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무의식과 미디어 가이드라인

신승철 작가

[환경일보] 대안적인 미디어를 연구했던 미국의 제리 맨더(Jerry Mander)는 텔레비전이 욕구와 필요를 생산하여 굳이 쓸모없는 상품을 소비하게끔 만든다는 점을 비판하였다. 그런가 하면 50년대 매스미디어(Mass-media) 연구자들은 ‘마법의 탄환이론’(magic bullet theory)을 통해 미디어의 메시지가 대중의 심상과 무의식의 뇌리에 탄환처럼 각인되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동시에 피하주사이론(Hyperdermic Needle Theory)에서는 무감각한 피하층에 주삿바늘이 꽂히듯 대중의 수동적인 정서를 자극한다고도 보았다. 이렇듯 일방향적인 메시지 전달을 특징으로 하는 매스미디어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유도했던 포디즘의 기반이 되었지만, 반격의 순간이 찾아왔다. 바로 68혁명이 전 세계를 뒤흔들면서 대중(mass)의 시기를 종식시켰던 것이다.

68혁명 시기 동안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를 창립하여 낭테르 대학 점거를 했던 기 드보르(Guy Debord)는 『스펙타클의 사회』(2014, 울력)라는 저작을 남겼다. 여기서 스펙타클의 사회는 직역해보자면 구경거리의 사회를 의미한다. 이 책에서 그는 매스미디어가 상품물신주의의 매체임을 고발한다. 즉, 현실에 없는 전도된 환상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가짜웃음이 들리는 토크쇼와 같은 곳이고, 담배 한 개피에 노인의 행복이 있고, 과자 한 봉지에 아이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설파하는 바보상자라는 것이다. 또한 노동현장에서 천대받던 노동자가 소비현장에서는 왕으로 환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도된 세상을 매스미디어 세상은 보여준다는 것이다. 기 드보르는 스스로 구경꾼으로 전락하기를 거부하고 직접 거리에 나서서 68년 혁명의 투사가 되었다.

그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매스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에 어느 덧 천연덕스럽게 자리 잡았다. 다양한 대안적인 미디어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지만, 여전히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레거시미디어(Legacy Media), 즉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물론 최근에 각광을 받기 시작한 뉴미디어 역시도 광고-이미지들을 통해 상품소비 즉 탄소소비를 권장하고 이를 부유함과 동일시하는 작동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일관되어 있다. 맛깔스러운 고기요리를 다루는 먹방/쿡방, 성공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띠는 중형 자동차광고, 환하게 불이 켜진 채 칸칸이 에너지권력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아파트광고, 복잡한 기능으로 전기를 과도하게 소모하는 가전제품 등의 광고이미지가 그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PPL(제품간접광고)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 안까지 침투해 들어와 있다. 미디어의 주 수입이 광고업자와 기업의 펀딩이기 때문에,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비하라’는 광고메시지가 사실상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하다. 따라서 탄소소비만이 성공한 삶의 미래라는 점을 구경하고 선망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하는 것이 미디어일 수밖에 없다. 마치 주입식교육과도 같은 이러한 영상과 이미지의 반복은 탄소소비로 수렴되고 집중하기를 요구하는 의도를 저변에 깔고 있는 셈이다.

방송프로그램에서 권장하는 상품소비는 사실상 탄소소비와 관련되어 있다. 2008년도에 창안된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상품 소비, 물 사용, 전기 사용, TV 셋톱박스,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과 관련된 센서(Sensor)까지 모두 탄소총량지수(CO2e)로 환산되어 지구에 하중을 주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렇게 CO2e라는 탄소총량지수는 우리의 삶이 더욱더 상품소비에 과도하게 의존할수록 지구에 하중을 주고 기후변화를 유발할 수밖에 없음을 구체적인 통계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미디어가 탄소중독적인 삶으로서의 아파트, 육식, 자동차, 가전제품, 일회용품 등의 소비를 찬양하는 주입식 교육을 우리 안방에서 버젓이 벌이고 있다는 것은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마음의 배치를 매스미디어에 맡겨 놓는다면 탄소소비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고 만다. 결국 시민과 공동체가 나서서 만들어나갈 문명의 전환은 요원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들이 바로 미디어의 올바른 사용법을 만들고, 미디어 생산과 유통과정에 개입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디어의 시청자위원회와 방송심의위원회에서는 기후위기 시대를 맞이하여 지나치게 탄소소비를 권장하는 미디어에 대한 심의와 규제를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즉, ① 지나치게 탄소소비를 권장하거나 ② 탄소소비 이외의 선택지가 없다고 여기게 하거나 ③ 탄소소비를 부유함이나 행복함으로 동일시하거나 ④ 탄소빈곤층을 무시하고 기후정의를 위배하는 이미지를 송출하거나 ⑤ 상품의 탄소총량 등을 명시하지 않거나 하는 광고와 이미지 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미디어 심의과정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기후위기 시대를 맞이해 그 어느 때보다 위기와 좌절을 느끼며 대안모색에 부심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미디어가 결코 바보상자가 아니라, 똑똑한 대안과 지혜를 전파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를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 우리의 무의식까지도 시민의 힘과 자율성의 영역으로 되찾아야 할 때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