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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흔적의 연결고리, 그 한계점서 재생된 새로운 이야기[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㉓] 최철 작가
더 좋은 날 116.8x80.3cm 디지털프린트 2019

[환경일보] 이번 전시 작품의 의도는,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디자인한 이미지를 알루미늄 판에 디지털 프린트한 작업이다. 작업은 이미지에서 무엇부터 볼 것인가를 질문한다. 전통의 놀이라 할 수 있는 화투는 우리들에게 친숙하다. 동전 역시 항상 주머니에 몇 개 정도 들어있었던, 소중한 작은 뭔가를 사기 위한 필요 물건이었다.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 쓸모없이 사라져가는 돈에 대한 운명인가. 가치를 잃어가는 동전들을 보면 시간과 시대가 바뀌어 감을 느낀다. 숫자만 왔다 갔다 하는 디지털 가상의 시대, 돈은 이제 그 기능을 상실한 가상의 상징일 뿐 현실에서 멀어져 간다. 동전의 무게만큼이나 귀찮아졌고 그냥 물신의 상징물로 기록되어간다. 이젠 작업에서 화투와 돈으로서의 어르신들의 놀이판에 도구가 되었다. 또한 동전은 이미지보다 디지털 회화를 만들어가는 구도의 하나로 작용한다. 그래서 이런 소재들은 그림 속 풍경으로 만들어가는 조형적 요소로 보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작가노트 중에서>

최철은 홍익대 미대를 거쳐 파리 1대학 팡데옹 소르본 조형예술학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국내외에서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왔다.

작가 최철의 작업은 ‘기억’이라든가 ‘흔적’과 같은 단어에서 연상되듯이 시간의 좌표축과 물질의 지지체 구조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의 좌표축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그의 작업에서는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있었던 물질을 선택해 그 단면을 도장 찍듯 찍어내거나 감광지에 빛이 비친 상태처럼 에어브러쉬를 사용해 물질의 입체감을 포착해내는 작업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시간 속의 어느 한 순간을 시각적 표현형식으로 물질적 공간의 장 안에 저장하고 회상하기 위해 만들어낸 그의 독특한 작업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장처럼 찍힌 사물의 단면은 고스란히 그 사물의 특성을 연장시키고 있는 듯이 보이고, 감광지에 빛이 비추인 듯한 느낌을 주는 화면은 사물과 빛이 만났던 흔적을 그대로 저장해낸 듯이 보인다.

이상스런 마네킹의 꿈 960x250x250cm 인형, 마네킹 조각들 2019

이러한 작업은 사진의 이미지가 사물을 지시하는 구조와 닮아있기에 마치 그 사물을 보는듯한 일루젼의 착시 현상을 일부분 경험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흔적과 이미지들이 남겨져 있는 그 곳에서 시각적으로 실제 있는 듯한 환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은 이 모두가 허상임을 확인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루젼이라는 것은 그 환영적 속성상 실체처럼 보이거나 이를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실체가 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기에 그 곳에는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미지는 실체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더욱 강력하게 확인시키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있어서는 그가 만들어낸 일루젼의 흔적들이 과거의 기억을 끌어오게 하는 매개물인 동시에 과거 기억의 흔적들은 현재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지표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 작가의 기억을 되새김질하게 하는 흔적들의 일루젼을 그려내는 과거의 작업 방식과는 달리 사진이라는 기계적 방식으로 포착된 이미지들을 사용하되 과거 기억 속 흔적으로서의 이미지로써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이미지와 혼성되도록 하거나 가봤던 해외의 어느 도시 혹은 가보고 싶은 어느 지역을 상징하는 건축물의 풍경을 작가의 기억 속 인물들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가 주목해왔던 흔적의 파편들이라 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재구성하고, 나아가 기억마저 재구성하고자 하는 듯한 작업을 시도한다.

사계의 꿈 116.8x80.3cm 디지털프린트 2019

작가에게 있어서 흔적과 기억이라는 것은 아직도 강력하게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동하는 것이다. 흔적이라는 고리로 연결된 기억 속 과거 한 순간이라는 것은 일루젼으로 남아있는 흔적들마저 과연 그 기억의 순간들을 제대로 지시하고 있는가를 의심하게 만들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이러한 작업 방식의 변화는 예견된 것일는지 모른다.

이미지는 풍경과 인물들이 원근법적으로 하나의 공간에 있을 수 있는 크기로 편집돼 있으나 자세히 보면 풍경과 인물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치 사진을 오려 붙인 듯이 생경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기억 속 이미지들, 흔적의 파편들이 또 다른 이미지들, 또 다른 흔적들과 만나 그 흔적들과 이미지들이 본래 지시했던 이야기,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춰져 있었거나 은폐돼 있었을는지 모르는 영역의 다른 이야기들을 마주하게끔 한다.

무의식의 그림자 116.8x80.3cm 디지털프린트 2017

이러한 포토몽타주를 통한 이미지 혼성작업을 시도하는 것은 작가가 과거 자신의 지나간 시간들을 지시하고 있는 물체의 흔적들을 통해 과거 기억의 재생, 즉 현재 부재하기에 어떤 면에서 보면 단절될 수밖에 없는 영역에 대한 재생을 하는 차원을 넘어 보고자 하는 영역의 재생, 욕망하는 영역의 재생이라는 개념으로 작업의 시야를 확장하고자 하는 것일 수 있다.

저장됐던 기억과 흔적의 이미지들은 서로 혼성되고 결합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과거의 기억을 연장시키는 흔적들에 대한 관심은 의식과 무의식의 체계를 오가면서 합리적 이성에 따라 포착되지 않았던 기억 저 아래에 잠재돼 있었던 욕망적 구조와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를 재생시키고 있다. 이 지점에서 작가의 작업에 있어서 구조적 베이스가 됐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좌표축은 단순히 선형적 체계의 두 축이 만나는 방식에서 벗어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적 체계의 새로운 차원의 지평으로 향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결국 최철은 인간이라는 체계의 한계 즉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인식의 전 영역 내에서의 시공간을 저장하고 재생하는 방식인 기억과 회상이라는 프로세스에서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기억의 손실과 변형, 즉 망각과 착각과 같은 왜곡 현상들이 무수히 발생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주목하고, 기억 그리고 흔적이라는 연결고리의 한계 지점을 몽타주를 통한 이미지 혼성작업을 통해 환기시키고자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형적 대화를 모색하는 이야기를 담아내 보여주는 작업을 수행해 내고자 하는 것이다.

군함도에서 들려오는 아리랑 960x250x250cm 인형, 옷, 신발, 조각품, 사운드 등 2017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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