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계교란물질 비스페놀A 안전기준 서둘러 신설해야

비스페놀 A(bisphenol A)는 벤젠 고리에 알코올기가 달린 페놀 2개로 구성된 방향족 화합물이다. 폴리카보네이트나 에폭시수지 같은 플라스틱 제조의 원료로서 음식용기, 젖병, 치과용 레진, 음료수캔 코팅 등 다양한 형태로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강력한 세제를 사용하거나 산성, 고온의 액체 속에 비스페놀A로 만든 플라스틱을 넣으면 녹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발생한 비스페놀A는 매우 낮은 농도에서 내분비계교란물질로 작용해 정자 수 감소나 여성화 같은 건강상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캔음료를 전자레인지에 덥혀 마시지 말라는 경고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플라스틱 업계는 안전하다고 주장해왔지만, 아주 적은 양의 비스페놀A도 신경 발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되면서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비스페놀A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각종 단말기에서 출력하는 영수증, 순번대기표에서 비스페놀A가 다량 검출됐다는 것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의 감열지 분석 결과 시료 18개 가운데 8개에서 EU의 비스페놀A 인체 안전기준을 최대 60배까지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안전기준 조차 없다.

독일 등 EU 국가들은 비스페놀A를 생식독성, 안구피해도, 피부 민감도, 1회 노출 특정표적 장기독성 1등급으로 각각 분류하고, 제조‧판매‧사용 제한물질로 규제하고 있다.

2020년 1월부터는 중량 기준 0.02%(1g 당 200㎍) 이상 비스페놀A가 포함된 감열지의 사용도 금지한다. 소비자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강력한 조치다.

이에 반해 국내 상황은 너무 열악하다. 조사대상 중 한 은행 순번대기표에서는 EU 기준치의 60배를 초과하는 비스페놀A가 검출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관 순번대기표, 만두전문점 영수증, 대형마트와 의류판매점 인쇄영수증, 주스판매점 영수증 등에서 유해한 비스페놀A 용지가 사용되고 있다.

반면, 또 다른 대형마트, 영화관, 패스트푸드점, 우체국 등의 시료에서는 EU기준치 이하의 극소량만 검출돼 큰 차이를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자율관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EU를 비롯해 스위스, 미국 일부 등은 감열지의 인체 안전기준을 갖고 있다. 스위스는 비스페놀A뿐만 아니라 비스페놀S에 대해서도 중량 기준 0.02% 초과 시 금지규정을 내년 6월부터 적용한다.

국내 영수증 발급 건수는 2015년 101억 건에서 2018년 127억 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지만, 감열지에 대한 안전기준은 없다. 거의 해마다 이 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어느 부처도 감열지의 비스페놀A 관리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영수증을 받는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발급하는 업체나 상점 관계자들 또한 건강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둘러 비스페놀A의 안전기준을 신설해 국민을 지켜야 한다.

소비자단체들이 나서서 대형매장을 우선으로 비스페놀A로부터 안전한 감열지를 사용하도록 촉구하는 방법도 있다.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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