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증가 없이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발전량 중복계상

[환경일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제도 도입취지와 정책 기대효과에 반하는 형태로 녹색요금제를 추진하고 있어 환경단체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녹색요금제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확대하지 않은 채 재생에너지 전력생산량을 중복계상 하는 꼼수라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늘지 않으니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고 갈수록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도 따라가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배출권만 부여해 기후위기를 가속화할 수 있다.

시민사회 단체는 산업부가 추진 중인 녹색요금제안에 우려를 표하며, 재생에너지 설비를 실질적으로 늘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데 유효한 제도를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해 4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도입을 위한 청문회가 열리는 현장에서 개구리 탈을 쓰고 기업PPA 도입을 촉구하는 액션을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그린피스>

100% 재생에너지 사용 제품 요구

산업부는 지난해 4월 녹색요금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하고 지난해 11월부터 기업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녹색요금제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별도요금(녹색요금)으로 책정해 기업과 가정에 공급하는 정책이다.

정책 기대효과는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크게 2가지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늘어나 총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야 한다.

즉 재생에너지 발전시장에 신규 사업자가 진입하고 기존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는 설비를 증설해 재생에너지 발전 총량이 늘어야 한다.

수요 측면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는 재생에너지 전력 수요량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 230개는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공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전량(100%)을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RE(Renewable Energy)100 캠페인이 그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국내 수출 대기업에게도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제품을 납품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고 조달할 제도적 근거가 없는 탓에 RE 100 캠페인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REC‧REGO 이중계상 ‘꼼수

산업부가 추진하는 녹색요금제의 가장 큰 허점은 ‘재생에너지 소비인증서(REGO)’ 설계 부분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늘리지 못하고 서류상 재생에너지 전략 소비량만 부풀리는 변칙적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탓이다.

녹색요금제 하에서는 기업들은 한국전력에게 재생에너지 소비인증서(REGO)를 구입하면 재생에너지 사용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가 전력을 생산해 한전에 공급하면, 한전은 독점 매입한 재생에너지 전력에 기초해 REGO를 발행해 웃돈을 붙여 기업들에게 판매한다. 문제는 기업이 REGO를 구매해도 재생에너지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소 발전사업자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한전에 공급하고 REC(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를 발급 받고 이를 팔아 수입을 챙긴다.

남동발전, 서부발전 등 500㎿(메가와트) 이상 발전설비를 보유한 대형 발전사들은 총 발전량의 7%(2020년 기준)를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야 하는데 설비 부족으로 미처 채우지 못한 전력량은 REC를 매입해 충당한다. 이들이 사들인 REC는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녹색요금제안에 따르면 REC 거래로 이미 정산이 끝난 재생에너지 전력에 대해 다시 REGO를 발행해 사기업에게 팔 수 있다. 중소 태양광 발전소 등 기존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이 REC와 REGO로 2번 거래되는 것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늘지 않고 서류상 재생에너지 전력 거래량만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환경단체들은 이 같은 꼼수로 인해 우리나라가 국제적 망신을 당할 수 있다며 “녹색요금제를 도입해 REGO를 발급한다고 하더라도 REC가 발급된 발전 설비는 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녹색요금제를 도입해 REGO를 발급한다고 하더라도 REC가 발급된 발전 설비는 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제공=그린피스>

기업 PPA 제도 도입해야

수요 측면에서도 녹색요금제가 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따른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늘지 않으니 국내 수출 대기업들이 필요로 한 재생에너지 전략에 대한 수요를 맞출 수 없다.

정부가 당초 계획대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총량은 삼성전자 전력소비량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하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확대되지 않으니 친환경 에너지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대량으로 증가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배출권과 연계다. 국내 기업들이 REGO를 구입해 재생에너지 사용실적을 인정받고 온실가스 배출권을 얻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늘린다면 최악이다. 녹색요금제, 즉 REGO 도입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총량은 늘지 않은 채 온실가스 배출량만 늘어나는 셈이다.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실질적으로 늘어난 부분에 한해 REGO를 발행해야 한다. 또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없으면 온실가스 배출권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그린피스, 에너지전환포럼, 기후솔루션 등 환경시민단체는 지난해부터 녹색요금제 대신 기업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를 도입할 것으로 요구했다.

기업PPA는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전력을 직접 구매할 수 있어 기후위기 대응에도 유효하고 기업에게도 이득이 되는 제도다.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를 빠르게 늘려 온실가스 감축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산업부도 지난해 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녹색성장 5개년 계획에 ‘기업PPA 도입 검토'를 명시한 바 있다. 환경·시민사회 단체는 “지금이라도 허점투성이 녹색요금제보다 기업PPA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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