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㉚] 이임춘 작가

Blue Shock(Blue Sun) 푸른 충격 (푸른 태양)

[환경일보] 나는 3대를 이어온 전통 대바구니를 만드는 명장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옛 시골에서는 오일장이 들어섰는데, 집안에서 만든 대바구니를 그 오일장에서 팔아야 생계유지가 됐다. 그래서 부모님의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익히게 된 전통 대바구니 공예, 그러나 그 일은 너무나 하기 싫었다. 점차 플라스틱 바구니가 등장하면서 그 일은 소멸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에게도 전통 대바구니는 뇌리에 각인만 되었을 뿐,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그러던 중 30년 전, 너무나 어렵고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때 갑자기 부친이 물려준 대바구니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반월형 대칼이 생각이 나서, 그 칼을 잡았다. 아니, 이렇게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 귀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내팽개친 붓을 잡았다. 마음속에 고요한 바람 소리가 들린다. 순간 들어선 생각, 내가 가야 할 길이 이 길인가?

그렇게 시작된 예술가의 삶. 처음에는 풍경화, 정물화, 추상화 등을 그렸다. 작업이 점차 진행될수록 나만의 독특한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어릴 때 배운 전통 대바구니가 생각이 났다.

“그래 맞아 우리의 전통을 현대미술화 시켜보자.”

캔버스 천에 응용된 우리의 대바구니 만드는 기법, 이것이 ‘테어링 아트’(Tearing Art)다. 수많은 실패와 난관에 부딪히며 완성한 테어링 아트. 수많은 해외 초대전을 하며 우리의 예술문화를 알렸다. 그렇게 현대미술 테어링 아트 작업을 하던 중 인공적인 물감으로 빛과 색을 표현하기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다 한들, 그것은 결국은 인공적 물감의 차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빛과 색이 없을까?”

의문을 가지던 중 생각난 것이 우리의 전통 속에 살아 숨 쉬는 자개였다. 그러나 기본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테어링 아트에 접목을 할 수 없었다. 수많은 실험과 반복된 실패로 결국은 성공을 했다. 옻칠을 하지 않고 물감을 칠한 위에 자개를 활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법을 ‘해무리 기법’이라 이름 지었다. 온고지신이라 했던가? 우리의 전통을 현대미술화한 테어링 아트와 해무리 기법, 앞으로 그 작업은 시나브로 진행될 것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Solar halo 해무리

낱낱이 손으로 맞들던 수작업의 프레임 안에 시각적 인지를 기반으로 창출되던 회화의 진득한 맛은 오랜 시간 예술가들의 주요 표현 방식으로서 가치와 위상을 지녀왔다. 하지만 사진기가 발명되고 예술에 대한 예술가의 태도가 변화하면서, 회화는 그 어느 때보다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현상에 적응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예술 형태에 관한 관심을 물체(object)에서 과정(process)으로 이동시켰으며, 물성을 개념으로 대체해 특유의 역동성·상호소통·변용을 통해 시간과 공간조차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옮겨졌다.

이것은 하나의 고착된 대상 또는 방식에 저항하고, 예술의 전통적인 관념마저 흩트려놓았다. 일부 회화의 세계로 흘러 들어간 이것의 한 지류는 매체와 접목된 회화 혹은 매체에 회화성이 반영된 예술을 낳았다. 여기서 잉태된 예술형식은 시각에 맺힌 잔상을 손으로 옮기던 회화 제작과정의 해체를 불러옴은 물론, 탈경계·탈구축·탈범주·탈장르라는 적자마저 출산했다. 그리고 이 지점에 작가 이임춘의 작업이 들어서 있다.

사실 모든 부분에서 도그마가 실종된 채 잡목림적 군락의 양태를 지닌 21.5세기에 이른 오늘날, 표현에 있어 예술가 각각의 프로세스는 동시대 미술의 스펙트럼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새로운 이미지를 시도·구현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회화 역시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잇는 가교역할에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심지어 더는 회화의 규칙에 포괄되지 않아도 무방한(형식적·미학적 범위의 확대를 비롯해 내용으로도 훨씬 더 리얼하거나 기교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달빛

흥미로운 건 작가 이임춘의 작업 역시 그 방위의 한 측면과 근거리에 놓인다는 점이다. 일단 ‘테어링 아트’(Tearing Art)는 전혀 생소한 형식을 담보로 당대 예술작품은 하나의 사물이거나 혹은 어떤 이미지의 완결을 넘어 개인적 시스템으로 구동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예술 소통방식에 대한 또 다른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판단해도 무리는 없다.

