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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사라질 찰나의 아름다움을 담다[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⑰] 김기태 작가
Unknown Artist-June 1st 19 145.5x112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김기태

[환경일보] 작자 미상. 나는 종종 박물관에서 어느 유물을 보며 이것이 정말 알려진 그 용도였을까 어쩌면 알려진 바와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예술 작품의 경우 종종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판명되기도 하지 않는가. 만약 나의 작품들에 관한 모든 정보가 완전히 잊혀 이것들의 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게 된다면 사람들은 이 작품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쩌면 작품은 작가와 완벽하게 결별함으로써 그 스스로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

장면, 나의 작품 속 사건들은 현실과 초현실의 중간 어디쯤에서 일어난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낮과 밤의 경계인 그런 시간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다지 현실적이지는 않아 보이고 그렇다고 딱히 초현실적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정도이다. 마치 어느 한 여름날 찾아온 일식 현상과도 비슷한······. 어쩌면 작품 속의 이러한 현상들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우리의 눈이 보는 것은 고작 가시광선의 영역 안에 있는 것들뿐인데…….

숭고, 우리는 저 광활한 시공간의 한구석에서 벌어지는 아주 작은 하나의 섬광과도 같은 것이다. 게다가 아주 짧디짧아서 ‘아!’하는 외마디 탄식조차 채 끝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마는 아주 우연한 사건이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우연한 찰나적 일회성에 삶의 가치가 있다. 이 찰나적 일회성의 가치는 무한한 시공간에 대비하여 숭고라는 감정으로 나타난다. 이 숭고한 섬광은 거칠게 불타오르기도 하고 어떤 것은 가만히 사라지기도 하며 또 어떤 것은 꽤 오래가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은 다 우연일 따름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Unknown Artist-June 8th 19 145.5x97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김기태

16세기부터 그림 그리는 기계로 사용됐던 카메라 ‘옵스큐라’는 이후 평탄치 않은 국면을 맞는다. 빛에 의해 이미지가 그려지는 경이로운 이 기계는 당대 과학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소중하게 다뤄지며 과학계로 자연스레 위상을 잡게 된다. 기계를 통해 그려진 사진은 1850년대 이후 시각예술의 전당이었던 살롱전에 나름의 예술의 명망을 갖춰 입고 시각예술품으로서 전시가 되지만, 역시 당대 미술품과는 구분된 공간에 놓여 확고하지 못한 어정쩡한 ‘중간 지점’으로서의 자리를 잡게 된다. 19세기 이후 사진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상당 부분 소정의 성과를 이뤄낸다. 과학적 힘을 가진 획기적인 기계와 예술가의 관점을 듬뿍 담고 있는 ‘사진’에는 모호한 태생적 특수함을 딛고, 예술성을 획득하려는 의지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작가 김기태는 카메라와 사진이 선천적으로 지닌 ‘묘함’을 복잡한 작업의 과정으로 인한 결과물로 드러낸다. 캔버스에 사진을 인화한 뒤 그 위에 아크릴과 유채로 덧입히는 과정의 작업을 거친다. 특별함 없이 캔버스에 그려진 평면 유화 정도로 인지하고 결과물인 작품을 접했을 때와 전 작업의 과정을 알고 다시 작품을 바라보면 사뭇 달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실재 풍경화로 간주하기엔 다소 몽환적인 몽롱한 분위기가 풍기고, 그저 비현실적 풍경화라고 보기에는 또한 실제 같은 차분한 자연이 무심히 펼쳐져 있다. 마치 렌티큘라 사진을 보듯, 이렇게 보면 이렇듯 보이고 저렇게 보면 저렇듯 보인다. 김기태의 작업은 두 가지 매체의 혼용으로 인한 가시적 유희를 유쾌하게 제안하는 듯하지만, 단지 재미있게 넘어가기에는 어스름한 구석이 느껴진다.

