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역할 못한 토양환경보전법 25년...제도적 역할 한계, 관리 허점
별도 국 단위 조직 없이 정부선 찬밥, 토양환경평가 의무화 필요

지난 9월23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54차 환경리더스포럼'에서 토양환경보전법을 주제로 논의가 진행됐다. <사진출처=한국환경한림원>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토양오염으로 인한 국민건강 및 환경상의 위해를 예방하고,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등 토양을 적정하게 관리·보전함으로써 토양생태계를 보전하고 자원으로서의 토양가치를 높이며,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한다’. 

토양환경보전법이 시행된 지 25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업계에선 숱한 보완점들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토양환경평가제도 의무화’부터 ‘정기검사 대상 확대’, ‘R&D 투자 활성화’, ‘깜깜이 반출처리 구조 개선’ 등 과제도 다양하다. 정부에서도 지난 7월 개정안을 내놔 오는 10월15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반입정화시설에 대해 관할 소재지에 토양정화업을 등록하게끔 하는 내용으로, 지자체가 시설 입지의 적정성부터 사후관리까지 직접 보도록 해 관리상 한계점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제 역할 못한 토양환경보전법

과거 1995년 제정된 토양환경보전법은 이듬해 1월6일부터 시행됐다. 토양오염에 대한 국내 첫 제도적 근거로 일본의 ‘논용지토양오염방지법(1972)’, 미국 ‘슈퍼펀드(Superfund, 1980)법’보다는 출발이 늦었다. 

토양의 기능은 다양하다. 탄소순환부터 오염물질 정화, 수자원 및 영양분의 순환, 생물들의 서식처로서까지 삶에 절대적이다. 보다 촘촘한 관리를 위해 법 제정 후 6차례 개정이 이어졌던 것도 이러한 중요성에서다.  

그렇다면 토양환경보전법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못하다. 주유소 부지, 미군 반환기지, 서초동 정보사 부지, 최근 증가세인 택지개발 지구 등의 오염 사례는 부족한 관리 실태를 여실히 드러낸다.

“철저히 추적해서 검사하고 확진되면 치료로 이어지는 코로나19 대응처럼, 토양에도 비슷한 시스템의 적용이 필요하다.” 백영만 (재)환경보건기술연구원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토양오염은 물과 대기 상태와는 다르게 육안 파악이 힘들다. 관리대상에 대한 정기적 검사보다는 개발 과정의 굴착에서 발견되는 건수가 더 많은 이유다. 따라서 주유소 위주로 한정된 지금의 토양오염물 관리대상 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백 원장은 “오염이 우려되는 택지개발 현장 등도 토양오염물 관리대상 시설에 넣어서, 좀 더 포괄적인 사전 관리가 돼야 한다”라며 “자발적으로 하도록 돼있는 토양환경평가도 의무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 토양환경보전법 제10조의 2에는 ‘토양오염의 우려가 있는 토지에 대해 평가기관으로부터 토양환경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즉, 토지거래 시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인 것이다. 

‘토양환경평가 의무화’ 가능할까

그러나 강제성 부여를 위한 법적 적용까지는 그리 간단치 않다. 위반시 ‘과태료 부과’나 ‘형사처벌’ 또는 ‘영업정지’ 등을 고려함에 있어, 그 ‘실효성’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윤정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몇 가지 우려를 제기했다. 먼저, 형사처벌과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넣었을 시의 상황이다.

김 변호사는 “형사처벌로까지 이어지는 데는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굉장한 저항이 있을 수 있다”라면서 “다만 토양오염이 심각해 이웃의 토지나 지하수를 심하게 오염시켰거나,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경우 등은 도입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적절한 정도의 제재 수단인지 신중히 봐야 한다는 거다. 

토양환경평가 의무화를 두고 그 방향성은 맞으나, 도입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사진=최용구 기자>

과태료 부과 또한 살펴볼 문제다. 토양환경평가 소요 비용이 과태료를 훨씬 웃돌기 때문이다. 벌금을 내면서라도 회피할 수 있단 얘기다. 

김 변호사는 이점에 대해 “일반적으로 300만원, 500만원, 1000만원 선에서 정해지는 과태료 기준 대비 토양환경평가 소요 비용은 5000만~6000만원가량 소요된다”면서 “평가 기간 토지를 이용 못하는 것을 의식해, 과태료를 내면서라도 의도적으로 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질적 문제인 ‘반출정화 처리의 불투명성’도 손볼 과제다.

