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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 소소한 일상의 빛남을 위해[김중식 작가가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⑧] 이지숙 작가
부귀영화-진주낭파우치,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 채색
이지숙 작가는 서울대학교에서 공예를 전공, 졸업 이후 여러 차례 개인전과 전시에 참가하며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작업 기법은 테라코타 부조작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환경일보] 어느 날 익숙한 사물이 시선의 범주 안에 불현듯 들어와 낯설게 말을 걸어올 때, 작가는 사물이 갖고 있던 감춰진 이면(裡面)을 잡아채고 그 속에서 자신의 단편을 인지한다. 이지숙 작가는 일상의 소소한 물건을 매일 새롭게 응시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작가의 어느 하루를 그대로 이미지로 떠낸 듯 이지숙의 정물도에는 책, 문방구류, 과일이 담긴 그릇, 꽃이 담긴 화병, 차, 자개, 장식품, 화장품 등 다양한 사물이 등장한다.

이지숙은 자신이 매일 보고 사용하며 어루만지는 것들을 단순히 보고 애정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흙으로 주무르고 깎고 새기고 나아가 세필을 쥐고 그리는 지난한 과정으로 시각화한다. 사물들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고, 옛 책거리 그림을 새롭게 해석한다. 서책이 쌓이고, 고전과 현대 문명의 사물들이 이야기하듯 중첩되고 구축된다. 물건들은 가상(假象)의 방을 무대 삼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부유하듯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책이다. 이지숙의 작품에선 <총, 균, 쇠>, <사피엔스> 등 자신이 읽은 ‘오늘의 책’이 등장한다. 그는 “짧은 몇 줄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15년 이상을 같은 패턴으로 생활하며 작업해 온 내게 이들의 대화는 매우 낯설기만 하다. 한 번도 찬찬히 생각해보지 못한 감정을 글로 대할 때의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이지숙의 작품에선 문화적 향기를 탐닉하는 작가의 면모를, 감미로운 감성을, 그리고 손때 묻은 물건들에서 생의 안락을 꿈꾸는 한 여자의 나르시시즘이 물씬하다. 이지숙은 묻는다. “현대를 사는 소시민에게 부귀영화가 별거던가? 그저 일상의 순간들이 만드는 소소한 즐거움을 알고 또 기뻐함 아니겠는가?” 소소한 일상을 비상으로부터 지켜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이지숙의 작품이 자아내는 의미는 묵직하다. <작가소개 중에서>

모란꽃과 부귀영화

부귀영화-자화상,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 채색

이지숙 작가는 민화를 흙으로 빚어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지켜보면 일단 눈이 매우 즐겁다. 이 중에서도 하얗고 둥그런 백자에 꽂혀 있는 빨간 색의 화려하고 풍성한 모란꽃이 가장 좋다. 모란꽃은 작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이자 개성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작품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란꽃을 풍성하게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

모란(혹은 목단)은 예로부터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왔다. 부귀영화, 즉 ‘부유하고 귀해 영화롭게 빛남’은 누구나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꿈이자 욕망 중 하나다. 모란꽃이 언제부터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 됐는지, 그리고 모란꽃 그림이 모두 부귀영화만을 상징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선덕여왕의 모란꽃 그림 이야기나 설총의 <화왕계(花王戒)와 같은 옛이야기에서 모란은 여왕, 혹은 꽃들의 왕으로서 왕권의 상징이라고 알려졌다. 또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미인인 양귀비가 모란꽃에 비유되면서 모란은 일찍부터 탐스럽고 요염한 미인의 상징으로도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탐스러운 모란꽃의 풍성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이 미술 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대체로 고려시대다. 당시 신하를 아끼는 왕의 마음을 모란꽃으로 표현해 왕이 내리는 하사품에 모란꽃 문양을 새기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모란꽃의 의미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상징으로 확대돼 왕실에서 행하는 국가 의례에서는 언제나 모란꽃 그림 병풍을 펼쳐 놓았다. 민간에서는 여전히 모란꽃을 부귀영화를 기원하기 위한 길상적(吉相的) 문양으로서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 수놓고, 민화로 그리기도 했다. 선비들은 공명과 부귀영화의 허망함을 경계하기 위해 모란꽃을 자신의 책가도에 그려 넣었다.

