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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적 자연과 대지의 모성···기억 속 풍경을 그리다[김중식 작가가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⑥] 조강현 작가
조강현 작가는 1991년 리용 국립 미술학교(Ecole nationale des Beaux Arts de Lyon) 조형예술학과에 입학해 고등조형국가학위(D.N.S.E.P)를 취득했다. 그 후 파리8대학 조형학과(Arts Plastique)에서 조형학을 심층적으로 탐구했다. 10여년의 재불기간을 뒤로하고 귀국해 여러 차례 개인전과 전시에 참가하며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환경일보] 조강현 작가는 접촉지점에 서 있다. 그가 발 딛고 있는 지점은 하늘과 땅, 바다와 섬, 물질과 비물질, 추상과 구상, 대상과 배경 등 상이한 요소들이 맞닿게 되는 경계선이다.

작품에 보이는 하늘과 지평선, 대지, 바다는 불변성을 지닌 자연의 요소들이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리고 영원히 불변할 자연을 모티브로 과거에 존재했던 내면의 자아, 기억과 욕망, 희망의 접점을 찾아간다.

대지의 암석층과도 같은 깊이 파인 굴곡과 지평선 접경의 완만한 능선은 고요함과 격렬함이라는 두 개의 아이러니가 공존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호한 경계선의 형태는 두 개의 공간의 흐름과 이어짐을 나타낸다.

지평선의 날카로운 선은 고요함과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치밀한 생존의 움직임들을 나타낸다. 이를 감싸 안은 대지의 모성(母性) 성은 색과 기법의 절제로 강하게 표현된다.

하늘과 지평선, 그 접경에 아스라이 자리한 부드러운 능선, 그 평온해 보이는 선들에 가까이 다가서면 날카로운 선들이 엉키어져 있다. 마치 의식 속에 살아 존재하는 수많은 기억, 상념, 아우성의 회로처럼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소리를 낸다.

그러한 하나하나의 선들이 모여 형상을 만들고, 우리의 수많은 무의식의 기억들은 이어지며,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마치 한 그루의 나무들이 모여 숲의 능선을 만들어 가듯 말이다. <작가소개 중에서>

능선에 가을 152x47cm 합판 위에 유채 2018년 조강현

조강현은 작품에 마음속 풍경을 담아낸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의 시선이 가능하다. 하나는 동양에서 그림의 사의(寫意, 동양화에서 화가의 생각이나 의중을 그림에 표현하는 화법), 즉 그림이란 마음속의 생각을 담아내는 시각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그림이란 사실주의이기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추상적·관념적인 세계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조강현의 작업이 실제 존재하는 풍경이라기보다 기억 혹은 마음속의 풍경을 담아낸 것이라는 시각이 훨씬 타당성을 지닌다.

또 하나는 <형태의 문제에 관하여>를 쓰려고 할 때, 칸딘스키가 미술 작품의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요소 사이의 대립을 설정하는데, ‘외적인 형태’는 미술가의 작업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중요한 것은 ‘내적 필연성’이 결정하는 내용의 질(質)이다. 이 내적 필연성과 질만이 형태를 정당화할 수 있다. 따라서 형태의 진정한 의미는 화가의 내적 감정에 달려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회화적 표현은 미술가가 원하는 어떤 형태를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시대의 진정한 예술은 하나의 본질적인 특질, 즉 영혼의 특질에 의해 통일된다. 걸작에 ‘생생한’ 속성을 부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넘어선 언덕 53x41cm 합판 위에 유채 2018년 조강현

조강현 작가가 작품의 내적 필연성에 대해 발언한 부분을 보자. “나의 작품에 보이는 하늘과 지평선, 대지, 바다는 불변성을 지닌 자연의 요소들이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리고 영원히 불변할 자연을 모티브로 과거에 존재했던 내면의 자아, 기억과 욕망, 희망의 접점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는 작품에 하늘과 수평선, 그리고 그 아래 위치한 바다의 모든 기억을 묘사하고자 했다. 이것은 그만의 표현형식이다.

그러나 미술에서 이러한 시각적 표현형식이 전혀 새로운 것만도 아니다. 일례로 프랑스 작가 올리비에 드브레이다. 그는 에꼴 드 보자르에서 건축보다는 당시의 추상화가였던 니꼴라 드 스틸, 피에르 쑬라쥬, 제라르 슈나이더, 세르쥬 폴리아코프 등과 교류하면서 회화의 단순미와 추상회화를 터득했다.

