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이라고 하면 공자가 말하길, 중이라는 것은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어지지도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고 용은 “평상의 뜻이다”라고 했다. 요즘 들어 중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가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핵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들, 탄핵정국으로 나라는 혼란하고 국민들의 성숙한 시위문화를 놓고 어느 특정정당을 밀어주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당략을 내세우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2004년 새해 벽두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출발을 해고자 각자 나름의 소망과 꿈을 품고 기나긴 마라톤 출발선 상에 섰을 텐데 출발 초반부터 힘이 없으니 무엇 때문인지...
얇은 귀를 가지고 있는 정치인과는 달리 정책을 수반하고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환경관련공무원의 경우 더욱 중용의 의미가 열실히 필요하다.
이를테면 환경부 장관은 잘못하면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동강댐 건설, 새만금 사업,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 등이 그렇다. 이미 돈을 들이고 정부가 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반대하려니 청와대와 관계 부처의 눈치가 보이고, ‘강행해야 된다’라고 말하려니 환경 단체로부터 질타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환경 정책은 갈지자를 그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일에 대한 소신과 전문적인 식견이 있다면 환경사업에 대해 가부가 아닌 무엇인가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환경에 대해 이해도 못하고 사업의 지속성을 논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책임자의 소신과 전문성이 더욱 더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더욱 복잡 다양화되고 있는 환경관련 오염요소 및 관계 법령에 대한 시정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 굳건한 구심점이 필요한 때이다.
특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닌 올곧게 자라나는 대나무와 같이 대쪽 같은 심성으로 백년대계 환경사업을 올바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중용이 책임자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류 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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