이처럼 모란꽃의 상징성은 시대에 따라, 감상자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면서 전통적인 조형 예술 속에서 변주돼 왔다. 이지숙 작가의 모란꽃 작품들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며, 이 시대 속에서 변주되고 있는 것일까?

전통적인 책가도 형식과 현대적 경험의 만남

정물도-파초와 사피엔스,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 채색

이지숙의 작품은 모두 테라코타 기법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부조(浮彫), 즉 테라코타 릴리프(Terracotta Relief)이다. 그는 청자토나 분청토와 같은 흙을 이용해 거대한 도판(陶板)을 만들고, 그 위에 또다시 흙을 덧붙이거나 파내어 입체감 있는 부조의 형식으로 기본 형태를 만들어나간다. 기본 형태가 만들어지면 흙을 건조시킨 뒤, 가마에 들어갈 만큼의 크기로 분할해 각 조각을 1000도 정도에서 구워낸 다음, 구워진 조각을 합판 위에 재구성해 붙인다. 성형이 끝나면 구워진 도판 위의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여러 번 겹쳐서 채색한다. 채색은 흙으로 만들어진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의 작품은 액자와 같은 상태로 벽에 걸리지만, 종이나 비단에 그려진 그림과 같은 2차원적 평면이 아니라 모두 흙으로 만들어내는 3차원의 입체 도자 조형 예술품이다. 흙판으로 만든 부조이기에 이미지 자체는 평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낮이를 가진 입체감이 음영을 줘 미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 때문에 이미지보다는 실물 자체가 가진 시각적·촉각적 입체감을 직접 맛보아야만 그 감성을 공감할 수 있다. 흙은 이지숙 작가의 원초적 생명의 근원이며 예술성의 본질이자 영원한 고향이다. 평평하면서도 입체적인 거대한 부조의 공간은 모두 조선시대 전통적인 책가도 형식을 차용해 재해석한 형상들이다. 이 형상들은 전통 민화의 조형성을 따르면서도 작가 자신의 삶과 내면세계를 투영해 재구성된 다차원적 공간이다. 전통과 현대성을 기묘하게 공존시킨 이지숙 작가만의 독특한 조형 세계다.

정물도-총균쇠,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 채색

이지숙의 작품에 등장하는 책과 책장, 장식장과 꽃병, 과일과 그릇 등과 같은 기본적인 소재는 민화의 책가도 그림에서 차용해 오지만, 그의 책가도에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가 되는 ‘책’이다. 작품의 제목으로 치환돼 작품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그가 직접 읽은 여러 책 중에서 선택된 특별한 책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읽은 책만을 주제로 자신의 책가도를 재구성한다. 백자에 꽂힌 붉은 모란꽃이나 섬세한 나전칠기 가구, 책더미와 그릇과 과일 등은 독서를 통해 얻은 작가 자신의 현대적 경험을 조형화하기 위한 시각적 보조 수단이다. 작가가 독서를 통해 획득한 내적 경험의 세계는 전통적이자 일상적 사물들로 둘러싸여진 공간을 통해 시각화 혹은 객관화됨으로써 보는 사람과의 경험적 공유를 시도한다.

작가의 책 읽기 경험은 사실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오래된 동료 작가들과 모임에서 공유된 집단적 경험이기도 하다. 1999년부터 10여년 이상 지속된 현대 공예작가들의 모임 <공책>은 여러 가지 책 읽기와 토론을 나누는 작가들의 독서 모임이다. 이 독서 모임에서 접한 다양한 책은 그의 작품 속에 녹아들어 전통적이면서도 아주 현대적인 테라코타 릴리프로 재현된다. 독서는 그의 일상과 작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으며, 작가 안에 오랜 시간 쌓인 지적 향유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결과물은 새롭고 독특한 현대적 책가도의 형상으로 응축돼 드러난다.

