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불방지에 이처럼 역점을 두는 것은 매년 청명(4월4일)과 한식(4월5일)을 전후로 산불이 빈발한데다 특히 총선이 있는 해에는 공무원의 행정력이 분산되고 사회분위기가 이완돼 대형 산불이 잦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16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2000년에는 총선 직전 동해안 산불 등 729건이 발생해 2만5953㏊의 피해를 냈다. 이는 2003년과 비교할 때 건수로 3배,피해면적은 무려 200배에 이르는 것이다.
또 1996년 선거 때도 고성산불을 비롯해 729건이 발생하여 총 2만5607㏊의 피해가 발생했다.
올 들어 지난 석달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만 해도 220여건에 이른다. 산불에 의한 물질적, 정신적, 시간적 피해도 막대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피해가 있다. 대개 산간지역에는 오래된 사찰이 있어서 불이 나면 소중한 문화유산이 모두 타서 없어질 우려가 있다. 도시인에게는 남의 일같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나 활력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을 생각하면 산불은 최대한 예방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의 대책을 세워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피해를 입고, 예산을 투자하여도 산불 피해가 매년 반복된다면 대처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응급처치식, 사후복구식의 처방보다는 산불의 원인을 파악하여 조금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고 그에 따른 적절한 예산을 배정하여야 한다. 재해방지를 위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불은 조그만 불씨로부터 시작한다. 화재초기에 불을 끄면 큰 불을 방지할 수 있다. 이 때에는 많은 물이 없어도 된다. 다만 그 근처에 물이 있어야 하고, 불을 끌 사람이 필요하고 빠른 시간 내에 불을 잡아야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산간지역에 이러한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생각을 바꾸어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산의 군데군데에 크고 작은 빗물탱크를 묻어 두는 것이다. 여름에 내리는 빗물로 채워서, 그 다음해의 봄까지 빗물을 모아두는 것이다. 관리만 잘하면 수질에는 문제가 없다. 각 탱크내에 항상 일정양의 물이 있는 것을 원격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어느 지역에 불이 났을 때 쓸 수 있는 빗물의 양을 파악하고 그 근처에서 물을 쉽게 공급할 수 방법도 빨리 판단할 수 있다.
부가적인 이득으로 여름에 빗물저장탱크를 채우고, 비우고 하는 관리를 잘하면 홍수 방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약간의 문제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공학이나 과학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구더기가 무서워도 여러 해 장을 담가보면 문제없이 장을 담글 수 있는 것처럼... 다만 중요한 것은 전문가에게 이 일을 맡겨야 한다.
어떻게 보면 소설 같지만 얼마든지 현실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빗물관리를 한 사례가 있고, 필요성이 있으며, 그리고 IT 기술이 발달되어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어느 지역의 빗물 통에 물이 얼마나 있는지, 어떻게 관리하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올해 배정된 산불 및 홍수관련 예산의 1%만 들여서 이러한 관리시스템을 구축하자.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시설 설치를 하자. 그러면 앞으로 수십년 동안은 산불과 홍수 걱정을 덜게 될 것이다.
좋은 점은 또 있다. 여러 곳에 설치된 빗물탱크를 전담해서 관리할 사람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고, 빗물저장시스템에 대한 제품이나 시설설치를 위한 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산불방지의 노하우는 외국에도 수출할 수 있다. 생각만 바꾸어먹으면 얼마든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정책의 방향을 잘만 잡으면 일선 공무원들이나 군인들이 애꿎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에 창조적인 일을 구상하기 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하자. 재해복구비로 들어갈 비용을 아껴서 사회의 다른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도록 하자. 생각만 바꾸어 먹고, 하늘이 주신 선물인 비를 잘만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한무영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UNEP-서울대 빗물연구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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