드브레의 독창적인 화풍과 세계는 조강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자연의 풍경을 그리되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 그만의 독특한 추상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드브레는 조강현과 달리 색깔의 병치나 양감의 관계에 민감했고, 자연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묘사했다. 때로는 거대한 폭포 속에 맺힌 응어리처럼 풀었다가 감았다. 그 리드미컬한 음악적 화풍에 마음속 풍경을 토해냈다.

반면 조강현은 전적으로 그러한 이미지를 마음속 표현에 집중했다. 그의 영혼의 원천은 마음과 기억이었다. 드브레가 곧잘 이런 추상작업을 위해 그의 작업실이 있는 투르의 루아르강변으로 차를 몰고 가 캔버스를 펴놓고 추상화의 풍경 작업을 했다면, 조강현은 동양적 사유가 주는 심상의 풍경에 주목했다.

그는 화폭의 이미지를 심상적 풍경과 기억 속 풍경으로 공간을 분류한다. 이를 통해 ‘회화란 감각에 조형적인 현실을 부여하는 말 없는 언어’라는 그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또 ‘화가란 형태와 색채, 기호로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감정의 이미지를 되돌려 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별헤는 밤 215x67cm 유화 2018년 조강현

조강현은 이러한 작업을 초기에는 단순한 색채와 톤을 합판 위에 수직과 수평이라는 교차적 구성으로 그렸다면, 최근에는 단순미와 감각적 색채가 돋보이는 내면의 뜨거운 심경을 풍경처럼 보여준다. 이처럼 조강현의 풍경은 눈에 보이는 장면이 아닌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중시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한 세계는 존재하는 위치와 바라보는 위치, 다시 말해 두 얼굴의 시선이 존재하는 ‘풍경이 없는 풍경화가’라는 점이다. “하늘과 지평선, 그 접경에 아스라이 자리한 부드러운 능선, 그 평온해 보이는 선들에 가까이 다가서면 날카로운 선들이 엉키어져 있다. 마치 의식 속에 살아 존재하는 수많은 기억, 상념, 아우성의 회로처럼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소리를 낸다. 이러한 하나하나의 선들이 모여 형상을 만들고, 우리의 수많은 무의식의 기억들은 이어지며,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이처럼 회화의 기본적 골격과 구조, 기법과 형태, 색채는 조금씩 다를 뿐 그가 항상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심상적 풍경의 노출’이다. 이는 존재할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는 심상의 풍경으로, 내면의 이미지와 기억, 그 얼굴들의 표정이다. 무수하고 측정할 수 없는 형상들이 높낮이를 가지며 수평면의 접경에서 유희한다. 이 수평선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비현실인지, 어디까지가 육지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가시적 세계의 사유’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바라본 넘어 65x45cm 유화 2019년 조강현

이러한 기법은 동양화의 발묵(潑墨, 먹물이 번져 퍼지게 하는 산수화법)이나 농담(濃淡, 짙음과 옅음)으로, 공간과 여백의 잔상이 주는 감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조강현은 회화의 순수한 지평을 표현하기 위해 우연적인 효과가 가져오는 최고의 감성과 붓질에 몰입한다. 이것이 그가 만드는 이미지다. 붓질과 물질의 섞임, 농담에 따라 풀어지는 그 우연적인 깊이의 유희, 그 평면에 일어나는 파문의 아름다움이 이 같은 시간 속의 기억과 상상 속의 잔상들을 연출한다. 극도의 평면 위에 펼쳐진 시적 절제와 감수성은 다른 화가들이 갖지 못한 엷은 농담의 조절을 통해 이뤄진 세계다.

우리의 관심은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다. 수평선은 그림으로, 나아가 그림 너머 광경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중성을 드러낸다. 이 이중성은 조강현의 파리 작업에 비춰 봤을 때 회화작업 이전에 해왔던 ‘오브제-회화’ 작업에서의 구성과 형태, 색감을 전적으로 활용한다. 마치 니콜라스 드 스틸이 보여준 ‘추상의 풍경’, ‘풍경의 추상’을 통해 경계의 세계와 흐름을 같이한다.

결론적으로 조강현의 회화 내면에는 그치지 않는 동양과 서양의 사유가 흐르며 감각처럼 빛나고 있다. 이는 그림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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