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개정안 입법예고에 피해자들 “여전히 정부는 책임 회피” 반발

지난 8월28일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에 대한 온라인 간담회가 진행됐다. <사진=최용구 기자>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피해신고만 7000여명에 인과관계를 인정받은 구제급여 대상은 약 950명, 제조사 관계자 구속, 그리고 지난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제정과 이후 개정까지. 그동안의 기록이다. 

‘말도 많고 논란도 많았던’ 이 사건의 피해구제를 위한 정부의 구체적 계획이 최근 나왔다. 올해 3월 개정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의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이다. 

이 내용을 두고 정부는 “법제도 틀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구제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자평했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정부는 너희가 알아서 피해를 입증하라는 식”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오는 9월25일 이것의 시행을 앞두고 온라인으로 열린 지난 28일 간담회에서 보인 특별법 개정안의 한계와 피해자들의 주장을 짚어봤다.

정부의 책임 인정은 언제쯤

“아직도 정부는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입법예고안의 유족조위금 1억원은 터무니없다”, “본 사건은 전형적 대형 재난이다. 특정 개인의 일로 보면 안된다”, “애당초 피해 판정 기준부터 환경노출조사 등의 과정이 엉터리였다”, “피해 인정 심사의 대상 질환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라”.

입법예고안에 대한 피해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환경부는 앞서 사망자 유족에게 지급되는 특별유족조위금을 1억원으로 상향하고, 피해지원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연장 및 개별심사 중심의 ‘조사판정체계 간소화’ 등의 내용을 담은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의 하위법령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대해 기존의 엄격했던 피해 평가 부분이 포괄적으로 변했으며, 상관관계 정도만 입증하면 인과관계가 추정될 수 있도록 완화해 신속한 절차가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상당수 피해자들이 지원 만료가 다가오는 점을 감안,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함으로써 갱신에 대한 우려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홍정기 환경부차관(가운데)이 28일 오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간담회에 참석하여 재입법 예고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 수정안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피해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환경부>

그러나 이에 대한 피해자들의 시각은 180도 다르다. 무엇보다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지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느 곳 하나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피해자 A씨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제품 출시 전 국가가 그 안정성과 유해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결과”라며 “피해를 호소하는 규모만 7000여명인 대형 재난임을 감안할 때 조위금 1억원은 터무니 없다”고 주장했다.

병상에서 모습을 보인 피해자 B씨는 “누차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을 강조해왔고, 지난 2017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았나”라며 “이번 하위법령을 보면, 말뿐인 정부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고 하소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기인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공식 사과와 함께 지원확대와 재발방치책 마련을 약속한 바 있다. 3년여가 지난 지금, 실망한 피해자들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정부에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하는 배경이다. 

특별유족조위금으로 1억원이 책정된 데 대해 정부의 설명은 이렇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의 성격이 사업자가 피해를 배상토록 하고 있기에, 조위금의 경우 손액배상의 관점과 맞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금액이 반드시 배상의 수준이어야 할 원칙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법률과의 정합성을 고려해야 했으며, 유사 법률(석면피해구제법)과 비교해 책정된 액수라는 게 정부의 답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집권 초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공식 사과하고 지원확대와 재발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사진제공=청와대>

‘피해 인정 질환’ 빠진 모호한 정부 대책 

조사판정체계에 대해 내놓은 대안은 어떨까. 핵심인 피해 인정을 위한 ‘심사 대상 질환의 명확한 기준’이 빠졌다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실제 이번 입법예고안을 보면 개인별 의무기록과 병력 등을 보는 ‘개별심사과정’을 중심으로 피해 판정을 하도록 신속성을 더했으며, 이걸 어떻게 피해 인정 범위의 확대로 연결시킬지가 중요하다는 게 전부다. 

어떤 질환을 피해 인정의 범위로 심사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내용은 없다. 피해 인정 질환의 종류 역시 전과 동일하다. 

이는 현재 법 시행령 제17조 1항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인정기준’에 명시된 폐질환과 태아피해 등으로, 여전히 범위는 한정된 상태다.   

정부가 구체책을 꺼냈지만 본인이 앓는 질환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로 인정될 것인지조차 아직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피해 판정 심사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는 “정부가 그동안 역학적 상관관계 입증에 관한 연구를 했음에도 이번에 심사대상 질환에 대한 언급이 없는게 말이 되는가”라며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는, 직접 입증하라는 태도에서 변함이 없다”고 비판했다.

물론 정부와 제도권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이번 입법예고안 이외에도 보완할 점이 많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조준성 국립중앙의료원 교수는 “의무기록만으로 피해에 대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인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에, ‘심층적인 면담’과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조 교수는 “폐질환 등의 기저질환이 있었던 경우 가습기세정제로 인해 악화됐는지 여부와, 기저질환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장기적인 영향에 의해 폐, 피부, 눈, 당뇨병 등의 대사성 질환이 나왔을 때, 이를 가습기세정제 피해 기여도와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는지 등은 현재의 개정안으로는 다 포괄 못한다”라며 “꾸준히 검사받도록 지속적인 행정의 협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수진 국립환경과학원 센터장은 “피해자가 직접 확인이 어려웠던 과거 10년 이상 경과된 자료까지도 자체적으로 확보가 가능토록 시스템이 구축된 상태”라며 “피해자의 수고를 줄일 수 있고, 병원이 없어져 자료 확인이 안 되는 애로사항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전문가들의 시각을 피해자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결국 문제의 해결은, 소송에서 피해자가 승소해 기업들의 피해구제를 위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 끝난다.

이를 위해 피해자가 원고의 입장에서 가습기살균제의 피해를 책임지고 증명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이 소송 준비를 위한 사실상 ‘행정적 구제’의 역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법상의 ‘제5조 인과관계 추정’에 피해 인증을 못 받은 대상들이다. 

막막한 소송전 

이들은 소송에 나설 경우 정부 기준으로부터 인과성을 입증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어려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이번 개정안을 통해 개별심사과정에서 피해자가 작성한 의견진술을 실제 소송에서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입장이다. 아직 법적으로 정식 피해 입증을 못받은 상당수는 국가가 본인들을 기만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자료에 따르면 총 6823명(지난 7월31일 기준)의 피해신고자 가운데, 불인정 됐다는 이유로 아무런 지원도 못받고 있는 이들은 3203명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국가가 책임이 있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에 대응할 실질적이고 폭넓은 지원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는 이를 법원의 역할이라며 회피하고 있다. 지난 온라인 간담회에서도 환경부 관계자는 “법적 책임 인증의 주체는 정부가 될 수 없고, 법원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현실에 거대 기업을 상대로 소송에 나서야 하는 피해자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간담회의 한 피해자는 “예를 들어 간질성 폐질환은 특성상 다양한 패턴이 있는데, 각각에 대한 역학조사를 하면 표본이 적기 때문에 살균제 피해와 관련성이 떨어지게 나올 수 있다”며 “이 점을 소송에서 가해기업들이 물고 늘어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피해신청자 6823명 중 2946명을 피해자로 인정했으며, 개정법 시행(2020.9.25) 이후 포괄적 피해인정으로 피해 미인정자에 대해서도 적극 구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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