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⑫] 이강화 작가

바램-엉겅퀴 161.6x97cm Mixed media 2019 이강화
이강화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거쳐 프랑스 파리 국립8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국내외에서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왔다.

[환경일보]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만나지게 되는 계절······. 아무리 보아도 조화로운 비율을 하고 있는 건 자연뿐이지 않은가 싶은 이 믿음은 강화에 터를 잡으면서 고마움으로 자리 잡았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과 몸을 누일 수 있는 덕분에 자연과의 교감은 더욱 편안해졌고, 내 마당에서 만나게 되는 작약과 목단, 쑥부쟁이, 구절초, 엉겅퀴, 개양귀비 같은 생명 있는 것들을 캔버스로 옮기면서 더 자유스러워진 그림 그리기가 된 것 같다.

이 꽃이 피고 저 열매가 맺을 때마다 절로 나오는 감탄은 해마다 똑같이 반복되지만 꾸미려고 애쓰지 않은 진심 덕에 내 나이 폭만큼 통찰의 힘이 생긴 것도 다행한 일이다.

여러 상황들이 만들어 놓은 권태에서 벗어나게 하기도 하고, 쉬어가기 좋은 간이역을 만들기도 하고, 도시에서 묻혀 온 투덜거림을 대나무 틈새에 털어내기도 하는 산 아래 안식처에서 나는 마른 잎에 생명을 그리는 힘을 얻고 있다.

아니, 늘 거기 있는 것들에 주목하며 많이 움직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중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사랑을 투입해야 시가 읽히고 노랫말이 들리는 것처럼 피고, 지고, 돋아나는, 늘 거기 있는 것들에게 얼마간은 더 오랫동안 집중하며 지내기로 했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함도 자연에서 배우고, 변하는 건 변하는 대로, 그냥 두어도 되는 건 그냥 그대로 두면서 문맥을 따르는 삶에 집중하는 시간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천과 쇠, 나무 등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호흡한 작업을 내보이면서도 나는 또 세월과 부대낌을 꿈꾼다. <작가노트 중에서>

그리운 날 200x100cm Oil on canvas 2019 이강화

소소한 풀꽃과의 대화
자연의 진실성을 추구하다

화가 이강화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을 고상하게 만드는 감각과 지각 그리고 형상을 넘나드는 유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다양한 오브제를 거두고, 하나의 대상을 살피고 관리해서 그 위에 형상을 관계 맺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이강화는 나팔꽃과 엉겅퀴, 강아지풀 등 너무 흔해서 눈여겨보지 않던 들풀과 풀꽃들을 작품으로 끌어들인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작가는 그런 들풀과 이름 모를 꽃들에도 눈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자신만이 느끼고 교감하는 것들을 회화로 표출한다.

가을 단상 69x145cm Oil on canvas 2017 이강화

이강화가 지각한 사회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나팔꽃, 의연한 모습을 지닌 목련꽃, 강건함을 지닌 엉겅퀴, 가냘프지만 굴하지 않는 강아지풀, 버드나무의 강인한 생명력 같은 것들은 지속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모노크롬 색조 위에 성스럽게 배치돼 있다. 그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자연 풍경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되살려낸다.

축복 72.5x91cm Oil on canvas 2017 이강화

작가의 시선과 감성을 따라가듯 섬세하게 묘사된 작은 들풀의 생명력은 깊은 내면의 울림을 전달한다. 자연의 화기애애한 풍경과 현실의 초라함이 공존하는 ‘화해의 공간’은 아름다움 그 이상이다. 구원의 빛이 보이지 않던 곳에서도 자연은 존재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작가는 영혼이 빠져나간 자아에 생명을 불어 넣고 직관적 교감을 통해 망각한 비밀을 엿본다.

아픔과 절망은 질박해진 공간에 응축되거나 절제되어 있고, 여백은 많은 것을 억제한 뒤에 오는 여유로움이다. 사물이 지닌 기억은 시간적 깊이의 성찰과 감정을 드러낸 여백, 엉기면서 자유롭게 춤추는 야생초, 흔들리는 그림자의 몽롱함으로 재현된다. 유령처럼 떠오르는 그림자와 풍경은 하나가 된 자아일 것이다.

기분 좋은 날 90.9x65.1cm Oil on canvas 2017 이강화

이강화는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한 자신의 감각을 왜곡하거나 특별한 미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사물 속에 갇혀 있던 기적을 섬세한 직관으로 열어내고, 미미한 돌 하나에도 자연의 섭리가 미치고 있음을 자각한다. 하찮은 푸새라도 위대한 과학자나 경전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생명의 신비로움은 우주의 첫 모습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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