다. 우리는 도토리 하나가 울창한 떡갈나무 숲을 이루는 여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환경이 아무리 열악해도 그것은 결정적이지 않다. 우리 옆에 강건히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생명으로서의 우리 자신이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환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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