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성장 및 전기요금 정상화, 선택은 정부‧국회 몫
조삼모사식 에너지 정책, 요금부담 책임은 미래 국민에게

에너지전환포럼은 24일 오호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기요금 정상화, 이행 방안과 과제’를 주제로 전문가토론회를 개최했다.

[환경일보] 김봉운 기자 =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20년이 넘는 세월 ‘누진제’를 제외하면 변동이 없었다. 에너지 사용료의 이해와 공감대가 절실한 시기지만 매월 가계 부담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사용료 인상은 소비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전기는 국가 경제 기본 요소로 전기요금은 국민 생활과 직결된다. 국가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전기요금의 규제는 신뢰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산정돼야 한다. 하지만 전기요금의 과도한 정치화는 지속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에너지전환포럼은 24일 오호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기요금 정상화, 이행 방안과 과제’를 주제로 전문가토론회를 개최했다.

전기요금 ‘연동제’로 제도 변화 필요

김영산 한양대 교수는 '전기요금 정상화 방안과 과제'를 주제로 기조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현행 전기요금 제도는 비용 변화를 적절한 시기에 반영하지 못하고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에너지 정책은 정부와 공기업을 중심으로 정책목표 달성을 견인하는 데 중점을 뒀으며 전통적인 규제로 안정적인 에너지공급을 우선시했다. 안정적 공급을에 중점을 둔 정치권과 정부는 지난 20년간 지켜온 에너지 수요‧공급 체계 변화가 가져올 직접적인 영향을 두려워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공급한다. 대규모 설비를 통한 독점적인 에너지 공급은 소비자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유지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선 석탄화력 등 값싼 에너지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후위기시대에 역행하는 에너지 생산방식은 기후변화, 미세먼지 등 국민 안전에 더 큰 위협으로 돌아온다.

정부가 주도하는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은 요금 인상과 에너지전환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에너지전환을 위해서 수요와 공급 부분에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 에너지 수요가 강조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에너지 공급 및 소비 주체의 자발적인 유인체계를 조성하는 데 한계가 있고 결국 투자 대비 성과 측면에서도 비효율성이 초래된다.

총괄원가 원칙 기반 전력 요금 추이 <자료제공=에너지전환포럼>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전문가들은 연료비가 올라가면 전기요금도 올리고, 연료비가 내려가면 전기요금도 낮추는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 또한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면 비용 변동에 대한 요금 경직성을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서 "탄소배출권 등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환경비용도 연료비로 보고 전기요금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주요국 전기요금 인상, 이상적인 방향으로 전환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된 다른 국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한다. 또 기업의 전기생산성은 절반 이하 수준이다. 전기를 필요로 하는 누구도 직접 전기를 생산하지 않는 특이한 구조로 소비만 진행되고 있다.

이에 김영산 교수는 “전기는 특성과 기술적인 면에서 과거와 다르게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도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EU와 일본은 소매(전력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 부문 혁신을 통해 성공적인 에너지사용료 전환 정책을 소개했다.

소매부문 혁신 개방한 일본 그래프 <자료제공=에너지전환포럼>

일본의 경우 전력 소매 부문을 개방하면서 신규 판매사가 2016년 291곳에서 2020년 654곳으로 급증했다. 2016년 168개였던 자유 요금제 종류는 2018년 9월 1319개까지 늘었다. 개방 후 신규 판매사 요금은 기존 규제 요금보다 저렴했다.

또한, 호주도 전기요금을 과감하게 인상해 전력문제를 해결하고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성장 동력을 창출했다. 과거 호주는 전체 전력의 90% 이상을 석탄 화력으로 생산했다. 하지만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50~70% 인상하고 또, 매년 30% 인상하면서 변화를 가져왔다.

연평균 증가하는 전력수요가 감소했다. 아울러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가 이뤄지면서 전력시장을 민간에 개방했고 이에 새로운 일자리와 고효율 설비 그리고 혁신적인 에너지 기술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했다.

다양한 전력요금제는 소비자 수요에 따라 차별화된 전력상품이 개발 공급되면서 효율성과 선택권에서 이전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해외 여러 나라에서 증명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사례는 국내 에너지 전환‧도입에 시행착오를 줄여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전기요금의 탈(脫)정치화, 늦어지면 국민 부담 증가

이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전기요금의 정치화’에 우려를 표시했다. 에너지 사용료의 정치화를 방지하기 위해선 요금 결정과정에 정치화와 정책이 지나치게 개입되는 부분을 방지해야 한다. 또, 전기위원회 권한 강화 또는 독립적인 위원회 설립 등의 추진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최근 전기요금 특례할인 폐지 등 현안을 두고 정치권과 한전이 갈등을 빚는 모습이 자주 발생된다. 이는 전기요금 결정방식에 표심을 우려한 정치적 계산이 개입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의 일부분이다.

전기요금 결정 과정 <자료제공=에너지전환포럼>

이날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격변동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만든다. 하지만 현재 국내 전력시장의 요금은 재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벌이는 갑론을박은 교통 신호등이 고장 나 흐름에 문제가 생긴 혼잡한 도로상황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전기요금은 정치적 결정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공식적인 전기요금 결정 방식은 총괄 원가 원칙이다. 실제 정치적 고려에 따라 결정돼 대부분 총괄 원가보다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이마저도 매우 경직돼 있어 최근 누진제 완화를 제외하면 요금 변화가 거의 없어 비용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이 연구원은 현재 주도권이 정부에 있는 부분을 비판하면서 “전기요금의 조정에 대한 최종 결정은 정치적 의사와 무관하게 독립적인 규제 기관에서 이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주도 가격결정체계와 시장구조 아래에서는 에너지 시장의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른 새로운 사업의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현재 우리나라는 다양한 기술과 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과도하게 규제된 전기요금과 시장구조는 발전에 악영향을 준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가격기능을 정상화하려는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기존 전력 운영 시스템과 전기요금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기술과 사업모델을 발굴해 변화를 모색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은 전력수급이나 한전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다. 전기요금 정상화는 시장의 원활한 수요‧공급과 이를 바탕으로 질 높은 서비스 제공하고 나아가 기후위기 대응에 더 큰 이득이 있다.

에너지전환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폭탄 돌리기 정책에 선을 그어야 한다. 전기요금 정상화라는 과제가 요금을 납부하는 소비자와 공감대 형성에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늦춰지는 시기만큼 향후 소비자의 가계 부담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지정 토론 <사진=김봉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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