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적 살처분 제도적 한계···톱다운 방식 시스템 전환 시급
현장 작업자, 공무원 등 정신적·육체적 트라우마 수준 심각

2011년 구제역 당시 강원도 홍천에 매몰한 소를 전문업체가 장비를 동원해 꺼내고 있다. <사진=김봉운 기자>

[홍천·군위=환경일보] 김봉운 기자 = 주로 소, 돼지, 가금류 등 농장 동물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가축 살처분은 전염병에 걸린 동물을 땅에 매장하는 방법이다.

구제역 및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가축 매몰은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 조사결과 가축 매몰지는 공식적으로 6000여개로 집계됐으며, 비공식 매몰지까지 포함하면 숫자를 헤아리기 힘든 수준이다.

살처분은 여진히 계속되고, 매립지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살처분 방법은 동물 매장 후 침출수로 인한 2차 환경오염 문제와 동물복지 문제를 발생시켜 이와 관련 대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최근 가축전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예방적 살처분 역시 증가하고 있다. 특히 관련 법 조항이 명확하지 않아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가축전염병 토착화 추세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가축전염병은 상시화와 토착화 등으로 이어졌다. 축산과 관련된 산업에 적신호가 들어온 상황이다.

가축 살처분은 일반적인 살처분과 예방적 살처분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대응 방식'과 '확인된 위험의 대응 방식'에 따른 구분으로 규정된다.

가축살처분 근거 법률은 ‘가축전염병 예방법’이다. 법률 조항에서 가축전염병의 발병이 확인되면 반드시 살처분 명령을 하게 돼 있으며, 일반적 살처분은 ‘필요적 살처분’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예방적 살처분’은 가축전염병 등 질병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선제적 조치로 이뤄지는 살처분을 말한다.

가축 매몰지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 소를 키우는 축사가 위치하고 있다. <사진=김봉운 기자>

가축 살처분 제도, 현장중심 '바텀업' 돼야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르면 살처분 과정에서 가축전염병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조치는 시장·군수·구청장 등 지자체 수장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앙정부에서 방역 관련 의사결정이 일방적으로 이뤄져 지자체로 하달되는 구조이다.

과거 구제역 사태 당시 ‘위해관리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앙부처 공무원과 전문가 집단의 정보 독점으로 일방적인 결정이 위에서 아래로 전달됐다. 이러한 의사결정 방식 때문에 현장에서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질병 발생에 대한 정확한 정보수집과 현장 적응성이 가장 중요한 대응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은 신속한 살처분 또는 매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작업이 지연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따라서, 가축사육단지를 보유한 지자체는 지자체장, 담당 공무원, 지역사육농가, 수의사 등 이해관계자와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이는 가축전염병 발생 초기 신속한 결정과 대응이 가능한 이유에서다.

토양·지하수 오염 2차 환경오염 우려

예방적으로 살처분된 동물 사체 사후 처리와 관리도 미흡하다. 매몰지 침출수가 땅속으로 유출되면서 지하수가 오염된다. 이는 인근 토양을 오염시켜 환경보건상 문제로 이어진다.

매몰지는 동물 사체에서 발생하는 악영향으로 파리도 번식하지 못하는 죽은 땅으로 전락한다.

침출수는 대장균, 장 바이러스 등 미생물과 질산성 질소, 암모니아성 질소 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인근 주민 건강문제와 심각한 환경오염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가축전염병 예방법’ 24조는 동물 사체 매몰지 법정관리 기간을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간이 지나면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매몰지를 파내 다른 장소로 이동을 명시하고 있다.

매몰 시 병균을 죽이기 위해 다양한 화학약품처리가 된 사체들은 대부분 크게 변질되지 않은 상태로 발굴된다. 이때 발생하는 가스와 악취는 반경 50m에서 3km까지 퍼져나가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무분별한 예방적 살처분은 가축 매몰지가 증가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오염된 지하수나 토양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장비와 인력이 투입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축전염병이 발병하면 획일적인 행정절차를 적용해 일반적 살처분과 예방적 살처분을 하나로 묶어 집행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명확한 법령이 제시돼야 한다.

예방적 살처분으로 매몰됐던 가축은 폐기물로 지정되지 않아, 대부분 퇴비로 생산돼 인근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배포되고 있다. 매몰가축을 퇴비로 만드는 과정 <사진=김봉운 기자>

현장 고충, 작업자 보호돼야

가축 살처분 작업에 일용직 노동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되고 있다. 위험한 작업이 외국인 노동자의 외주화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살처분 매몰 참여인력을 2014년~2015년과 2017년~2018년으로 나눠 비교한 결과 공무원은 50%에서 16%로 줄고, 용역인력은 27%에서 75%로 급증했다.

살처분 과정에 참여한 농민이나 공무원 등 관계자들은 ‘가축전염병 예방법’ 제49조 2항에 따라 정신적·심리적 치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정신적 피해와 관련된 보상은 커녕 신체적 피해와 관련된 의료보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가축 살처분 사업을 하고 있는 신재승 대표는 이에 대해“정부 예산을 집행해 작업을 진행하는데,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일을 처리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장의 작업이 힘들고 위험해 일당으로 20만원을 넘게 주고 인력을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처분 현장에서 질병에 감염되지 않은 살아있는 가축을 생매장하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보니 참여한 농민이나 공무원 등 관계자들이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상황”이라며, “매몰된 가축(최소 3년)을 다시 수거해 퇴비로 만드는 과정에서 피부병, 폐질환 등 여러 가지 신체적 피해가 동반돼 안전한 작업장 관리에 관한 강한 규제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를 살처분한 2011년 구제역 사태 당시, 태어난 어린 새끼를 포함해 돼지를 산채로 구덩이에 파묻는 작업 현장에 참여했던 축협 직원이 숙직을 서다가 동물 마취용 근육이완제를 주사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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