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과 상관관계···한번 오염 땐 정화 시간·비용 여파 커
법·제도·기술 총체적 허점, 주먹구구식 업계 행태만 낳아

지하수법 시행이 26년 흘렀으나 아직 '지하수 오염'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없는 실정이다. <사진출처=수원시>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과거 2001년, 서울 용산구 소재 녹사평역 터널에서 유입된 기름이 확인됐다. 지하수가 오염된 것이다. 2008년에는 용산 미군기지 ‘캠프 킴’ 주변 전력구로의 기름 유입 사례도 있었다. 자칫 화재까지 연결될 수 있는 경우다. 이어 서울 서초구 사평역에서도 지난 2010년 터널 내 악취 유발 물질을 추적한 바 원인은 지하수 오염이었다. 모두 아직까지 정화 작업 중이다. 

기술 적용 어려운 이유 어디 있나 

“법과 제도, 기술 개발 및 선정 등 전방위적 손질이 필요하다.” 지하수 정화 업계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관련 법(지하수법)이 생긴 지(1997년 제정) 20년 이상 된 것을 감안하면 문제의 골이 깊다는 거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주유소나 산업시설 등 국내 ‘특정토양오염관리시설’은 총 2만1865곳이다. 토양오염과 지하수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면 이는 곧 지하수 오염 유발 시설이기도 하다. 

오염물 대부분은 유류다. 오염물질별 지하수정화 실적(2016) 통계에는 총 18건의 정화 가운데 TPH(총 석유계 탄화수소)가 5건으로 가장 많다. 이어 벤젠·톨루엔·에틸벤젠·크실렌(이하 3건) 순이다. 

정화에 쓰인 기술은 지난 2018년 양수처리법이 6건으로 가장 많았다. 슬러핑법(Slurping, 2건), 고압지중법(1건), 고도산화법(1건)은 상대적으로 사용이 적었다.

양수처리법은 기술·장비 구축을 위한 초기 건설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 반면, 실패 때는 오히려 오염물의 이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발생한 지역 특성에 따라 적용 공법이 달라질 수 있으나, 국내에선 대체로 이 양수처리법이 널리 사용된다는 것이다. 

김은진 한국농어촌공사 차장은 지금의 업계 현황에 대해 “일반적으로 토양정밀조사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지하수 오염도 조사를 실시하는 데, 조사를 위한 관측정 설치가 부지면적과는 상관관계가 없다.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즉, 부지가 넓으면 그만큼 많은 지점에 관측정을 설치해 들여다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면밀한 조사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어 김 차장은 “지하수는 대체로 흐름이 완만해 오염을 조사하는 데 있어 토양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라면서 “땅속에서의 유동조사나 물질거동조사 등에 대한 기법들도 현재는 그리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학계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장기적 대안 ‘원위치 처리기술’ 

이렇게 따지면 양수처리법을 선호하고 있는 지금의 업계 현실에 의문이 제기된다. 조사 과정의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과연 부지특성에 맞는 적합한 공법 선정이냐는 것이다.

미국 슈퍼펀드 부지 오염 지하수 정화기술 적용 현황 <자료출처=SRR>

해외 실정은 다르다. 미국 Superfund법과 관련된 분석 보고서인 Superfund Remedy Report(SRR)를 살펴보면, 과거 1982년 100%에 근접했던 양수처리법 이용은 점점 감소, 지난 2017년 19%까지 줄었다. 즉, 최근 경향이 아니라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R&D를 해오며 개발한 여러 기술들이 있음에도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은 양수처리법의 사용을 줄이고 원위치 처리기술(in-situ)의 보급을 늘려 2017년 기준, 적용률 53%에 달하고 있다. 이 같은 동향은 단순히 지하수를 깨끗이 처리하는 차원을 넘어 정화에 대한 정책과 제도적인 대안까지 고려한 선택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원위치 처리법이 적극 장려되는 선진 흐름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아직 전통적 처리에 얽매이고 있다는 소리다. 

근본 원인은 관련 제도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대게 정화과정은 이렇다. 지하수오염관 측정에서 수질이 환경부령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정화명령이 내려지고, 정화책임자는 계획을 세워 관할 지자체에 제출해 시장·군수·구청장 승인을 받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지하수 오염’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다는 점이다. 오염에 대한 과거 활동이나 자연적 요소 등을 고려한 책임 대상이나 범위의 근거도 없다. 

또 지하수 수질측정망에서 지하수오염이 확인된 경우는 ‘원상복구’만 하면 끝이다. 지하수법 제2조(정의) 6항에 따르면 원상복구를 ‘대상인 시설 또는 토지에 오염물질의 유입을 막고 사람의 보건 및 안전에 위험을 주지 아니하도록 해당 시설을 해체하거나 해당 토지를 적절하게 되메우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주변 오염원을 파악해 정화 조치에 나서기보다 시설을 해체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거다.

제도-현실 간 엇박자 

‘정화과정에서 채택된 기술을 검증할 조항이 없다’는 심각한 문제도 안고 있다. 기술의 적합성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지하수 오염의 특성 상 장시간의 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 신중한 기술 선정이 필요한 것과는 어긋나는 상황이다. ‘한물간’ 양수처리법 사용이 지속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제도권이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관계자는 지난 11월4일 온라인으로 열린 ‘토양지하수 기술·산업 발전 특별세미나’에서 “우리는 토양지하수 분야 정책 연구와 R&D 지원은 물론, 중소기업들을 위한 산업육성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라면서 “이제는 오염 발생 전부터 아우른 전주기 관리에 포커스를 맞췄기에, 앞으로 토양지하수관리가 사전예방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청사진을 얘기했다. 

다만, 현실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상당하다는 거다.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토양지하수정화사업은 발주처가 국가나 지자체, 환경공단 같은 공공기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경쟁 입찰 원칙에 따라 업체 간 경쟁이 심하다”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1순위 업체가 낙찰 받으면, 바로 2순위 업체가 발주처를 상대로 ‘낙찰자 지위 확인 및 입찰 절차 진행금지 가처분 청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1순위자는 발주처의 승소를 위해 보조참가를 하고, 결국 1순위자와 2순위자 간의 다툼이 불가피하다. 만일 1순위가 패소하면 2순위가 낙찰되고 발주처는 바로 2순위자와 계약을 체결해 버린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가처분 하나로 모든게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술이 아니라 결국 소송으로 업체가 정해지는 게 아니냐는 문제도 제기된다.” 

이는 ‘지하수 오염’의 정의가 미약하다 보니 법과 제도적 보완이 허술하고, 기술적인 자료 구축과 정보 교환도 더딘 지금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환경부는 앞서 “토양환경산업육성과 시장활성화, 관련 기술 혁신과 산업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라는 행정 방향을 밝혔다. 

토양과 지하수는 ‘불가분의 관계’다. 토양오염이 대부분 지하수 오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하 깊숙히 있어 오염사실을 알기도 어렵다. 이로 인해 한번 오염되면 정화가 어렵고 엄청난 비용도 따른다. 그만큼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거다. 

지하수법 시행 26년, 아직 과제는 산적해 있다. 

지난 11월4일 온라인으로 열린 '토양지하수 기술산업 발전 특별세미나'에서는 지하수 정화 업계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왔다. <사진출처=(사)한국토양지하수보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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