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생겨나 원시 생태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희귀 고산습지인 ‘달포늪(가칭)’이 대규모 골프장과 휴양
지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더구나 골프장 허가 당시 환경영향평가보고서에는 달포늪 자체가 빠져 있
었던 것으로 확인돼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
다.
지난 18일 경남 양산시 원동면 대리와 어곡리 일대 신불산(해발 783m)의 정
상 능선에 오르자 중장비와 트럭들이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내리며 3~4m 높
이의 관목들을 잘라내 실어나르고 있었다. 신세계관광개발(주)에서 56만평
에 18홀의 규모 뉴월드골프장과 종합휴양지를 건설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
터 시작한 벌목과 도로공사가 거의 마무리단계에 이른 상태였다.
곳곳에 쌓여있는 잡목더미 사이로 드문드문 연분홍 진달래꽃이 피어있기
는 했지만 화사한 봄산의 정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골프장 공사장을 가로질러 산등성이 하나를 넘자 전혀 다른 정경이 눈 앞
에 펼쳐졌다. 아직 새순이 돋지 않아 앙상한 활엽수 관목과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원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달포늪이었다. 아직 봄이 오
지 않아 겨우내 말라버린 누런 풀들로 덮여 있었지만 누르면 되솟아오르
는 푹신푹신한 탄력과 배어나오는 물기, 두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쌓인
새카만 이탄층, 그 가운데 고여있는 물웅덩이, 물 위를 바삐 오가는 소금쟁
이들, 물 속에 숨어있는 가재류 등등 전형적인 늪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
다.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육안으로 보기에도 고속철도 노선 변경의 근
거가 되고 있는 인근 천성산의 화엄늪보다 넓은 것 같습니다. 이 정도 크기
의 늪이 근처에 최소한 2개는 더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지역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조사단에 의해 이뤄진 첫 현장답
사에 참가했던 밀양 녹색시민연대 조용화 의장은 당시 자주땅귀이개 끈끈
이주걱 등 식충식물과 잠자리난 등 다양한 희귀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인미답’의 신비에 싸여 있던 달포늪이 언론에 공개된 것은 지난해 8월
이었다. 인근 주민들의 얘기를 듣고 답사에 나선 끝에 늪을 발견한 양산 미
래환경연합 우대하 의장은 “옛부터 물이 많이 고여 보름달이 환히 비추
는 곳이었다는 주민들의 얘기를 듣고 ‘달포’란 이름을 붙였다”며 크고
작은 늪이 8개 퍼져 있는데 어떻게 환경영향평가 기관에서 발견하지 못했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998년 8월 개발업체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늪의
존재 자체는 물론 주변의 희귀 동·식물에 대한 언급도 거의 찾아볼 수 없
다.


현재까지 발견된 우리나라의 늪은 30여개 정도인데 식물과 유기체의 불완전
분해로 인해 쌓이는 이탄층의 두께와 물의 수위에 따라 고층 중층 저층
의 천이단계를 보인다. 이탄층이 2m 수준이고 물의 수위가 높은 대표적
인 고층습원인 대암산 용늪과 전형적인 저층습원인 창녕 우포늪은 환경부
에 의해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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