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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에서 울리는 소리의 물질화[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⑬] 최소리 작가
소리를본다_콘서트(Seeing Sound_Concert) 120x120cm Mixed media on aluminum 2019 최소리
록그룹 백두산의 드러머였던 타악기 연주자 최소리는 미술 작가로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소리의 시각화에 주목해 드럼 대신 금속판을 스틱과 북채로 두드려 색을 입히고 지워내며 작품을 완성한다.

[환경일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와 에너지에는 각기 그들만의 소리가 있다. 나는 그 소리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다.

나의 작품은 연주하며 춤을 추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신명(神命)으로 삼매(三昧)에 들어 또 다른 나와 합작으로 완성된다.

연주와 춤, 노래, 글, 그림. 이 모든 행위는 나에겐 똑같은 하나이다. 그 하나가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음악으로 완성된다.

내 작품의 겉은 눈으로 보고, 내 작품의 속은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예술가는 몸이 늙어 죽지 않는다. 정신이 멈추는 순간 죽은 것이다. 새로움을 찾는 것은 내 것을 찾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 유일한 내 것은 ‘내가 죽은 100년 후에도 많은 이들이 즐기고 있을 때’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소리를본다_청학동가는길(Seeing Sound_The Road to Chunghakdong) 120x120cm Mixed media on aluminum 2019 최소리

소리(音)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잠시 머물다 이내 사라진다. 반면 미술은 일정한 시각적 구현물로 자립하거나 구체적인 물질이 돼 항구적으로 존재한다. 소리가 무형의 것이라면 미술은 유형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반드시 일정하지는 않다. 20세기 들어와 현대미술은 미술이 오랫동안 가시적 세계의 재현에 저당 잡힌 것을 부정하고자 비가시적 세계(추상)를 의도적으로 추구했는데, 여기서 적극적으로 참조한 장르가 바로 음악이었다. 동시에 심리나 정신, 언어와 개념의 세계 내지는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을 겨냥한 작업도 가능해지는가 하면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가 급격히 와해되는 과정을 겪어나갔다. 이처럼 미술이 시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과 관여돼 있다는 사실, 이른바 ‘망막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한 부단한 시도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최소리는 타악기 연주자로 익히 알려진 이다. 그는 오랫동안 밴드 드러머, 타악기 연주자로 활동했다. 금속성의 드럼이나 가죽으로 이뤄진 북의 표면을 두드려 소리를 낸다. 이는 대체로 원형의 공간, 그 화면 전체를 공략해가면서 스틱을 타격해 원하는 소리를 길어 올리는 일이자 일정한 공간·화면 안에 몸을 실었다 빼내는 것이다. 동시에 터치, 신체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그래서 드럼이나 북의 피부에는 일정한 시간 동안 타격을 받아 생긴 상흔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것은 소리를 낸 후에 남겨진 사후적 결과물에 해당한다. 스틱·신체의 물리적 압력으로 생긴 상처이자 특정 소리를 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됐던 이 흔적도 일종의 회화적 이미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소리 작가의 작업 모습

최소리는 연주와 함께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고, 최근에는 온전히 작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제작방법이 타악기 연주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그는 기존의 미술 어법을 익혀 미술계 내부로 진입하는 루트를 포기하고, 자신이 악기를 다루는 익숙한 방법론을 통해 ‘소리를 보여주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스틱을 이용해 회화적 행위로 대체한 것이다. 사실 그에게는 미술에 대한 교육이나 정보가 일절 없어 보인다. 오로지 악기를 다루었던 몸의 감각, 익숙한 방법론에 의지해 이를 물질·시각화하고자 할 뿐이다. 그러나 그가 행위의 결과물로 남겨놓아 ‘작품’으로 제시한 것은 현대미술에서 추상·비재현적 회화에 유사하며 오브제를 다루는 작업이고 신체적 행위·퍼포먼스로 가능한 작업과 다르지 않다. 결국 그의 작업은 색다른 방법론으로 도달한 현대미술의 익숙한 얼굴인 셈이다.