토양오염이 발생한 그 자리에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오염토를 외부로 반출해 밖에 있는 반입정화시설로 가져가 처리하는 과정이 ‘깜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을 검증할 전문기관의 역할 강화와 함께, 반입정화시설 기준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백 원장은 “가령 A현장에서 들어온 토양은 불소를 초과한 경우고 B현장에서 들어온 토양은 비소를 초과한 경우인데, 그 두 토양을 외부에서 섞어 처리해 버릴 수도 있는 일”이라면서 “현재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면밀히 감시하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반입정화시설로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추적 감시체계와 더불어, 법적으로는 오염발생자와 정화처리업자를 공동으로 책임지게 할 양벌규정 도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출정화처리 과정의 투명성 보장에 대해선, 실제 그 업을 수행하는 토양정화처리 업계에서도 자구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변화가 시급하다는 의미다.

허점 수두룩한 반출정화처리 

이종열 아름다운환경건설(주) 대표이사는 “도시개발의 증가로 반출 처리가 늘고 있는 상황임에도 시설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라 인정하면서 “업계 자체의 자구적 대안이 중요하고, 모범시설에 대해선 정부가 인증을 부여해 시설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도 한 방법”이라는 의견을 냈다. 

법조계에선 반출정화 허용 기준이 되는 ‘오염토양 반출정화대상’에 관한 환경부 고시상의 몇 가지 모호한 기준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법적인 쟁점으로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고시 제3조 1호에 따르면 ‘도시지역 건설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경우’는 반출정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사전에 오염을 알고 있었음에도 착공했을 경우다.

김 변호사는 “건설 공사전 이미 오염을 인지했으나, 토양오염조사를 하지 않고 공사에 들어가 나중에 발견된 상황까지 가능하다고 봐야 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요약하면, 토양정화 시공업체들의 자구적 노력뿐만 아니라 법적인 허점도 살펴야 할 상황이라는 얘기다.   

R&D 활성화 역시 놓쳐선 안 될 부분이다. 토양오염 관리가 철저해지려면 관련 산업의 육성도 뒤따라야 한다. R&D 산업은 바로 이 부분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초라하다.

환경부 ‘토양·지하수 분야 R&D사업 추진현황’을 보면, 현재 진행 중인 토양오염 관련 과제는 고작 1건(지중환경오염위해관리기술개발사업, 2018~2024)에 그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관련 산업의 수출에도 영향을 끼친다. 환경산업기술원의 ‘2019 환경산업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환경산업 수출에서 토양 관련 산업의 비중은 최하위다.

실종된 기술개발, 땜질식 대책 한계

이재영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는 “그린뉴딜의 관점에서 보면 신흥먹거리 시장으로서의 잠재력이 충분함에도 외면을 받고 있다”라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토양환경의 발전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일침했다.

이처럼 R&D 등 토양환경산업 분야의 활성화가 어려운 배경에는 ‘정부의 무관심’과 ‘저가 위주의 입찰구조’가 있다는 업계의 설명이다.

이는 환경부 내 조직 구성반 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 토양환경 관련 부서는 환경부 물통합정책국 산하 3개 과 가운데 하나로 배치돼 있다. 관련 법이 제정된 지 25년이 흘렀음에도 별도의 국 단위 조직은 없다. 

그동안 관심이 부족했다는 목소리는 환경부 조직 내에서도 나온다. 신진수 환경부 물통합정책국 국장은 “토양환경에 대해 타 분야 대비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관련 예산도 물관련 전체 예산의 5% 정도로 열악한 실정”이라 토로했다.  

또 다른 하나인 저가 위주의 입찰구조는 기술개발의 절대적 방해 요인이다. 개발된 여러 기술들 가운데 실제 쓰이는 것은 극히 일부라는 점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박재우 한양대학교 교수는 “기술이 실제 적용돼 커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관점에서라도 저가 위주의 선택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환경부는 10월15일 개정안 시행에 더해 ‘토양오염 원인자 관리책임 강화’ 차원에서 제도적 보완점을 찾아간다는 구상이다. 노후 주유소 등 우려 시설의 방지시설 설치·운영 기준과, 토양오염검사 과정의 관리를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반출처리 과정의 투명성 확보도 목표로 담겼다.   

하지만 토양환경관리에 근본적 해결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언급했듯 각계에 걸친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이 분야에 깊숙이 존재하고 있어서다. ‘땜질식 대책’으로 접근해서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남경필 서울대학교 교수는 현 상황을 두고 “국내 토양환경보전법에서 토양은 ‘자원’을 의미했다. 자원은 지키고 깨끗하게 복원해야 할 필요성을 수반한다. 그러나 ‘부지’라는 개념으로 보면 달라진다. 용도를 가지고 사용한다는 의미로, 각각의 용도에 맞게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 있는 수준으로 정화관리 할 수 있어진다. 세계적 추세로 봤을 때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도 고민해 볼 때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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