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㉙] 김규리 화가

목단의 향기 53.0x45.5cm oil on canvas 2020
화가 김규리는 홍익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여러 차례 개인전과 전시에 참가하며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환경일보] 한국적 모티브를 이용한 작업을 해오다가 최근엔 한국과 대만의 감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각적 표현방법과 창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만을 상징하는 꽃이자 기품과 품격을 의미하는 홍매화, 순수함과 청결을 상징하는 카라, 부귀와 행복의 목단, 정열의 장미······.

이 시대 현대인들은 복잡하고 바쁜 세상에 살아가기 힘들어한다. 이들에게 이 꽃들은 부귀와 풍요, 행복과 평화를 의미한다.

고달픈 삶과 상처받은 자들을 위한 치유와 소통이란 메시지를 아름다운 풍경에 담았다. 작품을 통해 희망을 공유하고 싶다. <작가노트 중에서>

매화의 풍요 53.0x45.5cm oil on canvas 2020

모하 김규리 화백의 예술세계는 나날이 진화한다. 다년간 ‘진화(Evolution)’라는 주제를 끈질기게 추구해왔던 혼합작품 시리즈에서, 작가는 과감한 붓 터치와 세련된 색상의 파격적인 색채의 대비 효과로 인간 내면세계의 갈등과 모순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그간 서양의 표현주의 기법에 기대어 단단한 회화작업을 구축해 온 작가의 시선은 이제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고전적 소재로 이동한다. 초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때로 과격하기도 한, 대담함과 격동적이고도 적나라한 마음의 파동이 근작에 이르러서는 적멸과 비움을 향하며 한결 유순하고 잔잔해져 가고 있다.

Evolution-Lightened moon 100.0x72.7cm oil on canvas 2018

뭉개지고 이지러지고 지워지고 덧칠하고 흘러내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김규리의 작품 속 인물들은 새롭게 거듭난다. 유년시절부터 가시세계와 비가시세계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작가는 ‘있음과 없음’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며, 불굴의 의지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형상화해 화폭에 담아보려는 과제에 탐닉한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작가의 정체성 문제는 ‘표리의 문제’로 드러나고, 꾸밈없는 뒷모습이 가식과 위선으로 포장된 앞모습보다도 더욱 정직할 수 있음을 그는 간파한다. 

일찍이 미셸 투르니에는 “뒤쪽이 진실이다”라고, 한평생 뒷모습만을 카메라에 담은 에 두아르 부바의 사진작품을 조명한 그의 저서 『뒷모습』에서 말하지 아니했던가. 타인의 어깨 위에 무겁게 내려앉은 삶의 무게를 가늠하며, 아픈 이들의 등을 토닥이는 작가의 손길은 거룩하다.

Evolution-미인도 45.5x33.4cm oil on canvas 2019

김규리의 ‘Evolution’ 연작의 인체회화에서는 비장미가 느껴진다.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아물 줄 모르는 상처로부터 뚝뚝 흘러내리는 선혈과도 같은 검붉은 빨강. 모두를 집어삼킬 듯 광폭하게 내려앉은 짙은 어둠을 뚫고 가냘프게 새어 나오는 한 줄기 희망의 빛과도 같은 하양. 

얼굴이 뭉개진 채, 혹은 목이 잘려나간 채 어딘가를 향해 황급히 달려가는 군상들. 렘브란트식의 어두운 배경 속에서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김규리의 인물들은 필경 상처받고 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춥고 배고픈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의 처참한 모습은 애써 이 고달픈 삶에 고상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인간의 몸짓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환기해주며, 죽음의 공포를 몰아온다.

카라의 축제 72.7x50.0cm oil on canvas 2020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최초로 강조한 미학자는 바로 플라톤(Platon)이다. 그는 저서 『국가론』 제10권에서 회화와 시의 모방적 활동을 “진리에서 떨어져 있고, 분별력이 없다”라는 이유로 비판하고, 예술의 모방적 활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피력했다. 

이상적인 국가를 꿈꿨던 그는 예술의 도덕적 유용성과 타락한 영혼의 고양을 강조하며, 예술가가 사회를 잘못 오도할까 염려한 나머지 심지어 예술가들을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김규리는 그의 기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예술의 사회적 책임에 공감하며, 자신의 작품을 통해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시한다.

매화의 본능 53.0x40.9cm oil on canvas 2020

그리고 뭉개고, 짓고 허무는 과정을 반복하며 작가의 치열한 존재론적 사유의 흔적을 축적한 ‘Evolution’ 연작은 부정적 계기로 한층 강화되고 고양된 특수한 아름다움을 성취하고 있다. 김규리의 비장미 넘치는 인체회화는 표리부동한 인간의 삶의 모순에 대하여 사유하고, 인생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의 ‘카타르시스’ 기능을 논하며 언급한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연민과 공포의 감정’이 김규리의 인체회화를 통해 경쾌한 정신적 회복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술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우리가 더는 그 무엇을 바랄 수 있으랴? 

초기 작품에서 짙게 드러나는 서양적인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갈무리하고, 이제 동양적인 정신세계와 기법과 소재에 천착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미술 작업을 개척해 가는 김규리가 한국인의 끝없는 저력을 바탕으로 무궁무진하게 발전해 대한민국의 예술적 국가 위상을 국제무대에서 한층 드높여주기를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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