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



▣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백제후기의 작품으로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띄고 있어 당시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다.
또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달라지며 빛과의 조화에 의하여 진가를 보이도록한 백제인의 슬기가 놀랍다.

중앙에 본존인 석가여래입상, 좌측에 보살입상, 우측에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석가여래입상은 머리뒤의 보주형 광배와 미간의 백호공,
초생달 같은 눈썹, 미소짓는 입술로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두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양팔에 걸쳐 평행호선으로 길게 주름져
있어 입체감을 느끼게 하며 생동감을 준다.

▣ 보원사지



마애삼존불상에서 약1km의
거리에 위치한 보원사지는 사적 제 316호로 고려초에 창건한 사찰로서 고승 법인국사가 수도한 곳이다. 이곳에 현존하는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상당히 성세했던 사찰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려초 불교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가치가 높다. 백제계의 양식기반
위에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초기의 석탑양식을 고루 갖춘 5층석탑과 통돌을 장방형으로 만든 석조, 고려 경종3년(978)에 법인국사의
제자들이 그의 사리를 안치하기 위하여 만든 보승탑이 있다. 또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보승비와 큰 불교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행사기를 달 때 필요한 당간지주를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해미면 읍내리에
소재한 사적 제 116호의 성으로 성곽 길이 1.800m, 성곽높이 5m, 면적 60,000평으로 조선 선종 22년(1491)에
축성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평지에 축성한 석성으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성이다.

성벽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하여 탱자성이라고도 불렀으나 현재는 대부분 없어지고 진남문에서 관아문에 이르는
진입도로 주변에만 탱자나무가 있을 뿐이다.

당초 읍성내에는 학교, 면사무소 등의 관공서와 민가가 많이 있었으나 정비 복원사업 추진을 위하여 모두 철거되고 현재는 관아문과
동헌 등이 있다.

이 읍성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하였고 다산 정약용선생께서 정조대왕 당시 잠시 유배된
곳이기도 하며 천주교 박해 80년간에 1천명의 순교자가 처형된 성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박해 흔적으로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충청도의 각 고을에서 잡혀온 천주교도들을 읍성 내 감옥에 수감하였다가 고문을 가했다는
6백 여년 된 회화나무가 옛 옥사 터가 있던 곳에 상처 흔적을 남긴 채 홀로 서 있다.

또한 천주교도들을 서문 밖의 돌다리에서 자리개질을 시켜서 처형하였는데 많은 천주교도들을 처형하기 힘들자 해미천에 큰 구덩이를
파고 모두 생매장 하였다한다.

해미천 옆에는 천주교 박해당시 생매장 당한 무명 순교자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16m의 순교탑이 있다. 한편 순교탑 앞을
여숫골이라 부르는데 이는 앞서 예수마리아를 부르며 기도하는 소리를 여수머리로 알아들은 주민들이 이를 여숫골이라고 불러 붙여진
이름이다. 해미읍성은 천주교 박해 유적지로 해마다 수 만명의 천주교 교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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