Unknown Artist-April 11th 19 162x131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김기태

우리는 시각예술에 있어 매체, 물성, 재료, 도구 등의 개념들을 할 수 있는 선까지 밀어붙여 정밀하게 연구·구별·분석하는 작업에 이미 많이 에너지를 소진했다. 작가 김기태의 작업에는 어떠한 재료를 어떻게 사용했는가의 전통적 관점보다 또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시각예술 창작자에게 선택된 재료(Objet)는 작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관객은 작품을 통해 작가와 재료 간의 관계를 관조하고 자신이 그 재료와 맺었던 체계 안에서 공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와 재료가 버무려진 작품은 관객에게 또 다른 세상을 ‘깨닫게’ 해주거나 ‘발견하게’ 해준다. 관객이 그 재료에 대해 갖고 있었던 생각, 때로는 새로움과 낯섦으로, 때로는 반가움과 공감으로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시각예술을 접하고 감상하고 느끼는 전 과정이다. 이 때문에 시각예술 창작자가 선택한 소위 매체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 도구의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미 이 논의는 1900년대 초반에 ‘레이메이드’로서 생성돼 교란됐고, 1950년대 이후 작가 손에 쥐어진 도구와 재료들은 완전히 그 기능과 속성이 갈기갈기 해체되기도 했다.

작가 김기태의 작업에서 매체가 주는 기묘한 시각적 효과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왜 그토록 판타지적인 실재의 공간을 연출하느냐’이다. 모호한 지점, 중간 지점,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그 불편해 보이는 지점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가려는 작가의 행위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는 1초씩 흘러가는 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멍해지는 찰나, 근사하게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에서의 불꽃들을 바라볼 때의 감정, 무심히 올려다본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떨어지는 은하수와 유성을 발견했을 때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지점 등을 재현한다. “곧 사라져버리는 찰나가 무척 아름답기 때문에 표현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아슬아슬한 중간쯤을 포착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머무르고 싶은 작가의 마음 또한 함께 담겨있다. 김기태는 ‘중간 지점’인 ‘트와일라잇 존’의 공간을 확보해 재생한 뒤 그 안으로 숨는다.

Unknown Artist-Sep 4th 18 117x91.5cm Mixed Media on Canvas 2018 김기태

김기태의 작품명은 일괄적으로 ‘작자 미상(Unknown Artist)’이다. 케케묵은 옛날 사진을 보면 대부분 사진 뒷면에 사진을 찍은 장소와 날짜만이 간략히 적혔을 뿐 작자는 미상이다. 누가 찍었는지는 모르지만, 유추가 가능한 이유는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과 풍경, 상황에서 작가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짐작하기 어려운 사진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도 함께 있다. 사진이 찍힌 상황들의 표정과 그 안에 녹아있는 찍은 사람의 숨결은 사진에 굳이 이름을 넣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김기태의 작품 속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켜켜이 달라붙어 떼어내려다 남은 사진 속 흔적까지도 재현된다.

그는 시각예술에 있어 예로부터 만만하면서도 모든 뜻을 함유할 수 있어 달콤했던 작품명 ‘무제(Untitled)’ 대신, 과감히 본인을 제외한 ‘작자 미상(Unknown Artist)’과 날짜를 작품명으로 매긴다. 작품 속에서 철저히 작가 본인을 소외시켜버렸으나 제거되지 않고 남아있는 이유는 작품 안 사진(기록)에 작가의 덧칠(심리적 시간)이 덮여 그만의 특별한 시공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객관적 기록에 자신의 시간을 덧입히거나 아예 덮어버리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기록을 남겨두려는 행위도 반복한다. 김기태는 기반 있는 판타지 즉, 일종의 무한히 날아가는 작가의 상상력을 잡아주는 일종의 안전장치와 같은 것을 걸어두는 것이다. 오롯이 작가 김기태가 만들어 내는 ‘트와일라잇 존(Twilight Zone)’을 만들기 위해······.

김기태 작가는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거쳐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김기태는 찍히는 동시에 현실과 과거가 되어버리는 기록 ‘사진’에 물리적 시간을 거스르는 일종의 자신만의 시간을 덧입혀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함께 같은 꿈을 꿔도 좋고, 또는 다른 꿈을 꿔도 좋다고.

“놀라운 일입니다. 마음이란 거기에 없더라도 볼 수 있게 해주니까요.”
-영화 ‘환상특급(Twilight Zone : The Movie, 1983)’ 중에서-

<글 / 고연수 미술 평론가>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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