그렇다면 ‘테어링 아트’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먼저 형식면에서 볼 때 테어링 아트는 ‘Tear-ing’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찢어지다/ 찢어진’, ‘뜯기다/ 뜯긴’ 작업을 의미한다. 또는 구멍을 뚫어 무언가를 붕괴시키거나 거칠게 찢는 행위 자체도 포괄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그저 ‘찢어지다/ 찢어진’, ‘뜯기다/ 뜯긴’ 작업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엮다/ 엮기다’라는 또 하나의 현재형이 첨가된다. 다시 말해 전면과 후면에 색을 칠하고 다시 그 위에 그림을 그린 뒤 캔버스 천을 찢어 엮되, 예민하고 철저한 직감을 통한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가 기본 재료로 활용하는 패널과 캔버스이다. 두 재료는 본래 물질에 물질을 덧씌우는 용도 내지는 물질에 3차원의 형상 혹은 물성을 묘사하거나 표현하며 덮는 베이스에 국한되는 것이었으나, 이임춘은 물감을 엎지르고 떨어뜨리고 흘리는 방법으로 물감의 유동성·침투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하나의 입체조형 일부로 수용하고 있다. 마치 워싱턴파의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나, 컬러필드 페인팅(Color Field Painting)의 케네스 놀란드(Kenneth Noland) 등의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회화성 일부에 전통공예의 한 단면을 접목한 것처럼 다가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우리 눈에 보이듯 입체성과 율동성, 리듬감을 심어준다.

Goryeo Celadon Lotus Ja 고려청자

그렇다면 ‘테어링 아트’에 담긴 내용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이임춘은 대략 세 가지 관점을 내보인다. 우선 그의 작품은 ‘파괴의 창조’라는 극한의 대비를 보여준다. 캔버스를 ‘찢는’ 행위는 본래의 물성을 인위적으로 이탈시켜 전혀 다른 모습으로의 전이(파괴)라고 할 수 있으며, 창조란 이 파괴로부터 전이된 그 자체이자 전혀 다른 새로운 예술을 뜻한다. 따라서 그의 파괴의 창조란 파괴를 전제로 창조되는 것을 말하며, 창조는 파괴를 자양분으로 새롭게 변모한다.

또 하나는 이임춘의 테어링 아트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 삶의 방식이 투영돼 있다는 점이다. 그는 패널 위에 한국의 전통종이를 세 장 바르고, 캔버스 뒷면에 색을 칠하거나 종이를 붙인 뒤 자유롭게 페인팅을 한다. 여기서 바탕이 되는 건 ‘과거’이며, 캔버스를 뒤집었을 때 드러나는 부분은 ‘현재’이다. 그리고 이미지가 온전히 구현된 캔버스 앞면은 ‘미래’이다. 이임춘은 이 세 시공의 층위를 테어링 아트라는 명명 하에 묶어 내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찰해야 할 것은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들며 파괴와 창조-창조와 파괴를 오갈 수 있도록 한 동기이자 예술 자극의 매개가 된 건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이는 곧 삶에 관한 질문과 진배없다.

Black hole 블랙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임춘은 경찰직과 예술인이라는 두 개의 ‘틈/사이/틈새’에서 생활한다. 정해진 법과 규칙에 따른 삶이 있지만,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인으로서의 삶이 공존하고 있다. 테어링 아트의 발화는 그 두 개의 삶이 조우하는 지점에서 비롯된다. 경찰직을 수행하면서 보고 느낀 사회적 문제와 인간의 범죄 심리를 예술로 재창조하거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며 경험한 무의식의 세계를 예술로 녹여내기도 한다. 결국 이 둘은 이성 영역과 감성 영역의 문제요, 그 경계에서 자신만의 거푸집을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테어링 아트는 결국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예술적 가치에 도전하려는 작가의 오랜 변화적 태도에 기인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15년 전과는 달리 이젠 이임춘하면 테어링 아트를 떠올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업은 <블랙홀(Black Hole)> 연작이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운영하는 한 사이트에 <블랙홀> 작품에 대해 이런 글을 남긴 적 있다. “블랙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와 조직도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고 만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어 가면서도 또 다른 블랙홀을 형성한다. 사회와 조직 속에서 지위, 권력, 부, 명예, 재산을 빨아 당기고 그것을 누리고 싶어 한다.”

이에 따르면 현대사회가 지닌 다양한 부조리와 병폐, 정의로운 것과 부정한 것들, 멀고 먼 이상 대비 부유하는 숱한 욕망의 변주들, 그 틈에서 피어나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모든 것을 수축-팽창하며 흡수하는 것이 바로 <블랙홀>이다. 욕망을 탐하면서도 결핍과 부재를 느끼고 한없이 채워지길 바라지만, 그 결핍과 부재에 의해 또 다른 욕망을 꿈꾸는 우리 사회와 구성원인 개개인의 인격과 정체성, 자아와 초자아 등을 모두 흡수하는 추상적 천체가 블랙홀인 셈이다.

<블랙홀>로 대표되는 이임춘의 테어링 아트는 이러한 수직적 범주화와 양식화, 단선적 형식화에 이견을 제시하며 굴곡의 역사를 뚫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분에 우린 한 예술가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통해 현재를 기점으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시 말해 시간과 시간을 연결해주는 여러 차원의 통로를 목도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시공의 층위에서 빚은 파괴의 창조는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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