이지숙이 흙으로 만드는 현대적 책가도는 바로 그의 삶이자 예술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작가는 전통적인 책가도 형식을 차용해 현대를 사는 자신의 삶과 예술관, 독서 경험을 조형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소소한 일상의 ‘부귀영화’는 무엇일까?

부귀영화-연꽃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 채색

책은 문자를 통해 독자와 소통한다. 예술은 문자가 아닌 작품을 통해 타인과 소통한다. 이지숙 작가가 생명의 원초적 근원인 흙과 강렬한 색채라는 테라코타 릴리프 작업을 통해 꾸준히 타인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바로 ‘소소한 일상에서 부귀영화 찾기’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그렇게 위대하고 심오하고 난해한 작업의 세계를 보여줬는가? 과연 그러한 예술론의 환상적 허망함이 예술의 본질을 알려주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예술론이 작가의 작업이나 작품에 얼마만큼 도움을 주는가? 예술은 과연 배운 자들의 이상적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고고한 철학의 산물인가? 갤러리에서 비싼 값에 팔리고, 대학에 자리를 잡아야만 현대 예술가로서 부귀영화를 획득한 것인가? 작가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해서 당당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지숙은 예술가가 찾아가야 하는 부귀영화라는 것이 명예와 경제적 부유함이나 예술적 난해성에 있지 않으며, 꾸준하고 성실한 자기 발전과 소소한 일상의 행복함에 있음을 설파한다. 흙과의 작업이나 채색 작업은 모두 혼자서 꾸준히 진행해가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 외로운 투쟁 과정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가족과 지인의 존재는 바로 누구나 가질 수 있으면서도 가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부귀영화인 것이다. 제철에 나는 과일과 식자재로 음식을 만들어서 함께 먹고 즐기며, 자기 작업에 대한 관심을 나눌 수 있고, 자신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가족과 지인들······. 하루하루는 바뀌지 않는 듯하지만, 어느새 변해버리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흐름 속에 행복은 늘 존재한다. 이 행복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찾을 수 있고 가질 수 있지만, 놓쳐버리기도 너무나 쉬운 가장 중요한 부귀영화인 것이다.

이지숙의 붉은색 모란꽃은 이러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부귀영화’의 상징이다.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귀영화는 늘어난 얼굴의 주름살이나 변해버린 사람의 마음과 같은 허망한 것이 아니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견고하고 확실하게 지켜가기 위한 자기 마음의 굳건함이다.

현대 사회가 지닌 모순성의 예술적 변주

부귀영화-뒤꽂이와 자개함, 테라코타 위에 아크릴 채색

이지숙의 작품에 보이는 전통적인 이미지와 색채의 풍성함은 사실 작가의 내면적 어려움과 고뇌를 승화시켜 조형화된 현대적 예술 작업의 결과물이다. 현대 사회는 물질적 측면에선 과도한 진전을 이뤘지만, 정서적 측면에선 전통을 부정하면서도 전통적인 사고 체계를 유지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부모 세대와의 단절을 바라면서도 단절할 수 없고, 자식 세대와의 소통을 바라면서도 소통되지 않으며, 건강해지고 싶지만 건강하기 힘든 과로와 피로의 사회 속에서, 행복을 바라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모순성. 이러한 모순을 지적해 예술적으로 변주된 것이 바로 이지숙의 책가도와 모란꽃이다.

여러 가지 삶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언제나 굳건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이지숙 작가야말로 이러한 과정을 묵묵히 수행하며 진정한 부귀영화를 찾아가는 현대 예술세계에서 보기 드문 작가이다. 이지숙은 시각적 전통성의 차용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일상성과 모순성을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여기서 모란꽃은 아름다움과 풍성함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행복과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전통적인 상징물이다. 동시에 작가 자신의 삶 속에서 언제나 꺼지지 않는 예술혼과 부귀영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 속에 녹아내려 예술적으로 변주될지 기대된다.

<글 / 주경미 부산외국어대학교 HK연구교수, 동양미술사학자>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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