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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림의 기억과 마음의 풍경[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㊲] 안혜림 작가
안혜림 작가는 풍경에서 오는 인상과 감각적인 모티브를 그린다.

[환경일보] 안혜림 작가의 그림은 친근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그가 주로 그리는 대상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상이거나 해외를 여행하면서 인상에 담아뒀던 풍경들이다. 투명한 공기 속에 잔잔한 바다와 하늘, 흐드러진 꽃 사이로 근심 없이 웃고 있는 사람들···.

물론 세상이 그렇게 맑고 밟을 수만은 없겠지만, 안혜림의 그림 속 세상은 더없이 투명하고 넉넉하다. 사람이 눈으로 ‘보는세상’과 마음으로 ‘느끼는세상’은 다를 것이다. 작가는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풍경에서 오는 인상과 감각적인 모티브를 그린다.

안혜림은 그림을 즐길 줄 아는 작가다. 늘 연필과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일상의 풍경을 스케치한다. 연필이 없으면 볼펜도 좋고, 스케치북이 없으면 수첩 위에도 좋다. 실내와 야외, 자연과 도회, 풍경과 사람, 정물과 누드를 가리지 않는다.

원숙한 필치에 세련된 구성을 보여주는 그의 스케치는 오랫동안 쌓아 올린 내공을 짐작게 한다. 특히 속사로 그린 정물이나 인물에서 대상의 포인트와 전체적인 흐름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그러나 스케치나 드로잉을 정작 캔버스에 물감으로 옳길 때에는 또 다른 양상으로 그림이 전개된다. 그림을 그리는 그때그때의 감각과 느낌에 따라 밑그림의 구도도 달라지고 배치도 바뀐다. 스케치에서 드러내던 정교한 비례나 원근법이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색채가 거침없이 구사되면서 전혀 새로운 풍경을 탄생시킨다.

넌 명품정원 138x220cm 2014

흔히 직업작가든 아마추어작가든 물감을 함부로 쓰지 못한다. 물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캔버스 위에 나타날 결과가 아무래도 두렵기 때문이다. 안혜림은 색채를 구사하면서 주저함이 없다. 어떤 때는 물감을 캔버스에 먼저 발라놓고 색채를 확인한다. 색채가 형태를 떠나 자율성을 획득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힘도 활달한 필치와 거침없이 구사되는 분방한 색채에서 나온다. 항상 무언가를 끊임없이 드로잉하고, 또 그 표현에 있어 주저함이 없다는 것은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는 자질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회화에 있어 형태와 색채 중에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는 오랫동안 논쟁적인 문제였다. 이 문제는 객관성과 주관성의 문제에 결부되기도 하고, 이지적 경향과 감성적 성향의 문제와 연관돼 논의되기도 했다. 나아가 클래식과 바로크의 반복적 양식순환도 이와 전적으로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색채와 형태 중 어느 쪽에 우선을 두느냐는 작가의 기질에 따라, 또 특정한 미술 흐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여기서 어느 쪽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과거 미술사가들은 이를 ‘표현에의 충동’과 ‘조형에의 의지’라는 두 가지 성향으로 대비하기도, ‘디오니소스적 경향’과 ‘아폴로적 성향’으로 구분해 논의하기도 했다.

광안리민락동 65x50cm 2013

안혜림의 경우 형태와 색채는 화면의 형성과정에서 각각의 자율성을 지니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탁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 의미는 전체적인 화면구성에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면서도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활력이 넘치고, 개방적인 제스처(gesture) 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제스처란 작품과 관련된 일체의 행위나 동작, 태도를 뜻한다. 작가의 작품에서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힘 있고 그침 없는 필치이다.

어떤 때는 속도감 있는 일필로 단숨에 형상의 윤곽을 잡기도 하고, ‘툭툭’ 점을 찍어 색면과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이 정도의 자신감 있는 필치는 힘의 긴장과 배분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하므로 오랜 기간 수련을 거치지 않으면 힘들다. 아마 그 거침없는 스트로크는 오랜 기간 부지런히 연마한 드로잉을 통해 체득된 것일 것이다.

만선 30x60cm 2013

안혜림은 정식으로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특별한 사사를 받은 적도 없다고 한다. 단지 십수년이 넘도록 그저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그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에는 국내에서 관습화된 테크닉이나 특정한 양식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오히려 혼자서 그림을 그린 것이 더 자유로운 분방한 화풍을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안혜림의 작품은 무르익은 느낌을 주면서도 더없이 소박한 인상을 준다. 이런 양상은 특히 비례나 시점을 무시하고, 명암을 생략해 화면을 평면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정교함과 완숙함을 보여주는 작가의 스케치나 드로잉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측면은 어느 정도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작가의 그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관적 왜곡은 어떤 의도를 지녔다기보다 과거에 축적된 인상이나 즉흥적인 감응에 따라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다. 물론 작가의 작품도 기본적으로는 대상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인상과 감각을 재현하는 것이다.

나아가 좋은 작가는 자연의 모습에 자신의 감수성을 대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미감을 끌어낼 줄 안다. <송정의 쌍둥이 등대>나 <대변풍경>, <취리히 호수> 같은 작품을 보면 작가가 이미 자신만의 독자적인 양식을 갖추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앞으로 풍경에 머물지 않고, 인물이나 인체를 본격적으로 그려보고 싶다고 한다.

파라다이스X 110x146cm 2014

안혜림의 그림은 기억 속 풍경을 표현적으로 재구성해 재미있다. 이국적이면서도 동화적인 분위기를 지닌 이 작품은 미국에 체류했을 때 주변 풍경과 이곳저곳 여행에서의 풍물을 조합한 것이다. 야자수와 자동차 횡단보도, 돌고래 놀이기구와 자전거가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흥미롭게 재구성돼 있다. 작품에서는 시점이 무시되고 공간적 원근이 완전히 허물어진다. 어쩌면 이 작품은 앞으로 작가가 풍경을 지나 나아가게 될 작품의 한 방향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혜림은 풍경을 사랑하고 일상에 애착을 가지며 그림에 몰두해 왔다. 그 자유롭고 분방한 그림들도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태도와 작가의 낙관적인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의 작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모르지만, 그림에 대한 애정과 세상에 대한 넉넉한 태도가 더욱 흥미롭고 진지한 작품을 탄생시킬 것을 예감하게 한다.

안혜림 작가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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