소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일이 그의 연주보다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소리는 이 낯선 길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느낌이다. 자신이 악기를 통해 이뤘던 것을 평면 안에서 어렵게 구현해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결국 최소리에게 음악이나 미술, 문학 등의 장르 구분이나 매체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분리될 수 없기에 이를 하나로 보고 작업하고 있다. 이른바 총체적인 예술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을까?

소리를본다_지리산바위꽃(Seeing Sound_Rock flower on Jiri M.) 120x60cm Mixed media on aluminum 2019 최소리

좋은 그림은 눈에 귀를 달아주기도 하고 보는 것을 걷게 해준다. 이러한 점에서 악기를 다뤄 소리를 내다가 이를 아예 그림으로 구현하고자 한 최소리의 시도는 일견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에게는 청각에 호소했던 것을 시각으로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돼 있다. 최소리는 자신의 신체와 스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사각형의 평면 전체를 공략하면서 특정 지점을 타격해 구멍을 내거나 스크래치를 냈다. 악기의 원형 틀을 대신해 사각의 평면 안에서 무수한 소리·타격을 몰다가 결정적인 압력을 가해 표면을 내파하거나 주름을 잡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로써 평면은 부조나 입체적 효과로 환생하면서 회화이자 동시에 요철효과로 자글거리는 일종의 조각이 됐다. 이른바 평면과 조각이 동시에 공존하는 피부, 화면이다. 이 주름과 결은 물리적 타격을 받아 생긴 상처이자 납작하고 편평한 표면에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여러 표정을 풍경처럼 형상화하고, 이것들이 다양한 소리를 발생(상상하게)시킨다. 따라서 그의 화면은 보는 것이자 듣는 것이고, 보이는 단서를 매개 삼아 소리를 발생시키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망막을 빌어 청각을 자극하려는 회화에 해당한다.

소리를본다_크레이터(Seeing sound_Crater) 120x120cm Mixed media on aluminum 2019 최소리

최소리는 종이나 황동, 알루미늄, 구리 등의 재료를 화면으로 삼은 뒤 그 위에 스틱이나 기타 여러 연장들을 동원해 소리를 연주·이미지를 연출한다. 이러한 형상은 표면을 두들기고 가격을 해서 상처를 내거나 색채로 덮은 상태로 밀려 나온다. 그는 “두드리고 두드려서 소리를 그리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압력이나 힘을 가하면 본래의 물질은 다른 표정을 짓는다. 물질의 성질이 바뀌지는 않지만, 그 물체의 고유성이 다분히 와해되거나 약화되면서 미처 접하지 못한 물질의 또 다른 단면을 불현듯 드러내 보인다. 최소리는 이러한 물질의 변용을 적극적으로 연출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결국 ‘소리의 가시화’에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소리를본다_마리오네트(Seeing Sound_Marionette) 120x120cm Oil on aluminum 2018 최소리

최소리의 작업은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이 되는 일정한 지지대·평면(표면)을 선택한 후 그 피부에 타악기 연주를 하듯 연주 도구(그 외에 다양한 매개들)를 이용해 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 표면에 무수한 굴곡과 주름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물론 그 소리는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 보이는 소리, 물질로 응고된 소리이자 상상을 통해 공명하는 ‘소리의 시각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사후적 장면으로, 시각적으로 마감돼 화면 안에 담겨있다. 따라서 최소리의 화면은 분명 회화가 돼 존재한다. 색이 입혀지고 붓질이 지나가고 다채로운 질감과 물성의 맛이 먼저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빛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표면은 무수한 굴곡, 주름, 협곡을 만들어낸다.

최소리의 화면은 절대 단일하지 않다. 이 표면은 타격의 횟수, 시간, 신체적 힘의 강도에 따라 무수한 변화와 깊이를 지닌다. 따라서 얇은 단면의 피부 자체로도 소리는 생성된다. 물론 화면이 소리를 저장하고 있거나 특정 소리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리 본인은 분명 그러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듣는 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자신의 경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이 같은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갇힌 감각을 풀어헤치는 일이자 굳은 신경과 한정된 몸의 감각을 마냥 확장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진정한 힘이기도 하다.

소리를본다_천개의 눈(Seeing Sound_A thousand eyes) 120x60cm Aluminum 2017 최소리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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