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호우로 접경지 부근 지뢰 상당 유실, 침수 때 대문 틈에 끼어 발견되기도
‘국가 안보’ 이유로 정보 안주는 국방부, 대응은 중구난방···근원은 법적 근거 미비

집중호우로 인해 철원군 이길리 마을 침수후 집 앞 대문에 끼어져 발견된 지뢰 M14 <사진제공=녹색연합>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이길리 마을 주민들이 ‘지뢰 공포’ 속에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 여름철 폭우 때 유실된 지뢰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 구역을 출입통제하고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중구난방인 국방부의 신뢰 없는 대응은 불안만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이 해당 마을 주민들의 요청으로 모니터링 한 바에 따르면, 지뢰가 발견된 지점은 마을회관 등 거주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번 호우로 인한 민통선 이북지역과 접경지 내 지뢰 유실로, 이들 지역에서 국방부가 8~9월 수거한 물량은 모두 259발에 이른다. 특히 이길리 마을의 경우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특성으로 침수도 그만큼 잦아, 앞으로의 지뢰 피해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발견될지 알 길이 없는 주민들은 그저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하루하루 불안한 일상을 이어오고 있다. 

국방부도 정확한 자료 몰라

이는 무엇보다 국방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지뢰제거 작업을 벌이면서도 얼마의 면적을 대상으로, 어떤식으로 지뢰를 제거했는지는 비공개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 안보’가 아니라 이제는 ‘국민 안전’의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지적이다. 매설된 지뢰가 더 이상 군사적 용도로 작용되지 않는 현 상황을 반영해, 정부가 국민 안전을 우선시 한 대응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연합 측 관계자는 “군사적 목적이 없어진 지뢰로 인해 국민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은, 국가 안보가 아니라 국민 안전의 문제”라면서 “안보를 내세우는 이러한 태도는, 지뢰를 완전히 제거 하기에는 취약한 여건을 감추려는 국방부의 핑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지뢰에 대한 정부 대응 역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여러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9월 국회 박성준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중구 성동구을)이 군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살펴보면, 국내 총 지뢰 매설량은 82만8000발(추정)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추청치로, 정확한 데이터가 아니다. 

아울러 녹색연합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는 최근 5년간 DMZ, 민통선 이북지역, 접경지역 내에서 제거된 지뢰 수는 고작 2800여발이다. 

즉, 아직까지 상당수의 지뢰가 매설돼 있을뿐더러 정부 차원에서도 그것을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는 얘기다.

마을 곳곳 지뢰 발견 지점에 꽂혀있는 푯말 <사진제공=녹색연합>

사정이 이러한 가운데 민간인 피해는 꾸준히 지속돼 국방부의 ‘지자체별 지뢰피해자 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 47개 지자체에서 총 662명이 피해를 호소했다. 직접 신청하지 않은 ‘미집계’된 피해자들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지뢰 제거에 쓰이는 관련 예산 또한 터무니없이 적어, 합동참보본부의 최근 10년(2010~2019)간 ‘군 지뢰제거 예산’을 보면 지난 2010년 16억원부터 2015년 12억원을 거쳐 2019년 26억원까지 총 156억원 수준이다. 이 기간 전체 국방부 예산(370조)에 비해 극히 미미한 액수다. 

해법은 UN의 IMAS 제도 도입

결국, 이대로 라면 앞으로 지뢰제거 작업이 얼마나 걸릴지, 또 얼마나 제거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는 판단이다.

녹색연합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금처럼 지뢰 문제를 국방부에 맡기는 식으로는 해결점을 찾을 수 없다”라며 “민간 전문가와 국제사회가 협력해 제거하는 방식인 UN권고의 IMAS(국제지뢰행동표준)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지뢰오염국’으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 라오스 등은 국제사회의 기금을 활용하는 이 방식을 도입해 큰 성과를 보고 있다. 캄보디아의 경우 이미 28년 동안 약 100만발의 지뢰를 제거한 상태다.

IMAS는 지뢰제거의 임무를 군 뿐만이 아니라 UN과 NGO, 자국 내 민간단위 등과 협업해 해결토록 하고 있다. 따라서 도입 국가들은 국무총리 산하에 지뢰전담기구를 두고 관리 중이다. 국방부 ‘단독’의 영역으로 하고 있는 국내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지뢰제거와 관련된 국내 ‘모호한 법’ 체계도 시급히 손질할 과제다.  

관련 현행법인 ‘지뢰 등 특정 재래식무기 사용 및 이전의 규제에 관한 법률(재래식무기법)’은 제거보다는 이전과 규제에 집중돼 있다. 이는 곧 지뢰지대의 관리를 위한 ‘경고문’ 및 ‘경계펜스’와 관련된 일정 규격 조차도 마련돼 있지 않은 현재의 근복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어느 곳에는 푯말, 어디는 철조망 등 일관성 없이 제각각 표시해 둬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들 장치가 지뢰 위험으로부터 안전지대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기후위기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기상상황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면서, 접경지역을 비롯한 후방지역의 지뢰매설지역 인근은 그 위험이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다”라며 “국민의 생명이 국가 안보의 문제로 무시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우리나라도 지뢰문제를 국민안전의 문제로 인식하고, 행안부 차원에서 제거에 나서야 할 때”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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