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 안이한 대책만 열거
세계 한목소리 “정부, 말보다는 즉각 행동 나서라”

지구온난화로 남극 펭귄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서울=환경일보] 이채빈 기자 =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맞닥뜨렸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스위스의 빙하는 벌써 1000여개다.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하고, 생태계를 지탱하던 생물다양성이 빠르게 훼손된다. 머지않아 인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프랑스에선 올 여름 폭염으로 약 1500명이 사망했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최근 기후위기를 깨우치는 데는 청소년들의 역할이 크다. 스웨덴의 16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 23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짧지만 강렬한 연설을 했다. 툰베리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며 “우리는 대멸종의 시작점에 서 있는데 당신들은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기후위기에 둔감한 기성세대를 질타했다.

21일 서울 대학로에서 시민들이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모든 인류와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다. <사진=이은주 객원기자>

21일 서울에서도 기후위기의 진실을 말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학로에는 5000여명의 시민과 학생, 교사,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이 모여 “지금이 아니면 내일은 없다”고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즉각적이고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은 여전히 안이하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너무 낮고, 이행방법도 소극적이다.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안’ 공청회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공청회는 환경부가 기본계획안에 대한 각계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했다.

정부, 온실가스 감축 실패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2009년 세운 목표 배출량보다 연도별 2.3~15.4% 초과 배출했다. <자료제공=환경부>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안에 따르면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은 사실상 실패에 가깝다. 2017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910만톤으로, 1990년 이후 연평균 3.3%씩 증가했다. 특히 에너지 분야가 전체 배출량의 87%를 차지해 1990년 대비 2.6배 늘었다.

목표 대비 실적은 더욱 초라하다.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통해 세운 목표 배출량보다 연도별 2.3~15.4% 초과 배출했다. 초과 배출률도 2014년 4.9%, 2016년 11.5%, 2017년 15.4%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책의 기본 틀은 마련했으나, 가시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여전히 증가세”라며 “정부 정책에 대한 체계적 효과 검증 없이 정성지표 중심의 이행점검을 실시했다”고 실패를 인정했다.

실패 원인 진단에도 확실한 대안 유보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안’ 공청회가 열렸다. <사진=이채빈 기자>

온실가스 감축에 실패한 이유는 분명하다. 원단위 배출량 감소가 미미할뿐더러 에너지와 산업 생산량,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면서 총배출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배출권거래제를 보완하고, 전환부문의 추가 감축량을 확정하는 등 온실가스 로드맵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출권거래제 개선과 감축 잠재량만 확정하면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 안착을 위해 시장기반 감축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기업의 행동 변화 촉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6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의 95%가 에너지 산업부문이 차지하고 있다”며 “에너지 수요관리를 맡고 있는 산업부와 건물·수송에너지를 맡고 있는 국토부 등 관계부처와의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석탄발전을 감축하겠다고 말했지만 신규 석탄발전은 여전히 증설되고 있다.

또 노후 석탄발전소 폐지·신규 석탄발전소 금지 등 석탄발전 감축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신규 석탄화력은 여전히 증설되고 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정부는 2022년까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6기를 폐기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현재 7기의 석탄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으며, 폐기할 발전소 규모는 그 절반에 불과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더 증가할 전망”이라고 꼬집었다.

이밖에도 국민 참여 확대 사례로 든 그린카드, 탄소포인트제 등 생활 속 범국민 실천운동 확산은 기후위기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했다.

‘기후악당’ 오명 벗을 적극적 감축목표 외면

유호 환경부 기후전략과장이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채빈 기자>

한국은 이러한 소극적인 대처 탓에 ‘기후악당’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영국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AT)은 지난 2016년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악당’으로 지목했다.

이번 계획안에서도 정부의 무감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 UN 산하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지난해 채택한 ‘특별보고서(SR)’에 따르면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대비 1.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반면 정부는 계획안 기본 방향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2℃ 이하 온도상승 억제를 위한 온실가스 감축 추진”이라고 정의했다. ‘1.5℃ 이하’와 ‘1.5~2℃ 이하’는 분명 다르다. 국제사회 동향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참여한 사람들 <사진=이은주 객원기자>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2017년 대비 24.4% 감축(총배출량 5억3600만톤 이내)이라는 목표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고려해 전면 재설정돼야 한다”며 “전환부문의 핵심과제로 제시된 ▷노후 석탄발전 추가 감축 ▷봄철 가동중지 확대 ▷환경급전 도입과 더불어 ▷신규 석탄발전 중단 ▷상시적 가동 감축이 명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전기요금 체계를 수정해야 한다”며 “수요관리 요금제에서 나아가 온실가스 감축 비용을 반영하고 기업과 소비자 행동을 변화시키는 가격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수송 부문도 내연기관차 감축과 생산 및 유통 중단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후변화 심각성 모른다? 외교적 이슈로 간주”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안’ 공청회에선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채 체계적인 이행점검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사진=이채빈 기자>

정부의 계획안은 ‘속 빈 강정’에 가까웠다. 이번 공청회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억3600만톤으로 줄이겠다는 정부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설명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공청회에선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채 체계적인 이행점검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계획안에 대해 “우리가 기후변화를 얼마나 경직적으로 대하고 있는지 기본계획에 담겼다”고 질타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도 “정부는 일상적인 대책만 나열하고 있다”며 “기후변화 대책은 산업을 강제하고 관리하는 내용이어야 하는데, 과학계가 거듭해서 전하는 메시지와 정책이 담아내는 간극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후변화의 화살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며 “당장 경제가 어렵다고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권리를 인정하는 게 타당한지 묻고 싶다”고 강력한 대책을 촉구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15~2019 전 지구 기후보고서’에서 “2015년부터 올해까지가 역사상 가장 더웠던 5년으로 기록될 것이며, 이산화탄소 농도도 가장 높았다”고 분석했다. 툰베리의 말처럼 인류는 이미 대멸종의 시작점에 서 있는지 모른다. 정부는 하루빨리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한다. 적어도 ‘경제성장’이라는 가치를 쫓기보다는 ‘기후위기’라는 진실을 마주할 때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