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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의 떡갈나무 혁명⑪]
기후위기의 현실은 기후난민으로 나타난다
호모데우스로서의 1세계와 호모사케르로서의 3세계에 대한 단상

[환경일보] 빅히스토리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호모 데우스』(2017, 김영사)에서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사피엔스를 신-인간인 호모데우스(Homo Deus)로 업그레이드할 방법을 탐색한다. 그는 전쟁, 폭력, 가난의 시대가 끝나고 첨단의학과 영생의 시대, 인공지능과 결합된 신인류의 시대, 데이터의 흐름이 중요해진 첨단기술사회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가 전망한 신인류의 시대는 갈등도 마찰도 가난도 없고 불멸, 평화, 행복, 공존의 시대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그 시대가 현실에 이미 와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현재 선진국이라 불리는 제1세계에서의 삶이 사실상 호모데우스라는 신-인간의 현현이라는 점을 암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일종의 인종주의와도 같은 논리가 유발 하라리에게 숨어 있다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물론 최근 들려오는 제3세계의 상황은 호모데우스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서남아프리카 이남의 극단적인 기후위기와 기아상황, 그리고 전 세계 한 해 600만 명의 기아사망자 중 2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이 500만 명에 달한다는 점, 유엔 집계로 6,700만 명으로 추산되나 엄청난 속도로 증대되고 있는 기후난민의 상황 등이 말이다. 이러한 현실은 호모데우스의 구도에서는 이미 극복되었다고 여겨지거나 배제해버린 현상들에 불과하다. 사실상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기대 수명의 높은 편차나 기후위기에 대한 적응을 위한 물, 가스, 전기 등 라이프라인의 여부, 영양불균형을 극복할 수 있는 식생활 탄력성 여부, 전쟁과 폭력, 내전, 치안 등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 등을 전반적으로 비교해 볼 때, 호모데우스라는 장밋빛 청사진은 제1세계인 선진국에만 해당됨을 알 수 있다.

반면 오늘날 제3세계 민중들의 경우에는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에 직격탄을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상황이다. 시리아 내전이 2006~2010년 동안 비 한 방울도 오지 않는 가뭄이라는 기후변화로 인해 식량위기, 도시와 농촌간의 갈등, 종교 갈등, 계급갈등 등 내부 모순의 폭발로 나타났다는 뉴욕 컬럼비아대 리처드 시거 교수팀의 연구보고는 여전히 타당성을 갖는다. 그 이후에 70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유럽으로 향했고, 지금도 대부분 수용시설이나 유럽의 길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기후난민의 상황은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이 쓴 『호모사케르』(2008, 새물결)에 비유할 수도 있다. 호모사케르(Homo Sacer)는 ‘죽일 수는 있으나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생명’ 즉, 벌거벗은 생명을 의미한다. 호모사케르는 주권의 예외상태에 놓인 벌거벗은 생명으로 여기서 예외란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칙이 효력을 정지한 상태 즉, 배제와 분리를 의미한다. 아감벤은 호모사케르가 신성한 생명이면서도 어떤 권리로부터도 배제된다는 역설로부터 근대사회가 성립되었다는 점을 논증한다.

절박한 기후위기 상황으로 인한 기후난민의 거대한 도주의 행렬은 전 유럽을 분리주의, 고립주의, 폐쇄경제를 기반으로 한 우파파시즘의 도래로 향하게 했다.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600만 명에 달하는 난민에 대한 수용과 온정주의는 그의 퇴임과 더불어 시효를 다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도 받고 있다. 각국의 우파파시즘은 이제 자유무역이나 세계화, 신자유주의 등의 담론에 기반했던 국제질서를 허물어뜨리고 자국이기주의,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차별, 성장주의라는 탄소파시즘으로 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기후위기가 극심해질수록 더욱 첨예한 상황으로 전개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우리조차도 이러한 문제설정에 대해서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난민에 대해 우호적인 견해를 피력해오던 사람도 ‘당신의 아파트주차장에 노숙인이 서성이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라는 질문을 듣는 순간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 솔직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제주도로 들어온 예멘 난민 561명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문제는 우리사회가 아직까지 기후난민의 대량발생의 전 세계적인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기후위기와 폭염으로 인한 탄소빈곤층,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노인, 청소년 등의 상황을 살펴보면 기후난민의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후위기에는 국경이 없으며, 우리는 세계시민사회의 일부로서 기후난민들과 공동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의 지혜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호모데우스라는 신-인간이 되고자 하는 즉, 보다 잘 살고 안정된 제1세계를 향한 열망은 성장주의에 기반한 성공주의, 승리주의, 자기계발, 자기관리, 처세술 등으로도 현현한다. 그러나 유한한 생명과 자연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호모데우스의 영생에 대한 약속은 덧없고, 허구이며 사기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유한함을 긍정한다면, 나처럼 유한한 타인의 삶에 대한 배려와 사랑만이 최선임을 느끼게 된다.

호모사케르로서의 기후난민이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구성원이 아니라 수용시설에서 꼼짝 못하고 그저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면, 그러한 상황과 배제와 분리의 위치설정은 보이지 않게 우리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이 앞으로 다가올 기후위기 상황에 꼼짝 못하고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에 시달리게 것이다. 기후난민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것은 바로 기후위기 자체를 인정하고 행동에 나서겠다는 지표일 수 있다. 우리는 아직까지 기후위기에 행동하고 실천할 시간이 있다. 그래서 기후난민을 우리 사회가 따뜻하게 받아들일 때인 것이다.

편집부  pres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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