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생태계는 전염성 질환 전파 속도 조절
생태 접근성 높일 그린인프라 도입으로 친환경 일자리 창출

[세종=환경일보]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침체되면서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른바 뉴딜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자는 논의가 시작되면서 정부 부처별로 예산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환경부 역시 이른바 ‘그린뉴딜’을 내세우고 있지만 기존에 진행되던 사업을 ‘그린뉴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만 바꾼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알맹이가 빠진 상태의 그린뉴딜 논의가 ‘제2의 녹색성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의 정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이 대규모 개발사업을 통한 뉴딜이 아니라 그린뉴딜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바람길에 대한 연구에서도 국토연구원이 다른 연구기관에 비해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토연구원 강현수 원장은 “국토연구원이 환경부보다 그린뉴딜에 먼저 주목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들, EU의 그린뉴딜 입법화 사례를 통해 연구하고 있다”며 “일자리와 취약계층 복지가 연계돼야 좋은 사업이다. 그린뉴딜은 여기에 온실가스 저감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국토연구원은 6월30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한 국토 그린인프라 조성과 그린뉴딜 정책 방향 세미나를 개최했다. 발표자와 토론자로는 국토연구원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서울대 등을 포함해 국토부와 환경부, 언론계를 망라해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

국토연구원 강현수 원장은 “일자리와 취약계층 복지가 연계돼야 좋은 사업이다. 그린뉴딜은 여기에 온실가스 저감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김경태 기자>

코로나의 역설 ‘그린뉴딜’

국토연구원 박종순 연구위원은 코로나19가 역설적으로 그린인프라의 필요성을 일깨웠다고 지적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환경이 세계적인 팬데믹을 촉발시킨 원인이라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코로나19를 포함한 인수공통전염병 발생 및 전파의 5가지 요인을 꼽았다. 먼저 비공간적 요인 2가지로 ▷인구학적 변화로 인한 인구의 노령화 및 이에 따른 면역력저하 환자 증가 ▷국제교역 및 여행 증가로 검역단계 차단 실패로 인한 전파를 지목했다.

아울러 공간적 요인 3가지로는 ▷도시화로 인한 인구밀도 증가가 불러온 감염병 확산 가능성 증가 ▷산업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동물 접촉)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모기의 서식 기간과 범위 증가와 같은 질병 매개체 확산)를 지목했다.

따라서 감염병 극복 역시 그린인프라와 관계가 깊다. 박 연구위원은 “온전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생태계는 전염성 질환의 전파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녹지의 파편화가 도심 내 모기의 종 다양성 감소를 촉진하고 도시 적응력이 약한 야생종들은 멸종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미국 환경청은 홍수가 병원균을 옮겨 A형 간염과 위장질환 발생 빈도를 증가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폭우로 인한 홍수와 그로 인한 오염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빗물정원 조성을 권장하고 있다.

권 연구위원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자연공간의 보존 ▷다기능 그린인프라(방재공원, 선형공언 등) 구축 ▷바람길 도입 등을 제시했다.

특히 방재공원은 평상시에는 캠핑장, 레저‧휴양공간으로 활용하다 재난이 발생하면 방재공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지진‧홍수 등이 발생하면 피난처로 이용하고, 전염병 발생 시에는 선별진료소, 생활치료센터 등을 건립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방재공원 도입 논의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재난을 산불이나 지진 등으로 한정 짓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난의 개념을 전염병이나 폭염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

홍콩이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이후 관심을 갖고 도입하기 시작한 바람길 역시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도시 내 건축물 배치와 고도를 조절해 바람길을 조성하면 병원소를 자연환경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국토 법제에서 바람길에 대한 내용이 한정적이고 세부 규정이 없어 실제로 반영하기 어려우며, 환경 법제에서도 기후현황 지도, 바람 통로 등을 고려하기는 하지만 공간적 범위를 제시하지 않아 논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한 극토 그린인프라 조성과 그린뉴딜 정책 방향 세미나가 6월30일 국토연구원에서 열렸다. <사진=김경태 기자>

맞춤형 다기능 그린인프라 필요

서울대 이동근 교수는 “수요자와 공간에 따라 맞춤형 그린인프라 설정과 함께 정량적 평가를 활용한 과학에 기반을 둔 기술, 사용자 체감을 고려한 다기능 그린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공간의 최적화를 통한 의사결정이다. 하나의 공간에 요구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다양한 부문의 기후변화 영향은 하나의 공간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물 분야에서는 수질오염, 수생태, 도시홍수, 수자원 안정성, 유출량 ▷사회경제적으로는 미세먼지, 대기오염, 신종감염병 ▷탄소 측면에서는 탄소흡수원, 완화를 통한 넷-제로 ▷열 측면에서는 도시열섬, 열대야, 온열질환, 폭염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개별 기능의 통합적 효과가 드러날 수 있도록 공간 맞춤형 그린인프라 구축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김충기 박사는 그린인프라 구축 모델로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생태도시’를 제안했다. 

그는 “인간은 자연환경 속에 있을 때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며 “도시 및 생활공간에서 자연과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그린인프라의 적극적 도입으로 친환경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민의 행복지수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그린인프라 의사결정 과정은 환경-사회 및 경제-인간복지를 동시에 고려한 과학적 의사결정지원 시스템을 활용한 관리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며 “시민, 지역사회단체,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참신한 사업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상향식(Bottom-up) 방식의 사업발굴 및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공원'으로 지정됐던 사유지에 대한 규제가 7월1일 자로 풀렸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들이 재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녹지가 사라질 지 우려된다.

생태적 가치 빠진 그린뉴딜

발표에 이어진 토론에서 환경부 김은경 국토환경정책과장은 “국토연구원의 그린뉴딜TF 발족은 매우 반갑고 놀랍다. 환경부 역시 통합허가 측면에서 지자체 차원의 녹지 조성 등을 고민하고 있다”며 “그린인프라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요즘 EU(유럽연합)에서는 그린인프라에서, 그린인프라를 포함한 개념인 지속가능한 인프라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산림청 김주열 도시숲경관과장은 “7월1일부터 실효되는 9000㏊ 면적 중 6000㏊가 산림청 소관이며, 도시공원 일몰 유예기간에도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투자할 계획”이라며 “지자체가 예산이 부족하다면 산림청이 나서겠다. 여러 사업을 통해 일자리 9000개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이근화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이 조기에 차단된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섬나라들이다. 바람길이나 섬 지형이 감염병 확산 차단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이창훈 박사는 “탄소중립도 중요하지만 생물다양성과 생태계가 중요한 요소다. EU 같은 경우 그린뉴딜을 ‘기후 및 환경위기에 대응한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그린뉴딜 논의에서는 생태가 빠졌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는 환경부와 국토부가 그린뉴딜을 논의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기재부를 넘어 국회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이들에게 생태적 중요성을 설득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생태용량을 플러스시키는 전환적인 관점에서 그린뉴딜이 필요하다는 점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일보 김익수 편집대표는 “그린인프라는 코로나와 상관없이 지향해야 할 공통의 과제”라며 “전체적인 그림이 나온 상태에서 그린인프라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총괄하는 부처가 필요한 것인지, 지금처럼 부처별로 추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생태적 가치에 대한 금전적 가치에 대한 연구가 여전히 부족하다. 환경경제학에서 환경의 금전적 가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런 측면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환경을 보전하는 것이 미래에 금전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그린뉴딜의 가치 조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3명의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그러나 그린뉴딜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세미나였다.

이명박 정부 당시 거의 모든 사업이 이름만 바꾼 ‘녹색성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오던 촌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린뉴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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